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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28. 손



2011년 9월 18일.   


Triacastela    >   Sarria   |   21 Km  






눈을 떴다. 내 눈은 나도 모르게 아틸라의 침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자고 있는 것 같다. 

몇몇 순례자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나는 자리에 누워 늘 하던 대로 스트레칭을 한다. 


다시 아틸라를 보았다. 그는 옆으로 돌아누워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굿모닝' 

뻐끔거리는 입이 아침인사를 한다. 

'굿모닝' 

나도 뻐끔거린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 첫 발을 땅에 딛을 때는 꽤나 고통스럽다. 

다리가 얼얼하다. 물집들은 괜찮아 졌지만 발이 전체적으로 얼얼하고 뻑뻑하다. 

이런 고통을 느껴본 것이 첨이기에 뭐라 달리 말할 방법이 없다. 내 발의 뼈들이 하나하나 뻗뻗하게 굳어 있는 기분이랄까. 


걷기를 멈추지 않는 이상 좋아지지 않을 고통이기에 어쩔 수 없다. 


아틸라가 몸은 좀 어떠냐고 묻는다. 여전히 흉측스럽게 부어올라 있지만 한결 나은 것 같다. 


"어젠 잘 잤어. 약이 효과가 있나봐 ! " 


그리고 아틸라는 나에게 물통을 준다. 


"너 하루에 두번씩 꼭 먹어야해. 빨리 먹어." 


이그나시오도 일어났다. 그도 나를 보자마자 몸은 괜찮냐고 묻는다. 
한결나아졌다고, 네 덕분이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칼슘과 비타민, 그리고 기분좋은 관심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이그나시오와 아틸라와 함께 길을 나섰다. 마을에 있는 바에 들러 모닝커피를 마신다. 
카페솔로와 카페 콘 레체, 이젠 서로가 무엇을 마실지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 

그를 만난 지 일주일 째, 그 짧은 기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가 친숙하고 익숙하다. 


오늘 우리는 사리아 라는 곳 까지 갈 예정인데, 사모스 라는 곳에 있는 부디스트 템플에 들리기 위해 둘러가는 길로 갈 것이다. 
아주 오랜시간부터 기독교를 믿어 온 스페인에 불교식 사원이 있다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었다. 

아침이 꽤나 쌀쌀하다. 아니 춥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추운 날씨는 내 가려움에 꽤나 큰 도움이 된다. 하늘이 정말 나를 돕는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을 끝에서 사모스로 가는 왼쪽 아스팔트 길을 선택해서 걸었다.
한적한 아스팔트 도로 위를 셋이서 일렬로 걷는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막대기를 땅에 통통 튀기면서 말이다. 

아스팔트의 울림이 신기하다. 그 울림에 집중하다 보면 머리가 정말 하얗게 비어진다. 








첫번째 마을이 나타났다. 길을 잘못들어 헤메이기도 하고 양떼를 만나기도 했다. 

어제 산 초코빵을 하나씩 나눠서 먹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는데 개울 중앙에 이렇게 생긴 구조물이 있었다. 

빨래터쯤 되는 듯한 느낌인데 개울의 중간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게 굉장히 특이했다. 

 

사진을 찍으며 뭐하는 곳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들린다. 



"노 픽처! 노 픽처! " 



저 쪽에서 왠 아주머니가 무서운 얼굴로 노픽처! 라 소리치고 있다. 그리고 진짜로 안찍나 감시 하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찍어요 ! 안찍는다구요 ~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을 노픽처를 흉내내며 놀았다. 










아틸라와 이그나시오, 너무 좋은 친구들. 

나와 다르면서도 나와 같은 신기한 인연들.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가, 한사람 한사람이 정말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예쁜 마을에 있는 예쁜집. 초록색 담쟁이 덩굴 위에 덩그러니 홀로 피어있는 장미가 참 예뻤다. 


싱그러운 푸르름, 광활한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은 더이상 만나지 못했지만 갈리시아 지방의 푸르름도 꽤나 맘에 든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운이 넘치는 곳, 그리고 내 고향 한국과도 비슷한 길이다. 








기분좋은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한국과 비슷한 산이라 집 생각이 났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함께 오르곤 했던 뒷산도 생각나고, 

내 앞을 신나게 뛰어가던 우리 강아지도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연락을 못한지 꽤 된것 같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잘 지내는 것 처럼 말이다. 




아틸라는 저 멀리 가버리고 없었다. 아마 사모스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힘이 빠져가고 있다. 혼자 담벼락에 앉아 쉬면서 초코빵을 꺼내 먹었다. 

정말 사람이 없다. 순례자들은 다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



사모스...에 도착한걸까 ?? 



마을이 나왔는데 우리가 기대했던 부디스트 템플은 나오지 않았다. 

분명 다른 샛길이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으리... 에잇 ! 별수 없지 뭐. 


단념하고 셋이서 마을에 있는 바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과자를 계속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진 않았다. 


조금 더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아틸라의 배낭에 꽂혀있는 와인 한병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어제 히데오상의 저녁 초대에 응하려고 사놓고 못먹은 비싼 와인, 아틸라가 무겁다고 계속 생색을 낸다. 


하지만 어쩔수 없어! 조금만 더 힘을내. 얼른 가서 먹자 ! 


라고 얘기 했지만 내가 들고 가겠다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그나시오도 말하지 않았다. =_= 

아틸라가 키도 덩치도 젤 크니까 괜찮을 것이다. 



날씨가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산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었는데, 어쩐지 비가 이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가를 아는 듯한 이그나시오가 빨리 이곳을 떠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옷을 꺼내 입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둑 후둑 떨어지려 하던 빗방울이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흐린 하늘에서 밝은 빛이 비췄다. 

비가 그친 것 같다. 비옷을 다시 넣기 위해 가던길을 잠시 멈추었다. 


이그나시오가 저기를 보라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까 커피를 마셨던 마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마을위로 회색빛 비구름들이 가득했다. 

비구름들은 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지금 저 곳을 내려오는 사람들은 꽤나 고생할 것 같았다. 



"와우. 우린 비와 반대방향으로 걸어왔구나! 럭키. "

 


가장 운 좋은 세명의 순례자였다. 



What lucky pilgrims! 




길의 끝에 있는 캠핑장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많이 걸을 예정이 아니었고, 다음 마을도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여유로운 일요일 점심 만찬을 즐기기로 했다. 


물론 와인과 함께 말이다 ! 








우리는 토마토와 투나 샌드위치를, 이그나시오는 터키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참치 캔을 따는 아틸라에게 참치에는 안좋은 성분이 많이 들어있으니 많이 먹지 말라고 이그나시오가 이야기한다. 



어랏... 우리 참치 되게 자주 먹었는데......



앞으로는 참지 말고 다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자고 아틸라가 이야기 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난 찬성! 









스페인 와인은 싸고 질좋기로 유명한데, 이 곳에서도 Rioja 지방의 와인이 특히 유명했다. 

아무리 싸구려라도 Rioja 라고 붙어있는 와인을 사면 다 맛있었다. 실제로 내가 먹었던 Rioja 와인은 모두 내 입에 딱 맞았다. 

같은 2유로 짜리 와인이라도 Rioja 지방의 것과 아닌 것의 맛의 차이가 꽤나 컸다. 


그 Rioja(리오하) 지방의 와인 중에서도 저 핑크색 딱지가 붙어 있는 녀석들은 최상품이었다. 

Rioja의 Crianza 지방에서 생산된 와인인데, 가격은 몇유로 더 비쌌지만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5유로 짜리 와인, 그 가격에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다니 ! 난 정말 스페인이 좋다. 




행복한 순례자들이었다. 


저 쪽 마을 어디선가 파티가 열리고 있는지 쿵쿵 대는 신나는 음악도 들려온다. 

알딸딸 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벤치에 드러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날아가고 싶은 기분이다. 




한 시간 여를 그렇게 쉬고선 다시 길을 나섰다. 점심의 음주로 몸이 축 쳐진다. 역시 놀때만 좋다. 


문제가 생겼다. 음주로 인해 나는 화장실이 몹시 가고 싶은 상태가 되었고, 

주변에는 화장실이 전혀 없었다. 


화장실이 될 만한 공간을 찾아야 했는데 나의 정서상 아직은 저들에게 화장실을 가겠노라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일단 의도적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저 둘을 먼저 보내놓고 혼자 남겨진 뒤 기회를 노리리라. 


다행히 도롯가를 따라 나 있는 길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그들은 금새 내 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길 옆으로 나 있는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가 나의 방광에게 자유를 주었다. 살 것 같았다. 

마음의 여유가 다시 생기고 나니 웃음이 났다. 길에서 볼일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웃음이 나는 유쾌한 경험인데, 

오늘같은 경우는 이런 저런 이유로 상황이 더욱 웃겼다. 

혼자 킥킥대며 다시 큰 길로 나왔다. 그리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신나게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랏. 근데 갈림길이 나타났다. 


둘다 꽤나 큰 길이었고 화살표는 어느곳에도 없었다. 

느낌상 한 길은 마을을 통해 조금 둘러가는 길인 것 같고, 한 길은 큰 길을 따라 가는 길 인것 같았다. 


어느길로 가도 상관없을 것이지만, 아틸라와 이그나시오를 다시 못만나게 될까봐 두려웠다. 

몇번을 이쪽길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저쪽길로 갔다가, 또 돌아와서 이쪽길로 갔다가 저쪽길로 갔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도, 차도 하나도 없었다. 세상에 나만 홀로 버려진 기분이다. 



'못 만나게 될까 ?'


'아니야. 사리아에서 분명히 만나게 될거야.'


'날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하지 ?' 

 



 혼자 정말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하지만 이대로 아틸라와 헤어지는 건 정말 싫었다. 

혼자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무섭기까지 했다.



'아니야. 마을에서 분명 아틸라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사리아까지 얼른 가자.'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빨리 가기 위해 큰 길을 선택했다. 얼른 마을에 가서 아틸라를 찾고 싶었다. 

커다란 커브길을 하나 돌아섰다. 그리고 그 곳의 담벼락 아래에 앉아있는 아틸라와 이그나시오를 발견했다.  

그 둘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를 기다려주고 있음이 너무 고마웠다. 



"헤이! 지니 ! 어떻게 된 거야?" 



그들도 내가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나타나지 않아 걱정했다고 했다. 나는 길을 잘못 들어 몇번이고 헤맸다고, 

이대로 못만나게 될까봐 너무 겁나고 두려웠었노라 이야기한다. 



"나도 네가 안나타 날까봐 두려웠어. 이제 같이걷자. "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내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걸어준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이렇게 바로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리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폴을 만났다. 

폴은 지금 알베르게가 대부분 다 찼다며, 얼른 가서 숙소부터 잡으라고 이야기 했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까지는 100km가 조금 넘었다. 

100km 이상을 걸은 순례자들에게 산티아고 증명서를 발행을 해 주기 때문에 이 곳에서 부터 순롓길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를 증명해 주 듯이 사리아의 레스토랑 곳곳은 순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알베르게 역시 대여섯군데가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3번째 알베르게 까지는 자리가 전혀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이런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4번째 알베르게, 이 곳은 사설 알베르게라 비용이 조금 비쌌다. 하지만 침대가 남아 있었고 시설도 깨끗했다. 

우리는 이 곳에 머물기로 했다. 이번에도 나는 침대 아랫층을 쓰게 되었다. 

침대 아랫층을 쓰는 것은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선호하는 일이었다. 나는 사실 크게 상관 없었지만 

다들 아랫층 침대를 얻기 위해 애를 썼다. 그래서 그런지 아틸라가 늘 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아랫층을 쓰게 해 주었다. 


아무렴 뭐 어때. 



그리고 이그나시오는 우리와 일자로 붙어 있는 침대의 2층을 쓰게 되었다. 

엄청 길다란 방에 일자로 늘어서 있는 침대들, 그리고 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빼곡하게 침대로 채워놓은 알베르게보단 낫지만, 

어쩐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의 작대기라도 던져야 할 것 같은 구조의 알베르게였다. 



셋이서 빨래를 모아 세탁기를 돌리고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침대에 누워 뻗뻗한 다리를 맛사지 해 주고 스트레칭을 하려고 다리를 뒤로 쭉 뻗어 올렸는데,

그 쪽에 이그나시오의 머리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뭔가가 내 발가락에 닿는 느낌이 났다. 

이그나시오가 장난스럽게 내 발가락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내 양쪽 발가락에 스마일을 그려줬다. 


킥킥. 아틸라가 웃는다. 이그나시오도 웃는다. 나도 웃는다. :) 





두 아저씨들은 금새 잠이 들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서 뒷뜰로 나갔다. 

흔들의자에 앉아 왔다갔다 하며 바람을 느낀다. 바람이 선선하다. 간지러움도 많이 좋아졌다. 



왔다 갔다, 기분이 좋다. 



나도 모르게 아틸라를 떠올린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에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 가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오늘을 이야기하고 내일을 함께 소망했지만 어제에 대해서는 서로 침묵했다. 

묻지도 않았고 먼저 말하지도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고 점점 더 궁금해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지금 내 옆에 있는, 함께 걷고 매운맛을 좋아하고, 담배를 행복하게 피는 이 헝가리안을 좋아할 뿐이니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과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곳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 아니며 곧 끝이 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간을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애써 잡으려 하지 않는다. 잡히지 않음을 아니까. 



내가 그러했듯 그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어둠이 찾아와서야 잠꾸러기 아저씨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꽤나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메뉴를 골랐다. 와인을 마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뭐 딱히 할말이 많진 않았다. 이그나시오도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었다. 

쉴새없이 떠드는 폴이 있었다면 이런 조용한 저녁은 불가능 했으리. 



레스토랑 사장님이 하몽을 삶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돼지 앞다리.

살짝 사진 찍으려 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다리를 들어 주신다.








숙소로 돌아왔다. 사리아의 밤도 까맣게 반짝였다. 

제법 추웠다. 숙소에는 담요가 비치되어 있었는데, 하나를 챙겨간 나에게 이그나시오가 세장의 담요를 더 준다. 
몹시 추울거라며, 한장은 바닥에 깔고 세장은 덮으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 배드버그 약을 우리들의 매트리스에 다 뿌렸다. 정말 더 이상은 물리지 않고 싶었다. 

자리에 누웠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새어들어온 한줄기 빛이 새까만 방의 정적을 깨고 있었다. 


조용하던 아틸라가 살짝 뒤척임이 느껴졌다. 엎드려 누운 것 같았다. 
그러더니 오른쪽 옆으로 그의 손이 툭 떨어져 내린다. 

손이 나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침낭과 담요안에 숨어있던 내 손을 꺼내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엊그제의 아침이 생각났다. 그의 따뜻함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리


어둠속에서 만난 두 손은 처음 만져본 무엇인가를 더듬어 알아내는 듯이 서로를 관찰하고 있었다.
손가락의 마디를, 주름을, 손톱을, 그 온도를 알아간다.  

한참을 그렇게 손을 잡고 있었다. 

엎으려 있는 그의 자세가 불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자야 할 시간 이었다. 
 

몸을 살짝 일으켜 어둠속에서 알아간 그 손등에 천천히, 그리고 가볍게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그의 손을 살며시 놓았다. 


그가 다시 돌아눕는게 느껴진다. 마음에 어떤 감정이 생긴 것 같다.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다. 


큰일이다.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더 많이 그를 좋아하게 되 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