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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그 뒤) L의 공간. Lisbon - Evora - Evoramonte - Estramosh 2011.10.01 - 2011.10.12 리스본의 역 앞. 굴러가는게 신기할 지경의 오래된 자동차를 운전해서 오는 L을 보고 웃음이 빵 터져 버렸다 오랫만의 만남이라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너무도 그 다운 등장에 나는 모든 긴장을 내려놓고 만다. 나를 본 그는 서둘러 차에서 뛰어내려 덥썩 끌어안는다. 그의 큰 허그가 몹시 반갑다. "안녕, 오랫만이야! " "잘지냈어? 좋아보인다. 발은 좀 어때? " "아직 안좋지 뭐. 넌 이제 괜찮지? 여전하네. 간만에 봐도. " "너무 반갑다. 얼른 차에 타. " "응. L 근데 이차 굴러가긴 하는거야 ? 가다가 멈출것같아. " 웃음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삼장법사가 타던 덜덜거리는 고물차가 생각.. 더보기
카미노 데 산티아고, PEACE & LOVE 에필로그. 일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뜨겁고 아름다웠던 카미노를 마치고, 이곳 저곳 지구반대편을 돌아다니다 돌아왔고,그렇게 일년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제 겨우 나의 카미노를 정리했다. 나의 삶은 여전히 바쁘다. 그토록 평화와 사랑을 원했지만 지금 내 시간은 내가 꿈꾸던 평화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선택했으며,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본다. 야근 후 터덜 터덜 힘없이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의 지금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환경이 그렇게 만든거라 원망해보지만 사실 모든 것은 내가 선택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멍청하고 한심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더보기
산티아고 D+40. 데자부 2011년 9월 30일.   포르투로 가는 버스는 오전 9시에 한 대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조금 서둘러본다. 산티아고 성당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 남겨진 산티아고는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버스 터미널로 찾아가 포르투행 버스를 타는 플랫폼에 서서 기다린다. 어디론가 떠다는 사람들 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날 지켜주는 가방의 조가비는 떼어 내지 않았다. 그냥 쭉 달고 다닐 예정이다. 포르투행 버스가 도착했고 다들 부산스럽게 버스에 오른다. 들떠보이는 사람도 있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난 잘 모르겠다. 다시 관광객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순례자인 것 같다.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 더보기
산티아고 가는 길 D+39. Adios 2011년 9월 29일. Fisterra > Santiago 마지막으로 다시 베낭을 둘러매고, 산티아고 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랬다. 우리는 오늘 산티아고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아틸라는 오늘 헝가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는 구불 구불한 길을 오래오래 달렸고, 이리들썩 저리들썩 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인 아직은 그를 다신 볼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간만에 탄 장거리 버스여행으로 속과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5분만 더 탔다간 진짜 멀미를 할 것만 같았던 순간, 우리는 다시 산티아고에 도착해 있었다. 익숙해진 길을 따라 시내로 향했다. 오늘 하루 산티아고에 더 머물러야 했던 나를 위해 조용한 방을 .. 더보기
피에네스떼레 D+38. 끝과 시작 2011년 9월 28일. Fisterra 느지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어색하기만 하다. 해가 질 무렵 라이트 하우스에 가는 일정 외에는 우리에겐 계획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뭔갈 먹어야 할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아침의 피스테레는 차분했으며, 흐린 날씨 탓에 잿빛으로 물들어 보였다. 해안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셨다.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샌드위치를 사랑하는 것 같다.어느 레스토랑엘 가도 기본으로 준비되어 있는 메뉴인 걸 보면 말이다.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틸라도 기분이 좋아보인다. 어제처럼 우울하지 않아 다행이다. 테라스 자리에 앉아 오늘도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는 얼굴이 정말 없다. 순례자의 길이 끝났음이 새삼스레 실감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