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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1. 종교 (하지만 결국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사랑이 결여된 이 세상에서 각각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기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은 알게 모르게 사랑을 향해 살고 있고, 그 사랑의 방향에 한계는 없다. 

동물을 향한 사랑, 음식을 향한 사랑, 명품가방을 향한 사랑 .. 그러한 것들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이 된다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나는 또 다른 사랑의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내겐 전혀 없는, 있어본적이 없었던 종교를 향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종교를 향한 사랑의 특수성은 바로 매주 일요일마다 자석에 이끌리듯 교회라는 곳으로 사람들이 움직임에 있다. 

같은 방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곳에 매주 모여 서로 의지하고 격려해가며 나의 사랑이 유별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드러낼 수 없던 그 사랑을 대놓고 표현할 수 있는 그 곳에서 

때론 지나치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의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일종의 군중 심리 현상이겠지.  

그렇게 그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사랑을 키워 나간다. 


그 군중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극소수의 호기심에 이끌린 영혼들은 때론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 두려움을 느꼈을때의 당혹감은 상상 이상이다.  

물론 모든 상황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 나는 군중속에 있는 빛(광기인지도 모르는)을 보았고, 

마치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호기심이 두려움으로 바뀐 순간이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랑의 방향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알 수 없는 그리고 내가 속할 수 없는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잠시 길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신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은 비교적 행복하다고 봐야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방법이야 어쨌든 간에 그들은 사랑을 품고 있고, 사랑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이웃의 사랑을 인정하고 함께 나눌줄도 안다. 그러한 그들의 사랑을 존중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이웃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냉정하고 잔혹하다. 그 세상에서 옳고 그름의 선은 너무도 굵고 진했다. 


어쩌면 맹목적인지도 모르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나누는 사랑이 아닌, 아래에서 위를 향한 일방적인, 한가지 목적을 위해 끝없이 매달리는 맹목적인 사랑이었다. 


과연 이런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다른 사랑을 위한 여유와 공간이 존재하는 것일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사랑하려 애를 쓰지만, 그 큰 사랑의 흐름에 맞춰주지 못하는 약한 물줄기를 품을 수 있을 것인가? 


동시에 서로 다른 곳을 향해 그리고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는 그 사랑이 과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얘기하는 그 사랑이 과연 같은 것이기나 한 것인가?

 

두개의 달이 떠 있는 듯 서로 다른 나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서 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의 나라가 내가 사는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맞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그들의 사랑이 궁금해서 찾아가 본 그들의 세상에서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고 

조금도 그들을 알게될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성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아주 조금밖에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아마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조금 더 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듯 하다.) 



그들의 사랑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원하는 사랑과는 조금 다른 방향임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좇기만 할 수 있는 그들의 삶이, 어쩌면 나의 삶보다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랑에는 의심이 필요 없는 거니까. 






2. 종교 (하지만 이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 아니 강점이자 약점은 호기심이다. 

궁금한 마음에 시작해 보고는 아니다 싶으면 금새 돌아서고 마는, 전형적인 양은냄비 스타일의 호기심이 내 속에 들어있다.


3년쯤 전에 산티아고 에서 만났던 그 한국인은 종교인이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그리고 다시 만난 그는(대부분 그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보였지만) 예전과 다른 낯설음이 있었다.


그의 직업을 알았었고, 몰랐었고의 차이일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속에 달라진 그와 나의 변화 때문일까?

나는 관찰하는 기분으로 그와 대화했고, 그는 나를 꿰뚫어보겠다는 신념으로 나와 대화하는 듯 했다. 


사실 궁금했다. 그가 속해있는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그는 어떻게 하다가 그 세계에 발을 딛게 된 것인지, 

그리고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삶은 만족스러운지. 대체적으로 그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대화는 깊어졌고, 나의 얕은 호기심은 금새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끊어지지 않는 가느다란 개울처럼

졸졸졸 쉼없이 흘러갔다. 흘러가던 그 물은 돌멩이를 살짝 적시며 지나갔지만 물길이 지나간 후 돌멩이는 금새 말라버렸다. 

그 흐르는 물 속에 들어있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플랑크톤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적어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랬다. 이 세계에서 나는 돌멩이었고, 물이었고, 플랑크톤이었다. 그 모든 것인 나일수도 그리고 내가 아닐수도 있었고 

나는 내가 선택한 어떤 모습으로든 될 수 있었다. (아주 좋게 해석한 것임.) 

자신을 정확히 알게되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알게 될 준비가 된 것이라는(아마 그것을 의미한다 생각하지만 확신할순없다. ) 

이야기가 좋았다. 나에게서 시작되어 타인에게 흘러가는 그 사랑의 방식이 어쩌면 나의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나'를 찾아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다 갑작스런 제 3자의 등장으로 새로운 맥락으로 흘러가게 된다. 

또 다른 사랑의 방향을 가진 새로운 사람. 분명 뿌리는 같았다. 비슷한 사고를 갖고 있었고, 얼핏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는 나에게서 너에게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서 나에게로 서로 다른 곳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다. 문제는 때론 그 것은 엄청난 피로감과 상실감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타인의 이야기에 쉽게 동화되는 편이라 주로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거기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하곤 하는데, 

새롭게 등장한 제 3의 인물은 모든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성향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것은 그 둘이 서로에게 느끼는 파장이 지나치게 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자석의 N극과 N극이 만난 것 처럼.


그렇게 가만히 앉아 서로를 밀어내려 애쓰는 둘을 보다보니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그들 사고의 속력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그들의 대화를 깊이 이해할 수도 없었다.(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다. 참, 올해 들어 나는 이런 기분을 꽤나 자주 느끼고 있는데, 나의 이런 갑작스런 변화의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운명과 또 다른 삶에 대해 열띤 대화를 하던 그들의 언어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유레카!'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던 답을 정말 우연히 찾게 되었다.(아마 그들은 모르겠지만) 


삶의 반복 혹은 운명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나의 의문은 요 몇년째 계속되어 오고 있었는데, 

그 해답은 간단했다. whatever you want. 모든 것은 역시나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는 그 것 ! 


흔해빠지고 식상하고 진부한 이 이야기가 문득 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 나 였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죽기전에 항상 다음 생을 준비한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생을 원치 않으면 준비하지 않으면 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는 없다. 내가 다음 생을 원할지 원하지 않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삶이 끝나는 시점이 오면 나는 아마 오늘의 이 글을 떠올리며 나의 다음 생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결정을 하게 되겠지. 그 결정은 아마 사랑에 달려 있을 것이다. 



원없이 사랑한 삶이었다면, 그 삶을 마지막으로 남겨두리.    







요 최근의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직 나는 내 삶을 다른 것에 의지해 나아갈 준비는 되지 않은 듯 하다. 

갑작스레 생긴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긴 하지만, 이런 마음 상태로는 조금도 종교를 이해하지 못할게 분명하다.


모든 것에는 타이밍이 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찾아온 타이밍은 그저 이러라는 타이밍인가보다 싶다.  



늦은 밤,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욕구에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어딘가 조금 이상해져버린 것이 맞는 것 같다. 

2014년의 나는, 문득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아직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굉장히 이상해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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