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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lete

볼라벤?






태풍 볼라벤이 어쩌고 저쩌고, 어제부터 세상이 씨끄럽다. 


간만에 찾아 온 듯한 태풍에 온 세상이 난리법석이다. 하지만 대체 왜 이 난리들인지 전혀 실감이 안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조심하란 소리에 창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우산도 튼튼한 녀석으로 준비해서 집을 나섰다. 

그렇지만 간만에 느끼는 강렬한 바람에 걱정 보다는 기분이 좋아지고 만 아침이었다. 


유리창이 깨지고 방둑이 무너졌다. 사람이 다치고 실종되었다. 

그렇게 조심하라 떠들어대도 그러한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다. 

한번씩 까불지 마라며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는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낱 힘없는 부스러기일뿐이다.

이 거대한 대 자연에 맞써 싸울 생각이 나는 없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고, 신발이 젖으면 말리면 된다. 

바람이 불면 내가 있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서서, 그들과 함께 그저 머무르면 된다. 

그렇기에 나는 비도 바람도 좋기만 하다. 



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린다. 


도시를 휘어감는 강한 바람에 나의 노란 우산은 펴지기도 전에 부러져 버렸다. 

이 녀석이 어떻게 부러졌는지는 정말 미스테리다. 난 우산을 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어차피 우산이 소용도 없는 밤이었다. 버스정류장에 서서 흩뿌려지는 비를 느껴가며 하늘을 바라본다. 

비는 오로라처럼 흩날리고 바람은 성난 파도처럼 휘몰아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는 결국 무엇으로 산다 말했던가 ? 기억나지 않는다. 

저마다 삶의 이유는 다 다를테니 정답은 없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무엇이 무엇인가. 방법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유를 말하는 것인가. 

무엇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려운데 삶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리. 


하얗게 넘실대는 오로라 위에 초록색 나뭇잎  하나가 떠 있다. 바람의 장난으로 나뭇잎은 나비처럼 팔락인다. 

의지를 갖고 날아다니는 한마리의 나비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바람의 힘을 빌렸을 뿐이다.  

거대한 세상에 혼자 버려진 한마리의 나비는 세상이 무서운줄 도통 모른다. 

물결에 절어 공주처럼 지쳐 돌아와도 또 다시 물결에 날개가 젖게 되겠지. 


바람이 방심한 사이 나뭇잎은 소복히 바닥으로 내려 앉는다. 


다시 세상을 날아다니고 싶을까? 




몇년간 연락이 닿지 않던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즐거웠던 내 젊음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허공에 떠 있던 마음은 추억 속 귀퉁이를 찾아 들어간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그 때는 왜그리도 심각하고 진지했던 건지. 


삶에서 일어나는 왠만한 일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버린다. 

그저 그땐 그랬었지 정도의 색바랜 한장의 기억으로만 남는다. 즐거움도 슬픔도 살짝씩 바랜 기억들. 



버스 창 너머 세상이 남의 것인 양 낯설게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밤버스는 언제나 좋지만, 이렇게 비오는 날은 더더욱 좋다. 


몰아치는 비바람에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바람에게 농락당한 나뭇잎들만 축 처진채 늘어져 있다. 

나뭇잎이 그대로 썩어들어가 아스팔트를 뚫어 버리면 어떨까. 

멍이 든 사과처럼 아스팔트도 갈색의 둥근 모양의 구멍이 생긴다면. 

그 구멍은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하나의 통로가 될 지도 모른다. 돈데크만이 만들어 주던 시간의 문 처럼 말이다. 


혼자서 괜시리 즐겁다. 쓸데없지만 간만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만 잔뜩 하게 된 이런 밤도 있기에 나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이 밤이 지나면 또다른 태풍인 덴빈이 많은 비를 몰고 올것이라고 한다. 

바람도 함께 데려왔으면 좋겠다. 비와 바람과 함께한 오늘같은 밤을 또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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