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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얼마나 변했을까요? 

한적한 카페에 앉아 2년전 떠나보낸 그 사람을 기다립니다. 
일부러 조금 일찍 나왔습니다. 혼자 조용히, 가만히 앉아 그 사람을 기다려보고 싶었습니다. 


벌써 2년이 지났네요. 그 차갑던 겨울, 우린 함께했던 긴 시간을 뒤로 한 채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결코 아름다운 이별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맞는 듯 보였던 우리 사이에도 조금씩 틈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 틈을 눈치챘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온 뒤였으니까요. 

그 겨울, 전 헤어지자 얘기했고,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을 흘려보냈습니다. 
이젠 그 대답을 들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말로 들어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의문으로 남아있는 내 마음을 위해 어쩌면 아주 조금은 용기를 내 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가 결혼하기 전에 만나보는 것이 그를 향한 마지막 예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옛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 지금껏 살아온 제 삶에는 없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만나기로 약속한 그 첫날은, 꿈에 온통 그 사람이 나타나는 통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할 정도였고, 
그를 만나기 전 몇 일간은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만나기로한 그 날이 왔을 때는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조금 더 큰 듯 느껴졌습니다. 


그와 다시 잘되길 바라고 그런 뜻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죠.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주며 4년이란 시간을 함께 해 온 우리는, 아마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하였을 거에요. 
잘은 몰라도 아마 그랬을 거에요.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니까요.


2년만에 만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랄 것도 없이, 그는 2시간 반을 늦었습니다. 
예전에도 제가 기다렸던 시간들이 참 많았어요. 그는 바빴고, 늘 저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를 기다리는 일이 아직도 익숙하게 느껴지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우습게 느껴집니다.
화가 나서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전 정말 생각보다 모질지 못해요. 바보같이.  
이렇게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본게 참 오랫만이라 생각하며 그저 기다릴뿐입니다.  

그가 나타났습니다. 예전과 같은 모습이네요. 차를 마시자는 저에게 술을 한잔 하자고 합니다. 
잔뜩 화가 나 있던 저는 그냥 카페로 먼저 들어가버렸어요. 일부러 그랬나봐요. 나 마음 강하게 먹으라고 일부러 늦게 왔나봅니다.

화가 났었지만 또 구구절절 늦은 이유를 얘기하는 그를 보니 웃음이 나요. 예전이랑 너무 똑같은 패턴이 말이에요. 
물론 다른것도 많아요. 살이 조금 쪘고, 그의 몸 곳곳에서 낯선 여자의 흔적들이 보입니다. 
혼자서는 옷도, 안경도, 신발도, 가방도 못고르던 사람이었어요. 나 였음 절대 찬성하지 않았을 것들과 함께 나타난 그를 보면서 
나의 부재가, 아니 우리가 살아온 삶의 차이가, 이젠 서로에게 얼마나 낯선 존재가 되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익숙하지만 낯선 우리를 창 밖의 저 차가운 바람이 지켜보고 있네요. 그렇게 또 다시 겨울인가 봅니다. 


장난스러운 대화가 이어졌어요. 지금 하는 일은 어떤지, 주변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가족들은 어떤지 말이에요. 
함께했던 길었던 시간만큼 나눌 이야기도 많았어요. 
시시콜콜 함께 알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각자 오래 키워오던 강아지들 이야기를 하며, 결국 울컥 하고 말았어요. 
반려견의 죽음에서 온 슬픔이지만, 우리가 울컥한 이유는 아마 그것 뿐만은 아니었을거라 생각해요. 그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렇게 우린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조금씩 공유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을 합니다. 나에게 못해준 것이 너무 많아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라고 하네요. 
미안할 것 없어요. 그와 함께 아름다운 시절을 보냈고, 그렇게 보낸 나의 옛 시간들에 대해 나는 눈꼽만큼도 후회하지 않으니까요. 

처음엔 나의 일방적인 통보에 화가났었다고 해요. 그 다음 겨울, 다시 꺼내 본 나의 옛 편지를 보고서야 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고, 자기가 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 꼭 사과하고 싶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린걸요. 


몇 번을 서로 울컥 하는 듯 했지만, 우린 서로 제법 잘 참았습니다.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그 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때 왜 나는 그렇게 했을까,
그렇게 우리는 함께였지만 함께이지 않았던 순간들도 공유하고 있었어요. 

안타까운 마음도 조금 들어요. 우린 그래도 서로를 꽤나 많이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우리가 만약 계속 만났더라면 
지금은 단란한 가족이 되어 있겠죠. 그렇게 살아도 아마 잘 살았을거에요. 물론 전 힘들었겠지만 말이에요.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였더라면 해 보지 못한 선택에 대해 평생 후회하며 살았을거에요.  
 선택은 되돌릴 수 없어요.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음을 둘 다 잘 알고 있음이 다행이에요.

서로에게 잘 하지 못해 미안한 그 마음을 다음 사람에게는 반복하지 말자 얘기해요. 그는 꼭 그래야만 해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그 자신을 위해서 말이에요. 그가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는 행복한 가장이 되길 원해요. 진심으루요. 


네 시간을 이야기만 했어요.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가 다시금 편하게 느껴지네요. 
그의 마음도 느껴집니다. 진심어린 그 마음이요. 그래요. 그는 언제나 진심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그 진심을 알았죠. 
하지만 진심이 미래를 만들어주진 않아요. 모든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이 없는 진심은 알아채기가 힘들어요.

어쩌면 진심이 아니었던건 나 였을거에요. 하지만 난 노력을 했죠. 
혼자 노력하고 노력하다 포기해버렸어요. 그렇게 노력을 내려놓으니 진심만 남았어요. 
그도 나의 마음을 느꼈을까요? 진심으로 그의 미래를, 그의 행복을 기도하는 내 마음을 말이에요. 

이야기를 해 가면서 내가 그려오던 그의 미래의 모습과 지금 그의 모습이 다름을 느꼈어요. 
당연하죠. 제가 옆에 없었으니까요. 이제 그는 그의 미래를 그리는 또 다른 사람의 곁에서 그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겠죠. 
내가 나 스스로, 혹은 또 다른 사람의 곁에서 나만의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는 것 처럼 말이에요. 

덤덤히 헤어졌어요. 아니, 그런 척 했던 것 같아요. 

또 봤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으면 그러자고 대답했지만, 아마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서로의 행복을 기도해주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가야겠죠. 아마 그럴거에요 우린. 쿨하니까요. 

나름 괜찮은 이별인 것 같습니다. 

나름 아름답게 사랑했고, 아름답게 이별한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해 좋았던 것만 기억해 주는 것, 그래서 그 시절을 떠올렸을 때 
후회와 아쉬움보다는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 그리고 지금 사랑을 더 빛나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이별이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이별 말이에요. 지금 우리가 한 것과 같은 이별이겠죠.  

아마 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와 보낸 시간에 대해 좋은 기억만 이미 남아 있는걸요? 
아팠던 기억도 그 나름으로 좋게 남겨졌어요. 적어도 이젠 같은 아픔을 두 번 겪으려 하진 않을테니까요. 

그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많이 두려웠는데, 이젠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요. 
이 년간 듣지 못했던 답을 이제서야 들었고, 이제서야 모든 문제를 푼 기분이 듭니다. 

이젠 새로운 문제를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때 즈음엔 새로운 문제풀이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되길 기도해봅니다. 




*

당신, 참 고마워요. 미안한 마음은 더이상 갖지 않을게요. 서로 더 이상은 미안해 하지 말아요 우리. 
그리고 나 더 많이 행복해질게요. 나의 행복을 비는 당신을 위해서요. 
당신도 꼭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주세요. 당신의 행복을 비는 나를 조금만 생각해서요. 알겠죠? 

2013.12.06. 그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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