어느덧 다시 쌀쌀한 계절이 돌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내 삶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문득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외롭다고 느낀 그 순간, 나는 그저 혼자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이렇게 차가워지는 계절을 좋아한다. 차가움 보다는 차가움 속에 느껴지는 깨끗함이 좋다.
세상에 있는 모든 먼지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불빛은 선명하고 밤은 까맣다.
그렇게 또렷하고 선명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머릿속도 깨끗한 유리처럼 맑아지는 기분이다.
맑지만 차갑기도 하다. 유리처럼 온통 차가운 밤을 나는 좋아한다.
이런 밤이면 나를 스쳐갔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하나씩 떠오른다.
아쉬움이나 미련때문이 아닌, 그저 배고플때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 어느 누군가와도 함께하지 못하는 지금을 위안받고 싶은 애처로운 몸부림이랄까.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떨리던 그 손을 잡지 못했던 것도, 차갑게 돌아서고 한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던 것도..
가끔 놀랍도록 차가운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유독 사랑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못한 내가 미울때도 있었다.
모든 것을 덮어놓고 불나방처럼 사랑에 달려들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나는 결코 그런 류의 사랑을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남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뚝배기 같은 사랑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천천히 끓고, 오래 뜨겁다가 천천히 식는 사랑.
이상적인 사랑 혹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일상적인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르는 사랑을 경험한 사람보다, 그저 옆에 있기에 사랑이 된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그런 당연하고 일상적인 사랑의 흐름을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단어다.
내가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지만, 뚝배기같은 사랑이라는 최면에 걸려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럽다.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한다 말하는 그 눈빛이 부럽다. 너에게 나는 여전히 뜨겁노라 말하는 그 사랑의 온도가 부럽다.
뜨거워지지 못하는 나의 사랑은 가을날의 아침 안개와 같다.
긴긴 밤동안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아침 햇살에 뽀얗게 피어오르지만, 그마저도 뜨겁진 않다.
그 사랑보다 더 뜨거운 해가 떠오르고 나면 안개는 곧장 사라지고 만다.
나는 땅이고 내 사랑은 안개이다. 그렇게 나는 또 사랑이 피어나길 기다리지만, 금새 놓쳐버리고 만다.
사랑보다 뜨거운 것이 더 많은 삶이기에 그보다 뜨겁지 못한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기다린다. 내 삶에서 가장 뜨거운 것이 사랑이 될 순간이 오기를.
안개 낀 새벽은 짧고, 까만 밤은 길다. 그래서 내가 까만 밤을 좋아하나보다.
혼자여도 어쩔수 없고 외로워도 어쩔수 없다. 이렇게 다시 가을이고, 겨울이 올테니.
오늘 같이 까만밤이 좋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외롭고, 허전하고, 그립다고 말할수는 있는 거니까.
아직 가을이고 겨울은 아직 멀었으니까.
그저 올 겨울은 조금만 덜 추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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