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가 밝았다.
인나 언니는 또 일찌감치 출발하고 없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는데 조금 걱정스럽다.
산드라와 까뜨린과 함께 길을 나선다. 다음 마을이 5km 정도 뒤에 있어 그 곳에서 첫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리는 동에서 서로 걷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늘 아침 해는 우리 등 뒤를 비춰준다.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무심코 돌아본 길에는 붉은 아침 햇살이 고개를 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아 ! 그 핑크빛 두근거림이란 !
길을 멈추고 서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저만치 앞서가는 까뜨린이, 그리고 옆에는 날 기다리고 있는 산드라가 있었고,
산드라에게 해 뜨는 것을 보고 가자는 양해의 말을 전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을 안고 길을 계속 걸었다. 계속 뒤돌아 보면서 말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아쉬움은 계속 커져만 갔다.
'왜 나는 해가 뜨는 이 짧은 순간도 기다리지 못하는 걸까 ? '
부끄러움 가득하던 이른 아침의 해는 어느덧 활짝 웃으며 내 등 뒤를 비추기 시작했다.
바보같았다. 무엇이 그리 신경쓰여 나는 솟아 오르는 해를 기다리지 못했던건지.
차가운 밤이 얼려놓은 땅을 아침해가 녹이고 있다.
꽁꽁 얼어있던 땅 속의 수분이 자유를 찾은 듯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자책으로 가득하던 내 마음은 다시 경탄으로 가득차올랐다.
아 !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지.
자연은 너무도 위대하고 신비롭다.
다음 마을은 금새 나타났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작은 바에서 우리는 쉬어가기로 했다.
아침으로 빠따따 또띠야와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따뜻하게 데워져 나오는 또띠야와 뜨거운 커피가 내 몸을 부드럽게 녹여준다.
가게 마당에 있는 배 나무에서 배를 따 먹고, 휴식을 취하던 다른 순례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그나시오 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순례자의 무리가 있었는데, 그가 감기에 걸린 까뜨린에게 감기약을 주었다.
물에 바로 타서 마시라고 그는 지켜보며 얘기했고, 까뜨린은 아빠말을 듣는 어린아이 처럼 그의 말을 들었다.
약은 쓰고 맛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전해져 금방 좋아질 것만 같았다.
오며가며 얼굴은 종종 마주친 순례자들, 하지만 나는 거의 초면이었기에 굳이 먼저 말을 걸진 않았다.
이미 나는 too much 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순례자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그나시오 일행이 먼저 떠나고 우리도 슬슬 정리를 하는데 굴리와 안토넬로, 그리고 케샤가 나타났다.
한바탕 거창한 인사가 쏟아지고, 우리는 먼저 길을 나섰다. 무릎이 계속 아픈 안토넬로가 약국엘 가야한다며 따라 나선다.
치료사가 더 이상 걸으면 안된다고 한 그의 무릎은 그래도 아직 잘 버텨주고 있었다.
아니면 안토넬로가 정말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말 독하고 대단한 청춘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엄청나게 가파른 언덕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곳을 오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앞이 깜깜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가파르지만 짧았다는 것 정도 ?
800m 정도 되는 듯한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 못해도 40도는 족히 되 보이는 언덕이었다.
그 길을 자전거로 오르는 사람들을 보며 처음으로 그들이 가엾게 느껴졌다.
늘 자전거로 쌩쌩 달리는 그들이 부러웠는데 말이다.
한번 멈추면 다시 오르지 못할 것 같아 쉬지 않고 걸었다.
무거운 배낭이 자꾸 나를 뒤로 밀어내고 있어서 몸을 앞으로 숙이고 한발 한발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산이 없다고 했던가 ?
어느덧 편편한 구릉이 나타났고, 고개를 들고 돌아선 내 눈앞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초록빛으로 물든 밭이었다면 더 아름다웠겠지 ?
내가 산티아고를 꿈꾸며 늘 봐왔던 초록빛 들판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내 컴퓨터 모니터 바탕화면으로 지정해 놓은 그 길위에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는 모두 넋을 놓고야 말았다.
언덕 정상에는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온 순례자들을 배려한 듯한 쉼터가 있었다.
그곳에는 먼저 이 곳을 지나간 수많은 순례자들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나는 어렵지 않게 한국어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에 이 곳을 다시 와서 내가 쓴 글을 찾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
하지만 난 글을 쓰진 않았다. 이 길위의 모든 곳이 나의 흔적이 될 테니 말이다.
휴식을 마친 우리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라왔으니 이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진 않았지만 끝이 없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어제처럼 걷는 것이 지루하진 않았지만,
넓은 평원은 사막과 같았고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끝이 없을것만 같았다.
내 생애 이렇게 탁 트인 공간을 본 적이 있었던가 ?
없다.
이 넓은 땅덩어리가,
저 높고 푸른 하늘이,
눈부시게 새하얀 구름이,
믿기지 않을만큼 광대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점점 커져오는 육체의 고통에 경탄하는 마음은 저 구석으로 밀려나고 만다.
지루한 길의 중간쯤에 작은 샘이 나타났다. 우리는 샘에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사과, 바나나, 자두, 오렌지를 가져다 두고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Donation ! .. 우리는 그 곳에 앉아 쉬면서 과일을 가져다 먹고 과일 값으로 동전을 꺼내 드린다.
그저 짤랑이는 동전을 던져 준 셈이지만 사실 '그저 동전'인 1유로나 2유로면 하루치 숙박을 해결하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면 수퍼에서 사 먹는 것 보다 훨씬 비싼 금액을 기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보통 1유로면 바나나 한송이, 혹은 서너개의 과일을 살 수 있다.)
순례자를 노린 그들의 머리좋은 술수에 기가 차기도 하지만,
그저 자연의 열매를 덥고 힘든 시기에 맛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손해 본 것은 아니라 서로에게 얘기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리는 또 걷는다. 그리고 다음번 마을에서 우리는 모두 주저앉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 마을에는 제대로 된 바나 레스토랑이 없었다. 그저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있을 뿐이었고,
지치고 허기진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참치와 빵을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케샤까지 합류하여 우리는 모두 넷이었다.
살라미도 사고 치즈도 산다. 네명이 되니 음식을 사서 나눠먹기는 딱 좋았다.
슈퍼 주인아주머니께 힘들게 부탁하여 화장실을 쓰고, 밖으로 나왔더니 마땅히 음식을 먹을만한 곳이 없었다.
지친 순례자들이 장소를 따지겠는가? 그저 우리는 뜨거운 햇살만 피하면 됐었기에 건물 그늘에 주저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살다가 이렇게 길 위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기는 처음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거지가 아니고 순례자기 때문에 괜찮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들, 땅바닥에서 빵을 자르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사실 난 담담한 척 괜찮은 척 하긴 했지만 마음은 조금 불편했었다. 길에서 무엇인가를 먹는것에 익숙치 않다는 것 보다는
조금 더 걸어가서 편안하고 쾌적한 곳에서 편안하게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탓이리.
그 날 함께 그 상황을 공유했던 친구들은 이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 궁금하다.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렀다.
시간은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림같이 아름답지만 너무나 뜨거운 길이 시작되었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는 오늘 30km를 갈지 37km를 갈지 정하지 않았다.
상황을 봐서 가던지 멈추던지 하자고 했지만, 둘 다 너무도 긴 길이긴 매한가지였다.
마을을 벗어나는 어귀에서 작은 샘을 발견했고, 그 곳에서 쉬고 있는 굴리와 안토넬로를 다시 만났다.
"와우 ! 우리는 너희들이 훨씬 앞에 있을 줄 알았어 ! "
굴리는 정말 유쾌하다. 그 시원시원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란 !
우리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노 안토넬로가 산드라와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이탈리아노와 브라질리언이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둘 다 스페인어에서 파생된 언어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대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뭔갈 서로 얘기하고 있다.
이틀간 그녀와 대화를 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길 옆으로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뜨거운 태양 아래서 연약한 풀잎들을 보호하려면 쉴새없이 물을 뿌려줘야 할 것이다.
뜨거운 몸을 식히기 위해 우리도 잠시 멈춰 서서 스프링 쿨러가 우리쪽으로 향하길 기다렸다.
시원하게 물이 흩뿌려졌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줄기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머리위로 시원한 물이 뿌려진다.
그런 서로의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함께 또 웃고야 만다.
파랑고 하얗고 푸르르다.
어린시절, 내가 그림속에 그리던 하늘과 구름이 이러했으리.
밭을 따라 만들어진 작은 수로에도 구름이 떠 있다.
메마르고 뜨거웠던 스페인의 여름,
지금은 그 열기는 모두 잊혀지고, 아름다운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함께 길을 걷던 굴리가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마음에 든다.
마지막 6km를 앞둔 마을, 우리는 물을 구하러 그 마을의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오 마이 갓 !
그곳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고, 풀장도 있었다.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이미 그곳에서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oh ~ I really wanna jump there ! "
"Just do it ! "
정말 그 곳으로 점프하고 싶었고, 그 곳에 앉아있던 순례자들이 그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이틀 뒤면 안토넬로의 생일이었다.
안토넬로는 자신의 생일에 꼭 함께 해 주어야 한다며 우리에게 오늘 37km를 걸어달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하고 있었다.
너무 힘든 우리는 대답하진 않았지만, 안토넬로를 좋아하는 까뜨린이 그 것을 거부하진 못하리라는 것은 뻔했다.
그만 걷고 쉬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틀 만 더 참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에 테라스에서 맥주와 샐러드를 먹고 있는 인나언니를 발견했다.
언니는 한국말로 통화중이었다. 아마 한국에 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중인 듯 했다.
시원하게 맥주 한모금 들이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인나언니에게 살짝 인사만 하고서 나를 기다리는 산드라와 까뜨린에게로 간다.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바를 우리는 지나치지 못하고, 콜라 한잔을 하기로 했다.
바의 직원들도 씨에스타 시간이라 모두 자리에 없었다.
자판기에서 시원한 콜라를 하나씩 뽑아 들고 그늘을 찾아 앉았다.
콜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이 뜨거운 나라에서 콜라가 주는 그 시원함과 청량함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씨에스타 시간이라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뜨거운 스페인의 4시, 그늘조차 뜨거운 그 시간에 우리는 콜라에 의지한채 우리만의 작은 씨에스타를 즐기고 있었다.
한시간 가량을 우리는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보냈다.
어느덧 다섯시가 되어 햇살이 그 열기를 조금 접어넣고 있었다.
까뜨린의 강인한 의지로,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실 한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지만, 기왕 걷기로 마음 먹은거 그냥 참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걷기 좋은 길이 이어졌다.
편편했고, 보드라웠으며, 그늘이었다 ! .
이 아름다운 길을 우리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뚜벅뚜벅 걸었다.
감탄할 힘도, 말할 힘도 없었기에 그저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마을에 도착했다. 6km, 그런데 시간은 50여분이 지나 있었다.
세상에.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50분만에 6km를 걷다니 !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신이 알아서 땅을 줄여 준 듯한 기분이었다. 신기해하며 우리는 알베르게로 향했다.
케샤, 후미야, 켄따루, 몰리 등 우리의 친구들이 알베르게 입구에서 포옹으로 반갑게 맞이해줬다.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해 주며 다시 만나게 됨을 기뻐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이 인사가 이젠 너무 좋게 느껴진다.
다행히 알베르게에는 느지막히 도착한 우리를 위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우리는 임시로 만든 듯한 뒷편 공간에 만들어진 방을 배정 받았고 그 곳에서 1층으로 된 매트리스를 고를 수 있었다.
아.. 정말 행운이었다. 삐걱거리는 2층 침대가 아니라니 !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지경이었다.
짐을 풀고 씻고 우리는 슈퍼마켓을 찾아 밖으로 향했다.
산드라는 그곳에서 브라질리언 친구들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는다고 했고, 나는 까뜨린과 케샤와 함께 마을을 돌았다.
그리고 그냥 밥해먹기도 너무 지치고 귀찮아서 작은 피제리아(PIZZERIA) 로 들어갔다.
각각 메뉴를 하나씩 고르고 와인을 한병 주문했다. 나는 치킨카레를 골랐다. 오랫만에 먹는 밥인 듯 했다.
저녁을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굴리가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 테이블로 와서 합석해도 되겠냐 묻고 앉는다.
그리고는 씨끌벅적 하게 어제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아주 웃겨 죽을려고 했다. 사실 웃음 포인트를 놓친 나는 따라 웃긴 했지만 좀 당황스러웠다.
왜지 ? 왜 저렇게 웃는거지 ?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제 우리가 끝도없이 지루한 회색빛 길을 걷고 있을때, 까뜨린이 굴리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5km앞에 장례식이 있어. 그러니까 힘내."
....
..
..
그녀는 5km 앞에 샘이 있어.. fountain 이라고 말을 한다는걸 잘못해서 funeral 로 얘기해버린 것이다.
샘은 순식간에 장례식이 됐고, 그 말을 들은 굴리는 배를 잡고 넘어간 것이었다.
근데 사실 난 그렇게 미친듯이 우습지는 않았다.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는 굴리와 케샤를 보며 당황스러울 정도였으니.
까뜨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만하라고 외쳤지만 그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이건 비단 영어 실력만의 문제가 아닌 듯 했다. 문화 차이, 혹은 관습의 차이로 웃음 포인트가 다른 것이리.
아무튼 나역시 따라 웃긴 했지만 웃으면서도 참 묘한 기분이 드는 상황이었다.
웃음은 레스토랑을 나와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 까지 계속됐다. 까뜨린과 나는 방으로 들어갔고,
굴리와 케샤는 와인을 한잔 더 하겠노라며 주방에 있던 친구들과 함류했다.
까뜨린과 나란히 붙어있는 매트에 누웠다. 옆에 누군가가 이렇게 가까이 있어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각자의 침낭에 누워 우리는 한마리의 애벌레처럼 잠을 청했다. 우리의 모습이 우습다며 굴리가 사진을 찍어줬다.
옆에 누워있는 까뜨린을 보니 어쩐지 언니가 생각났다.
이 금발의 하얀피부를 가진 친구와 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이젠 거의 가족같았다.
고마운 친구, 하지만 오늘 밤도 어쩐지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왜 이리 복잡하기만 한가 모르겠다. 막상 혼자가 될 자신도 없으면서 말이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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