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대화는 끝이 없나보다. 무슨 얘기를 그리 하는 지 궁금했지만 대화에 동참할 수 없으니 그냥 빠진다.
프레야도 꽤나 걸음이 느린 편이다. 그리고 역시나 아틸라는 앞서가게 되고 그녀는 점점 나와 가까워지고 있다.
나까지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그건 너무도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니까. 사실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프레야와 나란히 걷는다. 그녀는 조금전의 대화가 조금 불편하지 않았냐고 내게 물었다.
괜찮다고, 너무 신선한 내용들이라 조금 놀랬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노라 말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전혀 접해보지 못해 본 이야기들을 들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나에게 몇살이냐 묻는다. 내 나이를 듣고서는 놀란다. 아시안은 이 곳에서 절대 동안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아틸라의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그녀는 아틸라보다 10살이 많았다.
" 아틸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응? 음. 그는 좋은 사람이지. "
"그게 다야 ? 아틸라는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
"... 나도 아틸라 좋아해. 함께 한 시간이 얼만데. 난 프레야도 좋고 아틸라도 좋아."
"음.. 아틸라는 조금 진지하게 너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당황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
"물론 나도 아틸라 좋아해. 프레야 보단 더 좋아하는 것 같아.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어."
거짓말 인 것 같다.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고, 나 역시 그를 많이 좋아하게 됨을 느끼고 있었다.
루이스도 참 많이 좋고 아틸라도 그렇다. 하지만 이 길위에서의 인연은 이 길위에서 끝나게 됨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좋아하는 채로 남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많은 것이 나와 같은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거라 짐작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역시, 사랑의 전령 답게 어려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글쎄, 난 아직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과 해 왔던 사랑, 그리고 하고 싶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녀는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정말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끄집어 내는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녀가 만약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나는 꽤나 자주 그녀를 찾아갔을 것 같다.
"Set you free. "
아.. 나는 무어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 자유. 내 마음의 자유.
그리고 그녀는 쉬어 가겠노라며 길 가의 벤치에 앉는다. 나중에 봐 ! 라고 말하고 나는 계속 걷는다.
많은 일들이 생긴 아침인 것 같다. 내 마음속에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던 이 순간, 나는 내 내면의 무엇인가가 꿈틀거림을 느꼈다.
확실한건 지금의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반드시 미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에너지를 믿고 기를 믿고 마스터를 찾아 영적 신비를 체험하고, 그런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는 내 마음이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과, 스스로를 자유롭게 내려놓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었다.
에너지 뱀파이어를 조심하라고 했던 루이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아틸라와 프레야, 이 에너지를 논하는 특이한 두 사람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
지금 내 느낌상으로는 결코 나쁜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에너지를 받고 있는 듯 했으니 말이다.
다음 마을 입구에서 아틸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를 다시 보게 되어 무척 반가웠고, 그가 나를 언제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든든했다.
호두 나무 아래에 앉아 떨어진 호두를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호두를 건넨다. 아틸라의 옆에 앉아 돌로 호두를 깨 가며 먹었다. 고소하다.
슈퍼마켓에서 콜라 두개와 배 두개를 샀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을만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마을을 거의 벗어나고야 말았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먹으나 조금 있다 먹으나 상관없고, 우리가 쉬고싶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 발견되면 쉬면 되니까 말이다.
1주일 전 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 그 모든것들이 일어나고 있음이 신기했다.
마을을 벗어나 계곡 위로 이어진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이 곳 어딘가에는 우리가 쉴만한 장소가 있으리라 확신했다.
다리를 끼고 아래로 내려간 우리는 계곡으로 나가는 샛길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완벽한 장소를 찾았다.
하얀 꽃가루들이 눈송이 처럼 흩날리고 있고, 물소리가 아름답게 노래하는 정말 완벽한 곳이었다.
물은 얼음장처럼 시원했고 뜨거운 우리의 발은 물 속에서 짧게나마 행복을 맛보았다.
그 아름다운 곳을 나란히 앉아 바라보며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마치 아바타의 한 장면 같아 ! "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꿈의 숲, 정말 그 속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침에 있었던 대화에 대해 이야기 했다. 딕샤가 무엇이냐 물어보았고, 내가 느낀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아틸라는 프레야가 하는 이야기들은 좀 너무 성적인 측면으로 쏠려 있는 경향이 있다며,
무조건 그 쪽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해준다. 그녀의 스타일이 그런 것이지 모두가 그런건 아니라며 말이다.
그 역시 프레야가 말하는 그 직접적인 표현들 앞에 몹시 당황했노라 말했다.
우리는 그녀의 그런 성향은 일종의 직업병이라 얘기하며 한 낮의 평화를 만끽했다.
그의 어깨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팔이 조금 간지럽다. 옷을 벗어보니 한 두군데가 빨갛게 부어있다.
모기에 물렸나 ?
그리 심각하게 간지럽진 않아 모기에 물렸나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배드버그에 또 물리리란 생각을 해본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늘 우리는 책을 전혀 보지 않고 걸었다. 드래곤웨이가 책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라 그랬을 수도 있다.
책 없이 그냥 걸었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나는 주로 아틸라가 멈춰 있을 때 쉬었다.
그는 나를 배려해서 결코 너무 멀리까지 가진 않았다. 콩알만큼 작아질때까지 앞서가다가 보이지 않게 되기 전에 그는 나를 기다렸다. 그가 나를 기다리는 것이 못내 미안했지만, 그는 담배를 피는 시간이라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담배를 피는 그의 모습은 정말 끝내줬다.
그의 그 행복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다. 담배 피는 것에 찬성하지 않지만
저렇게 행복해 한다면 못피게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우리 삶의 이유니까 말이다.
프레야의 담배피는 모습도 멋있었다.
한국에선 담배피는 모습을 보고 단 한번도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한숨을 숨기기 위해 연기를 내뿜는 것 같았고, 그 내뿜어지는 연기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행복을 위해, 여유를 만끽하면서 담배를 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는 결코 담배를 피지 말라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마을이 하나 나왔다. 마을에 있는 벤치에서 아틸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프레야를 만났다고 했다. 프레야는 이 마을에서 오늘은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하겠냐 묻는다.
세로로 길게 생긴 이 마을이 어쩐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조금 더 가도 될 것 같다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은 산의 시작지점 이었다. 계곡과 숲이 있는 상쾌한 길이었다.
함께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 좋은 길도 혼자 걸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 !
아름다운 경치보다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기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다음 마을이 나왔다. 마을이라 하기엔 너무 조그만 곳이었다.
이 곳을 지나칠 것인지 멈출 것인지 고민을 하기도 전에 우리는 알베르게 입구에 앉아있는 폴과 마르셀을 만났다.
"와우 ! 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어?!"
폴과 마르셀은 아틸라를 기다리다 결국 둘이서 드래곤 웨이로 갔고 , 엄청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된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아틸라에게 우리 그냥 이곳에서 쉬어야겠다고 말하자 마자 히데오상이 나를 보고 달려왔다.
"지니 ! 다시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그리고 아틸라가 나에게 우리가 이곳에서 쉬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라고 말하며 윙크한다.
그리고 그 곳이 바로 어제 폴이 아틸라의 이름까지 예약했던 그 알베르게였다.
안오기로 했던 한명이 나타났다며 호스피탈레로에게 폴이 말하고, 인상좋은 젊은 호스피탈레로는 정말 신기한 일이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쩐지 느낌이 좋은 알베르게다.
그런데.. 호스피탈레로가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 가는 곳이고, 자기네 알베르게에서는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 말한다.
무슨 의미냐고 묻는 아틸라에게 나의 팔을 가르킨다.
"저건 배드버그에요. 배드버그에 물린 사람은 우리 숙소에 들어올 수 없어요, "
오 마이 갓 ! 어쩐지 점점 더 가려워 진다 했다.... 두 번이나 배드버그에 물리다니.
그리고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확실히 달랐다. 요 녀석이 정말 그 무서운 진체스, 악명높은 배드버그 였다.
배드버그에 물린 사람에게는 2개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1.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다 화학 약품으로 소독한다.
2. 다른 알베르게로 간다.
..
...
....
1번을 선택했다. 별수 없지 않은가 ?
어디서 물렸냐는 호스피탈레로의 물음에 어제 점심 낮잠을 잔 이후부터 간지럽기 시작했다 말했다.
보통 배드버그가 하루 이틀의 잠복기를 거친다고 하니 어제 아니면 엊그제일 터였다.
아틸라도 자신의 팔에 있는 물린 자국을 보여준다. 호스피탈레로는 그건 배드버그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원한다면 너도 소독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틸라는 나와 함께 소독 프로젝트에 동참하기로 했다.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아서 고마웠다. 아마 그가 소독하기로 결정한건 나를 배려해서였을 것이다. 고마웠다.
리차드라 자신을 소개한 그 인상좋은 호스피탈레로가 우리에게 옷을 가져다줬다.
우리는 숙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을 뒤 어디에선가 옷을 갈아 입어야 했다. 속옷까지 모조리 말이다....
아틸라는 그냥 그 자리에서 훌렁 훌렁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으악 !@#$^*&$%@
이 황당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 참에 배드버그를 완벽히 박멸할 생각을 하니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알베르게를 뒤로 돌아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그럴만한 곳이 없다.....
그냥 친구들의 눈을 피할만한 곳에서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고양이 한마리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뭘봐 !! ㅠㅠ
그렇게 우리는 모든 옷을 갈아입었고, 섬유로 만들어 진 모든 제품에 벌레 박멸 스프레이를 뿌린 뒤 커다란 까만 봉지에 넣었다.
저 봉지 속에서 배드버그들은 질식해서 죽고 말겠지 ! 제발 사라져라 !
리차드에게서 받은 내 바지가 몹시 특이했다. 그는 나에게 행운아라며, 해피 팬츠를 입게 된 것을 축하한다 말했다.
정말 그 바지는 신기했다. 무슨 포대자루같은 직사각형으로 생긴 천 이었는데, 다리를 집어넣은 뒤 허리춤에 있는 끈으로
적당히 묶어서 입어야 했다. 가볍고 부들부들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해피팬츠였다.
리차드의 여자친구가 나타나 그 바지는 정말 편하다고 얘기해준다.
정말 그렇노라며,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남의 옷으로 갈아입은 나와 아틸라를 보고 폴과 마르셀은 웃겨 죽을려고 그런다.
그리고 기념 사진을 찍어야 겠다며 사진을 찍어준다.
그래도 꽤나 잘 맞다며, 마음에 든다 얘기하며 서로를 보고 웃는다.
이제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리차드는 우리에게 3개의 2층 침대 윗칸과 1개의 퀸 사이즈 침대가 남았다고 말하며 원하는 곳을 쓰면 된다 말한다.
단 퀸 사이즈 침대는 두명이 함께 써야 한다며 우리에게 윙크를 날린다.
방으로 들어갔다. 철제 이층 침대는 보기만 해도 삐그덕 거렸고, 창문 아래 놓여진 더블베드는 몹시 안락해 보였다.
옆 자리에 있던 더블베드는 이미 한 노부부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난 히데오 상의 윗 칸이 비어있어 그 곳으로 가야겠다..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틸라가 조심스레 나를 부른다.
"지니, 나는 오늘 더블베드에서 쉬는게 좋을 것 같은데 혹시 너 괜찮겠니?
니가 불편하면 싱글베드 쓰면 되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
아.... 이건 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알수가 없다.
안락함으로 친다면 저 삐그덕거리는 철제 이층침대와는 비교도 안된다.
게다가 키가 큰 아틸라에게 너무 작은 이층침대라, 그는 굳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라도 그러자고 권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덥썩 그러자고 하자니 그것도 좀 그렇고, 아닌것 같다고 하자니 그것도 좀 그렇다.
"근데 내 몸에 아직 배드버그 남아있을지도 모르는데, 너 옮으면 어떻해?"
"배드버그 때문이라면 괜찮아. 난 배드버그 물려도 너처럼 그렇게 심각해지지 않아."
"진심이야 ? 너도 물릴지도 몰라."
"응 진짜 괜찮아. 난 그냥 편하게 쉬고싶어서 그래."
..
..
..
"그래 그러자. 왜 안되겠어 ? 너무 편하겠다. "
침대에 앉아 뭔가를 정리하고 있던 히데오상이 나를 바라본다.
동양인들의 정서에는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기에 그의 시선이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이미 선택을 해버렸다구 .
우리의 선택에 폴도 입을 떡 벌렸고, 마르셀은 훌륭한 선택이라며, 자신이었어도 그랬으리라 말한다.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아무튼 이 상황은 웨스턴에서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가보다.... 이놈의 문화차이 !
대체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까지가 안괜찮은건지 알 수가 없다. 살아봐야 아는 거겠지.
리차드에게서 받은 담요와 침낭을 하나씩 나란히 깔아놓고 우리는 폴과 마르셀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마을에 하나 있는 바에 가서 클라라 그란데를 시킨다. 늘 잔이 작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란데 사이즈가 있었다니!
이래서 뭔갈 아는 사람과 함께 다녀야 한다니까.
맥주잔을 들고 밖으로 나와 경사진 바닥에 세워놓은 테이블에 앉았다.
수평이 맞지 않아 테이블이 기우뚱 거린다. 마르셀이 일어났고, 나는 신고있던 플립플랍을 벗어 테이블 밑에 끼웠다.
테이블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돌멩이를 주워 온 마르셀이 내 신발과 테이블을 보고는 감탄을 한다.
"와우 ! 진짜 좋은생각이다 ! "
"이래서 내가 지니를 좋아한다니까?"
고작 이정도로 뭘 이라는 어깨짓을 한번 해 주고 클라라를 마신다.
이 like와 프레야가 말한 like가 같은 건지 다른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나 역시 그를 like 하고 있단 것이다.
마르셀도 아틸라도 참 좋다. 물론 아틸라가 훨씬 더 좋은 것 같지만 말이다.
어젯밤 내린 비 탓인지 마을에는 물이 넘치고 있었다. 히데오상과 함께 물이 넘치는 들판을 맨발로 걸으며 놀았다.
물은 정말 시원했다. 하지만 물에 팅팅 불어있는 소똥을 발견하는 바람에 바로 들판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깨끗한 샘물로 발을 씻고 배드버그 소탕작전을 벌인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심각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팔에
버물리를 발라주며 간만에 만난 히데오상과 서로의 카미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의 카미노가 많이 달라진 것 처럼 그의 카미노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 진 그가 느껴졌다.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모두를 배가 고파 저녁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에 테이블이 부족해 나, 아틸라, 히데오, 폴, 마르셀은 내가 쭉 앉아서 놀던 야외 테이블에서 먹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운치가 있고 좋았다.
저녁으로는 빵과 단호박 스프 같은 색깔의 스프가 나왔다.... 무엇인가 더 나오리라 기대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모두에게 턱없이 부족한 저녁식사였다. 하지만 그 작은 마을에는 슈퍼마켓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와인이 있었다. 와인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다 치웠는지 리차드와 그 여자친구가 우리에게로 올라와 앉았다. 피곤한 히데오상은 먼저 내려갔다.
리차드는 사실 미국에서 온 순례자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 알베르게를 지나가다 호스피탈레로였던 지금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여름에는 같이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겨울에는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와우 엄청난 이야기였다.
서로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딱 봐도 티가난다. 결국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 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의 그 사람들의 눈빛은 따뜻하고 다정하고.. 그 이상의 빛이 난다.
리차드와 그 여자친구가 그러했고, 파라다이스의 아름다운 커플이 그러했다.
내 눈빛도 그렇게 빛났던 적이 있었을까 ? ..
우리는 한참을 씨끌벅적하게 떠들었다. 나의 두번째 배드버그 이야기도 하고, 폴의 저질 미국식 유머에 박장대소 하기도 했다.
리차드가 키우던 고양이가 호두가 가득 담겨있던 바구니를 넘어뜨리기도 했고,
140cm는 거뜬히 되어보이는 커다란 개가 테이블로 달려들기도 했다.
주민이 16명이라는 이 작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 놀라워했고,
이 곳에 알베르게를 만들 생각을 한 리차드의 여자친구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우리 대화에 거의 끼지 않았다. 미안하게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씨끄러웠던지 자고 있던 한 나이든 순례자가 올라와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본분을 잊어버린 호스피탈레로 커플은 난감해 하면서도 킥킥대고 만다.
밤은 깊어갔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오늘도 아틸라와 함께 밤하늘을 바라본다. 함께 보는 밤 하늘은 더 아름답다.
불꺼진 숙소로 들어가 살짝 잘 준비를 했다. 아틸라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사실 침대는 둘이서 쓰기에 충분히 넓었지만 나는 어쩐지 신경쓰여 벽쪽으로 바짝 붙어 눕고 말았다.
아틸라 역시 내가 신경쓰여 반대쪽으로 바짝 붙어 누운 것 같다. 지금 이 상황이 조금 우습다.
" 굿나잇."
인사를 하고 살짝 벽쪽으로 돌아 누웠다. 움직이는게 몹시 신경쓰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아틸라가 옆에 있어서 신경을 너무 쓴 탓일까 ?
그렇다기엔.. 온 몸에서 엄청난 가려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만큼 !
차가운 바깥 공기를 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뜨거움과 가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만질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몸을 건들지 않기 위해서, 가려움을 참기 위해서..
아틸라는 잠이 든 것 같다. 정말 소리도 없이 조용히 잔다. 숨소리도 얕고 미동도 없다. 그가 옆에 있다는걸 잊을 정도로 조용하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그가 깰 것만 같아 나는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했다.
가려움의 고통은 점점 커져만 갔고, 나는 내일 큰 도시까지 이동해서 먹는 약을 꼭 처방받아야겠다 혼자 되뇌였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가려움의 고통에서 몇번이고 깨어났다.
꽉 쥔 주먹 때문에 손바닥에는 손톱자국이 깊게 새겨져 있을 것 같았다.
짧은 꿈에서 나는 약국에서 약을 사고 있었다. 그리고 금새 또 깨어났다.
너무도 길고 고통스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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