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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lete

타인의 한계





사람은 다 저마다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 영역은 진정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이다. 처음에는 잘 맞는 듯 보이던 누군가와 조금씩 가까워 지다보면 그 각각의 고유한 영역의 끝에 알게 모르게 닿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 그 영역의 끝 가장자리에서는 엄청난 혼동이 발생하게 된다. 



탐색. 

이 사람과 내가 과연 잘 맞는 사람인가? 

탐색 단계를 넘어오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지막 단계로 다가갈 기회가 없다. 

이미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 결론이 나 버렸기 때문이다. 



일차판단.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 조금 더 가까워지기로 해 본다. 

미묘하게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만, 함께일때 좋은 것이 더 많을 경우 그런 점들은 그냥 넘어갈 만 하다. 

일차판단이 긍정적인 경우에서 조금 더 발전을 할 경우, 우리는 이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욕심을 내게 된다. 



요구. 

하지만 이렇게 해 주면 더 좋겠다는 마음에 이런 저런 요구를 강요하게 된다. 스마트폰 보지마라, 다리를 떨지마리, 손톱을 물어 뜯지 마라 등등. 


이 단계가 관계가 틀어지기 가장 쉬운 위험한 구간이다. 

내 기준과 상대방의 기준이 다르고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다른데, 그 수많은 차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잣대에 상대방을 맞추려 시도하고,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에서 실망하거나 지나친 요구를 하는 상대방에게 실망하기 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차이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인정 하라는 명언이 있지만, 그 인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누군가와 가까워지려 할 때마다 깨닫게 되기도 한다. 또 이 단계에서 그 사람의 자기중심적 영역이 얼마나 견고한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데, 끊임없이 자기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만 말하고 타인의 제안은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이라면 아주 견고한 철옹성 속에 쌓인 자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따지고 들며 또 쉽게 분노한다. 엄격한 자신의 기준과 타인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모습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관계의 불협화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쉽게 부러지고 만다. 곧고 뻗뻗해 바람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나뭇가지가 큰 바람에 부러져버리고 마는 것과 같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철옹성에 대응하는 나의 철옹성이다. 상대방의 세계가 강하게 느껴지고 그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들 수록 나 자신의 세계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마찰은 결코 혼자 일어나지 않는다.  마찰이 클 수록 두 표면은 거친 것이고, 상대방에 대한 거부감이 클 수록 나 자신의 기준 또한 지나치게 내 위주로 형성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계가 부러져 버렸다는 것은, 서로에게 기대하는바가 컸지만 맞춰지지 않은, 어찌보면 상대방에게 맞추려 하지 않은 각각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이 단계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서로가 맞춰가는 모습이 나오는 관계도 있다. (가족인 경우가 그나마 수월하다.) 



판단. 

사람의 관계는 비누방울과 같다. 각자 따로 아름답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비누방울들이 다른 비누방울을 만났을 경우, 서로 닿자마자 터져 버리거나 혹은 하나의 더 큰 비누방울이 된다. 하나로 합쳐지는 비누방울 보다 터져버리는 비누방울이 훨씬 더 많은 것 또한 우리 인간 관계와 유사하다. 어쩌면 너무 연약한 비누방울과 인간의 관계를 비교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관계가 끊기는 데에는 그리 크고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엄청나게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안맞는다는 이유 하나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관계가 얼마나 많았던가.  

 쉽게 터져 버리는 비누방울들과는 반대로 더 큰 하나의 비누방울이 되는 과정은 한층 더 조심스럽다. 느려야하고 또 많은 것들이 비슷해야 한다. 


서로가 맞닥뜨리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판단을 해야 한다. 이대로 터져버릴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노력해서 관계를 키울 것인가. 물론 어떤 선택을 하든 완전히 끝내는 것은 아니다. 터졌지만 작은 비누방울로 쪼개져 다시 생길수도 있고,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터질수도 있다. 한 사람의 미래조차 어느 누구도 쉬이 예측하지 못하는데 여럿의 관계에 대한 예측이란 것은 존재할 수 조차 없다. 선택에 따라, 그리고 노력에 따라 미래는 달라지고 관계도 달라진다. 


지금은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나중에 언젠가는 그런 여력이 생길 수도 있고 또 모른것을 다시 시작하고싶은 의지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에 대해선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단정짓지 말아야 한다. 


엄격하고 못난 나이기에 시작된 문제이므로 남탓으로 돌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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