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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산티아고 가는 길 D+18. 이제 그만. 2011년 9월 8일.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El burgo Ranero | 31 Km 늘 일찌감치 출발하는 히데오상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살짝 눈을 떠서 방을 둘러보고 다시 눈을 감는다. 조그맣고 조용한 방에서 꽤나 푹 잔 밤이다. 팔다리는 여전히 간지러웠지만 어제 스페니쉬 부부로부터 받은 연고 덕에 많이 좋아졌고, 비닐 커버를 씌워둔 침대 였기에 배드버그가 기어다니는 듯한 환상에서도 자유로웠다. 히데오상이 간간히 히안한(한숨을 쉬거나 소리를 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긴 했지만, 그정도는 애교로 봐줄만하다. 엄청 심하게 코를 골 것 같은 아이슬란드인 굴리는 의외로 소리없이 잠을 잔다. 그가 요가강사인 것 만큼이나 놀랍다. 그는 여러모로 상상을 초월하는 사.. 더보기
산티아고 가는 길 D+17. Happy Birthday ! 2011년 9월 7일. Car. de los Condes >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26.6 Km 평소보다 일찍 깨려고 한건 아닌데, 가려움으로 일찍 일어나고야 말았다. 히데오상은 벌써부터 떠날 채비를 다 하고 있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떠나려는 그에게 생일축하해요 ! 라고 말했다. 일어나자 마자 그의 생일을 잊지 않아 다행이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그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워 한참 부어오른 듯한 뜨거운 내 팔을 만지고 있었다. 배드버그는 유럽에선 악명높기로 소문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몸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모두가 배드버그에 물린 사람을 피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알베르게는 출입을 받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두.. 더보기
산티아고 가는 길 D+13. 우리모두 애국자 2011년 9월 3일. Altapuerca > Burgos | 20 Km 아침이 밝았다. 간밤에 일층에서 새벽까지 씨끄럽게 떠드는 사람들과 코를 고는 같은방 순례자 덕에 잠을 설쳤다. 인나 언니는 6시 무렵부터 일어나서 나설 준비를 한다. 그리고 깜깜한 어둠속에서 먼저 출발했다. 나는 동이 슬슬 터 오기 시작하는 일곱시쯤 자리에서 일어난다. 같은 방을 쓴 순례자들 대부분이 출발하고 없다. 이 방에서 나는 혼자 남았지만 까뜨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외롭지 않았다. 일층으로 내려갔다. 까뜨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2km 정도가면 나오는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출발을 하려고 한다. 알베르게 밖으로 나가보니 후미야와 케샤가 있다. 직전 마을에서 묵었던 그들은 이곳에서 .. 더보기
산티아고 가는 길 D+12. 지독한 혼자. 2011년 9월 2일. Belorado > Altapuerca | 27.3 Km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또다시 잠에서 깬다. 8개의 침대, 작은 편에 속하는 이 알베르게에서 꽤나 편한 휴식을 취했다. 어제 얻은 극도의 피로감과 코고는 사람이 없는 행운이 만난 덕 일 것이다. 케샤와 함께 주방에서 일회용 스프를 끓여 먹는다. 아침저녁으로는 꽤나 쌀쌀해 따뜻한 음식이 절로 생각난다. 준비해 둔 음식이 없어 스프로만 끼니를 때우고, 같은방을 쓴 스페인 가족과 인사를 나눴다. 대부분의 스페니쉬들은 스페인어만 사용한다. 하지만 낯선 동양인 여자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으로 많은것을 물어보려 늘 애를쓴다. 정말 힘들게 대화라고 할 수도 없는 단어의 나열을 주고받고는, 부엔카미노로 끝낸다. 그네들에게는 이 조그만 동양인 .. 더보기
카미노 데 산티아고, 40일간의 여행 그 프롤로그 Camino de Santiage 2011.08.22 ~ 2011.09.30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스페인 피에네스테레까지, 약 900 km, 40일간의 여정. 산티아고를 가기로 결정한 이후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물은 질문은 "왜" 였다. 왜 그 고생을 사서하니, 왜 하필 산티아고니, 왜 걸어야 하니. ? 그 당시 나는 그 대답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산티아고에 가고 싶었고, 가야만 할 것 같았고,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을 뿐이었기에. 지금, 모든것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렇게 원했던 산티아고를 향한 긴 길을 모두 걸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이 변해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왜"라는 수많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얻었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