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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은 활짝 피었네요. 또 금새 언제 꽃이 폈었냐고 되묻듯이 초록잎으로 가득차게 되겠죠. 

사랑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주 잠깐 동안 한가득 피어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바뀌어 버리는 것이. 

초록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 활짝 피어오른 꽃망울이 가져다 주는 만큼의 설렘과 환희를 주진 못하죠. 


그래요. 사실 벚꽃에 대한 추억은 다들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에요. 벚꽃엔딩이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

그렇게 노래로도 만들어져서 불리어지는 걸 보면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장면 속에서는 별것 아닌 일도 뭔가 특별함이

더해져 오래 기억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도 그사람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흩날리는 벚꽃잎은 몹시 특별하니까요.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를 함께 걸었던 사람이 꽤나 있어요. 셀수 없을 만큼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중 하나가 특별할 수 

없을 만큼은 있는 것 같아요. 처음 가본 일본은 낯설고 아름답지만 다섯번째 간 일본은 그저 익숙할 뿐인 것 처럼요. 


사실 난 그 벚꽃이 흩날리는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건 어쩐지 별로에요. 왠지 슬픔이 느껴진달까? 

그 아름다운 꽃들이 다 떨어지고 말잖아요. 떨어질 뿐인가요? 꽃잎 하나 하나 낱낱이 흩어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마는걸요. 

그리고는 언제 그런 예쁜 모습으로 나무에 매달렸었냐는 듯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사람들의 발걸음 속에 짓이겨지고 말겠죠. 

그래서 그런가 벚꽃의 추억속에 존재하는 그 사람들은 어쩐지 내게 씁쓸함만 남겨두고 말았네요. 


전 참 비관적인 사람인가봐요. 그 로맨틱한 봄날의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 걸 보면 말이에요. 

그리고 그 생각은 곧 현실이 되어 나타나죠. 마음의 봄? 그런게 정말 있나요 ? 

일년내내 벚꽃이 펴 있지 못하는 것 처럼 불가능한 소리 아닌가요? 


사랑으로 가득차 행복의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이 궁금해요. 과연 그들의 마음은 항상 저 활짝 피어있는 벚꽃과 같은 걸까요? 

바람에 흩날리지도 않고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져 짓뭉개지지도 않은채, 존시가 그려둔 마지막 잎새처럼 그렇게 가만 있는 걸까요? 

몰라요 ? 왜 몰라요 ? 저야 당연히 모르죠. 모르니까 이렇게 물어보는 거죠. 

그래요. 내가 알게 되기 전 까지는 믿지 않도록 할게요. 답을 알게 되거든 꼭 알려줄게요. 기다려줘요. 


왜 이렇게 삐딱한거 같죠 ? 내 마음이 말이에요. 사실 난 그 이유를 알고 있어요. 요즘 저는 사랑에 몹시 회의적이랍니다. 

상처를 받았나봐요. 미래가 없는 사랑을 하고 있거든요. 미래가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여기 있잖아요.

미래까지 생각하고 만나지 않았죠 당연히. 지금을 살기도 바쁜데 언제 미래까지 생각해요? 근데 그렇게 지금만 살다보니 

지금 내가 이러고 있네요. '우린 미래가 없잖아.' 라는 그 사람의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어요. 몰랐던건 아니에요. 

나 역시 그에게 '우리'가 '함께'일 미래를 얘기할 순 없었어요. 그게 우리의 지금이거든요.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말로 듣는 건 정말 다른 일이에요. 저 바닥에서 처참이 뭉개지는 벚꽃잎의 기분이 그러할까요? 


아.. 마음이 더 안좋아 졌어요. 이 쯤에서 애써 나를 위로한답시고 할 수 있는 말은 '벚꽃은 해마다 피잖아.' 정도겠죠? 

그래요. 벚꽃은 내년에도 필 거에요. 한 해 동안 더 성숙해서 더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송이들을 만들어 내겠죠. 그리고? 

그리고 또 모든 것은 반복되겠죠. 후.. 생각만 해도 싫네요. 뭘 굳이 이런걸 해마다 겪나요? 뭐 좋은 일이라고. 


'그래요. 그냥 지금을 살면 되는거죠.' 그리고선 우리는 그냥 '지금'만 살아요. 하지만 웃기죠? 그 지금이 모여 미래가 될텐데 말이죠. 그래도 괜찮아요. 지금은 항상 바뀌는 거잖아요? 지금이 바뀌면 미래도 바껴요. 저 벚꽃은 내년에도 피고 또 지겠지만 나의 

지금은 결코 번복되지 않죠. 내가 지금을 다르게 살기로 마음먹으면 미래도 바뀌는 거에요. 그러니까 좀 두고봐요. 


나의 '미래'가, 아니 나의 '지금'이 어떻게 연속될지 말이에요. 


아- 이런식의 말장난은 별로 재미없어요. 끝도 없을 이런 이야기들일랑 집어치워야겠어요. 



나중에 내가 정원이 있는 나만의 집을 갖게 된다면 아주아주 큰 벚나무 한 그루를 마당에 심을 거에요. 한겨울의 끝자락에

찾아온 수줍은 핑크빛 설렘과 같은 그 찰나의 순간을 해마다 지켜볼 수 있게 말이에요. 뭐 우리 삶도 그렇겠죠. 언제 찾아올 지

모를 그 핑크빛 순간을 기다리는 나머지 328일들로 가득 찬 삶 말이에요. 


그렇지만 사실 난 핑크빛 꽃잎이 사라진 뒤의 싱그런 연두빛도 좋아요. 초여름의 신선한 초록빛도 좋고, 가을의 쓸쓸한 낙엽도 좋아요. 메마른 가지도, 그 위로 소복히 눈이 쌓여있는 모습도 좋아한답니다. 가능하다면 나무로 사는 삶도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그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게 아주 천천히 흘러갈 것만 같아요. 그렇게 천천히,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 삶이 궁금하네요. 


아. 바람이 한줄기 불어 오네요. 꽃잎은 또 눈처럼 흩날려 어디론가 떠나가네요. 어쩔수 없죠. 그게 저네들의 운명인가보죠. 

그리고 그렇겠죠. 이 또한 그저 나의 운명일 뿐일테죠. 다 그런거죠 뭐. 


고마워요. 요즘 참 머릿속이 씨끄럽고 복잡한데, 그냥 잠깐 나를 생각해보게 해 줘서 말이에요. 



그런데 말이에요, 오늘따라  저 벚꽃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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