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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색깔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문득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사랑은 나도 모르게 찾아왔다가 제 각각의 이유로 날 떠나가게 된다.


어떤 사랑의 경험은 참 아름답고, 때론 마음 한쪽을 시리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일련의 사랑에 대한 경험들은 뭉실 뭉실 내 가슴 속 한켠을 채운 채 남겨진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경험이 어땠던가 하는 디테일 보다는 그 사랑 자체가,  

 경험 자체가 그저 커다란 덩어리의 느낌으로 남는 듯 하다. 그 느낌은 빛의 느낌에 가까운 색깔과 같다. 


노랑색,  밝은 주황색, 아주 진한 남색 등. 


그렇게 떠오른 색깔을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아 이래서 이 사람은 이 색이지. 아, 우리가 이렇게 시작했었지. 아, 이런 것들이 참 좋았었지. 

하고 그 소소한 사랑의 경험들도 하나씩 떠오르게 된다. 커다란 덩어리가 하나하나 쪼개지듯 말이다.  


그렇게 쪼개진 작은 조각들은 모두 제 각각의 색을 띄고 있다. 노랑에서 떨어져 나온 빨강, 혹은 파랑. 

정말 신기하게도 이렇게 제 각각의 색깔을 띄고 있는 경험들이 결국 커다란 하나의 색으로 뭉쳐지게 되는데, 

그 색은 처음 내가 떠올린 그 덩어리의 색과 같다. 이런 신비로운 과정들은 뭐랄까, 마치 꿈과 같다.


깨고나면 좋았는지 나빴는지 그 느낌만 남게되는,
하지만 한 장면을 떠올린 순간 줄줄이 엮인 장면들이 떠오르게 되는,
그랬었지 하고 잊고 살다가 불현듯 다시 떠올리게 되는.


어쩌면 꿈과 사랑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진한 남색으로 남아있는 그 사람은, 뭐랄까 그냥 바위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진한 코발트 블루 빛을 띄고 있는 커다란 바위. 


깊고 진해 그 속을 알수 없는 그 차가운 바위. 그 진한 남색에 비친 내 모습은 맑고 투명한 파랑이었다. 

그 위에 앉아 나는 언제까지고 놀 수 있었다. 우리는 둘 다 푸르렀고, 같은 듯 다르게 그렇게 조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바위는 언제나 한없이 관대했고, 또 따뜻했다. 


파랑이 가져 오는 차가움이 있다. 나는 파랑을 참 좋아했기 때문에 그 차가움 또한 좋아했다. 

나 역시 그런, 그와 같은 파랑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모습은 파랑이 아니었다. 파랑이 아니면서 파랑을 흉내내고 있었기에 나는 파랑일 수 없었다. 

나는 결코 그와 같이 될 수 없었고 그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면서 나는 점점 그 파랑을 잃어갔다. 

그리고 내가 그 파랑을 모두 잃었을때, 우린 더 이상 함께일 수 없었다. 


빨강 혹은 노랑, 어쩌면 주황도 파랑과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이젠 알지만 그땐 몰랐었고, 

파랑은 꼭 파랑와 함께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젠 알지만 그 땐 몰랐었다. 


아니 사실 색깔의 문제 아니다. 어떤 색깔이든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그 땐 몰랐었다. 

그저, 그 깊고 진한 남색 곁에서 나는 언제까지고 투명한 파랑이어야 한다고 믿었을 뿐이다. 바보같이. 




우린 쿨하잖아, 라는 그 말에 이렇게 답하고 싶었다. 

쿨하지 못한 내가 애써 쿨한척 하느라 지금 이렇게 되버리고 만거라고. 난 사실 하나도 쿨하지 않다고.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쿨하지 않은 내가 그저 쉬운길을 택해 도망쳤을 뿐이라는걸. 

떠넘기고 원망하며, 그렇게 난 아니라고 스스로 외면하며 꼭꼭 날 숨겼을 뿐이라는걸. 


이제서야 그 것을 깨달았다. 돌이키고 싶은 건 아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저, 어쩐지 마음 한 켠이 파랑게 저려 올 뿐이다.  



사랑의 조화.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 내는 그 조화는 참으로 신비롭다.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색은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서로에게 자연히 녹아 들어가는가

그리고 그 것이 조화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어울림이 평가 될 뿐이다. 



조화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사랑의 경험을 쌓아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것을 배우게 된다.

처음부터 조화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사랑을 하고 실수를 하고 후회도 하며, 

그렇게 조화로운 사랑을 만들고, 사랑을 하며 세상을 사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리라.  



내가 어떤 색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의 색깔 또한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색과 어떤 조화를 이루어 내는가,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주의해야 할 것은 그 색깔들이 서로 섞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온전히 그 색을 받아들이고 순수한 나의 색과의 조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때묻지 않은 깨끗한 파레트가 필요하다. 


 

내 사랑의 파레트 위에 남아있던 섞이다 만 물감들은 다 씻어버리고, 이제 다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색깔로 그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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