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D+17. Happy Birthday !

2011년 9월 7일.   

Car. de los Condes    >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26.6 Km  

평소보다 일찍 깨려고 한건 아닌데, 가려움으로 일찍 일어나고야 말았다. 

히데오상은 벌써부터 떠날 채비를 다 하고 있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떠나려는 그에게 생일축하해요 ! 라고 말했다. 

일어나자 마자 그의 생일을 잊지 않아 다행이었다. 

고맙다고 말하고 그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워 한참 부어오른 듯한 뜨거운 내 팔을 만지고 있었다.

배드버그는 유럽에선 악명높기로 소문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몸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모두가 배드버그에 물린 사람을 피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알베르게는 출입을 받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두려웠다.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내가 어떤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설마 물리기야 하겠어 ?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언니가 가져가라고 그렇게 챙겨준 비오킬을 버리고 온 것이 너무 후회스러운 순간이었다. 

이걸 뭐라고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옆 침대에서 일어나는 까뜨린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자마자 까뜨린은 오마이갓을 외친다. 그리고 그의 잠옷 바지를 걷어 올린다.

Oh my god !  

그녀의 다리는 온통 붉은 반점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물린 자국들. 

"Hey ~ We are same ! " 

그리고 붉게 팅팅 부어있는 내 팔뚝. 우리는 서로의 팔다리를 보며 웃고야 말았다. 

우리는 딱 붙어서 잠을 잤던 이틀전의 프로미스타의 알베르게가 이 사건의 발생지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배드버그에 물리면 일자로 주르륵 물리게 되는데, 그것은 배드버그가 몸을 일자로 기어다니며 물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우리는 팔다리 모두 온통 물려 엉망진창인 상태였는데, 누가 봐도 배드버그에 물렸구나 라고 알 수 있을만한 상태였다. 

끔찍한 가려움 보다 더 끔찍했던 것은 아직 내 몸 어딘가에 배드버그가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나서야만 했고, 배드버그 소탕은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8시에 마을 입구에 있는 바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었다. 까뜨린과 내가 나섰을때는 이미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와 있는 상태였다. 부에노스 디아스 ! 아침인사를 나눴지만 배드버그 테러에 나와 까뜨린은 정신이 쏙 빠진 상태였고, 유독 즐거워 보이는 안토넬로에게 생일축하한다는 말을 해야함을 잊고야 말았다. 히데오상 한테는 잊지 않고 했는데 말이다 ! 이런. 

커피를 시킨 나와 까뜨린, 그리고 케샤만 남고 다른 친구들은 먼저 떠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안토넬로의 생일임이 생각이 났다. 

나중에 만나면 꼭 생일축하한다고 말을 해 줘야겠다 생각하며, 까뜨린과 버물리를 사이좋게 나눠 바르며 아침을 먹었다. 

오늘의 첫코스는 무척 힘든 길이었다. 18km 지점이 되는 곳 까지는 마을이 하나도 없는, 끔찍한 코스다. 

우리는 먹을것을 넉넉히 준비했고, 그로 인해 가방은 평소보다 더 무거웠다. 

조금 덜 뜨거운 오전에 가능한한 많이 걸어야 뜨거운 오후가 조금 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런히 길을 걸었다. 

중간에 샘도, 화장실도 없는 길이었기에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약간씩 거리를 두고 걸었다. :) 

햇볕이 팔에 닿으니 간지러움이 더 심해졌다. 걷기에 몰입을 하면 가려움이 잊어질 것만 같아 쉼없이 걸었다. 

케샤는 우리에게 모기에 물린거라고 얘기하며 위안을 주려고 애썼다. 그랬음 좋겠지만, 그럴리 없다는 것을 알았고, 

뭔가가 내 몸을 온통 기어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 불쾌한 느낌에 더 빨리 걷게 되었다. 

다음 마을에서 꼭 약을 사 먹으리 !

평소보다 빨리 걸은 우리들은 정말 놀랍게도 히데오상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보다 두시간은 일찍 출발한 히데오상을 만나다니 ! 이것은 기적이었다. 

히데오상은 켄따루와 후미야와 함께 걷고 있어다. 그의 생일이라 그들이 그와 함께 걸어주기로 했으며,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든 그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 왔다고 했다. 철없고 생각없는 친구들이라고 욕했지만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를 챙기는 마음이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히데오상도 고마움을 느꼈으리.

우리는 함께 천천히 걸었다. 부분부분 빨갛게 부어있는 까뜨린과 나의 팔을 보며 다들 모기일거라고 얘기한다. 

정말.. 까뜨린과 함께 배드버그에 물렸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 

몇번이고 까뜨린에게,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함께 물리게 되서 다행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녀 또한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고, 우리는 적어도 우리 둘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했다. 

세시간여를 쉼없이 걸었을까 ?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지만 쉬어갈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전에는 길바닥에 잘도 앉아 쉬었지만, 배드버그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이후로 그런 곳에 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배려였을까 ? 성수기에 한번씩만 문을 연다는 작은 간이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있었다. 야호 ! 

우리는 바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간이 매점 같은 곳이라 음식이 마땅치 않았다.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아닌 일회용 컵에 주는 자판기 커피 였지만 앉아서 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표정이 좋지 않다. 왜 그랬을까? 

잠시 쉬고 우리는 다시 길을 걸었다. 

하늘은 여전히 너무도 파랬고, 공기는 참을 수 없이 건조했다. 

노오란 흙먼지 사이를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 

하늘로 올라가라는 걸까 ? 

하늘을 향하고 있는 노란 화살표가 우습다. 할수만 있다면 나도 그래보고 싶다. 

우리는 길에서 모두 만나고야 말았다. 

안토넬로와 함께 걷고있던 굴리, 몰리, 알렉산더 등등. 

그리고 우리는 열댓명이 다같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18키로 끝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 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소세지와 맥주를 먹었다. 

자기 생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계산을 하겠다며 히데오상이 소시지 값을 계산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즐거워보이지는 않았다. 

생일이면 유독 더 허전한 마음이 드는 나이기에 어쩐지 그가 기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있지만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그는 더 외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종종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를 조금 더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해본다. 

레스토랑 안에서 뜨거운 낮 내내 태양을 피해 입고있던 나의 하얀 겉옷을 벗었다. 팔이 오전보다 더 부어있었다. 

나의 팔을 본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걱정을 하고 나섰다. 이것이 배드버그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이것은 배드버그는 아니고, 배드버그보다는 조금 나은 어떤 종류의 것에 물린 것일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배드버그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1. 진체스 : '빈대'로 요녀석이 정말 악독하다. 

2. !@#$ : 두번째 녀석인데 진체스보단 낫다. 

3. $%^& : 세번째 녀석인데 두번째 보다도 낫다. 

이름은 진체스 말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까뜨린과 내가 물린 것은 두번째 녀석이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었고, 

친절한 한 스페인 부부가 자기도 지난주에 물렸는데 이 약을 바르고 금새 좋아졌다며 연고를 하나 줬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고, 까뜨린과 나는 그 약을 나눠 발랐다. 

사진도 하나 못 찍어 둔 것이 못내 아쉽다. 금새 잃어버릴 줄 미처 몰랐으니까. 

이제 우리는 앞으로 7km 정도를 더 갈것인지, 아니면 10km를 더 갈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안토넬로는 10km를 더 가길 원했지만 우리는 모두 너무 멀다고 반대를 했다. 

일단 걷자 ! 라고 얘기하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스토랑 밖에 있는 샘에서 비어있던 물통을 채우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폴란드인 토마스와 이탈리안 샤샤, 

이 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내가 이들을 만나고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금새 지치고야 말았다. 조금 전에 마신 맥주 탓일 것이다. 

햇살은 뜨거웠고 길은 경사가 시작됐으며 그늘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긴 휴식과 맥주는 길을 다시 걷는 것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지만서도, 

우리는 그 달콤한 유혹앞에 늘 무너지고 만다. 이렇게 후회하게 되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 말이다.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 

다같이 걷는 것은 유쾌하다. 이 친구랑도 이야기 해 보고 저 친구랑도 이야기 해 본다. 

하지만 걷기도 힘든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얕은 영어 실력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뜨거운 태양아래서 생각하길 멈추고 싶어하는 내 머리는 계속되는 대화에 거의 카오스 상태가 되버리고 말았다. 

한시간여를 더 걸어 나온 다음 마을, 조그만 그늘 아래서 우리는 모두 퍼지고야 만다. 

아마 이 기간 이 길을 걸어간 그룹 중 가장 큰 규모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안토넬로의 고집에 따라 우리는 모두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한다. 

4km 정도만 더 가면 되기에 힘을 내자고 서로를 다독이며 길을 걸었다.

나는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었는데, 

꽤나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눈 것 같은 기분은 드는데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다. 

진지했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나보다. 

몇몇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고, 몇몇은 춤을 추며 길을 걸었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들이다. 

이윽고 우리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꽤나 늦은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방이 넉넉하지 않았다. 

방을 알아보러 들어간 안토넬로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침대가 없냐는 물음에, 8유로 짜리 침대가 8개 밖에 남지 않아 4명은 12유로짜리 침대에서 묶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대부분이 학생인 이 어린 친구들은 12유로짜리 침대에서 묶을 수 없었고, 샤사와 시몬은 8유로도 비싸다며 밖에서 자겠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모두 12유로짜리 침대에서 자는 것을 원치 않았고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12유로짜리 침대에서 자도 괜찮으니까, 일단 나는 빼줘. 

라고 얘기한다. 까뜨린도 나와 함께 12유로 짜리 침대에서 자겠노라 말한다. 

우리가 늘 힘들어 했던 이 소소한 금전적인 문제로 분위기가 또 이상해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또 나이가 많은 히데오상과 굴리에게 함께 12유로짜리 방에서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Don't care . 

그렇게 우리는 12유로짜리 침대를 선택했고, 그들의 고민은 해결됐다.

오늘이 생일인 안토넬로는 어떻게든 우리의 추가비용을 함께 공유하려 애썼지만 다른 이들의 반응은 차가웠고,

안토넬로에게 그럴필요 전혀 없다고, 우리는 더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것을 선택 한 것이니 걱정마라 얘기한다. 

12유로짜리 침대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방에 침대가 4개있는 4인실이었고, 욕실이 딸려 있을 뿐 ! 

사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나다. 4명이서 한방을 사용하고 욕실이 방에 있다니 ! 와우. 

4유로 더 내도 아깝지 않은 상황이었고, 까뜨린과 나는 만족했다. 

온몸을 깨끗히 씻고 어제 알베르게에서 빨아 놓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뜨거운 햇볕아래로 모든 짐을 가지고 나가 펼쳐 놓았다. 

누구는 뜨거운 자외선에 천으로 된 모든 것(배드버그는 주로 섬유 속에 숨는다고 한다.) 을 널어두면 

배드버그가 없어진다고 했고, 누구는 제대로 된 살균을 하지 않는 이상 배드버그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 우리는 햇볕 아래 침낭을 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옷가지들을 널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몇몇 친구는 낮잠을 자고 있었고, 몇몇은 잔디밭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굴리는 컴퓨터로 열심히 블로그를 쓰고 있었고,(그는 거의 매일 매일을 블로깅하고 있었다.) 

켄따루는 일본에 있는 여자친구와 화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간만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루이스가 보내 놓은 메일이 깜빡이고 있었다. 

이틀전에 보내어 진 메일, 간단한 안부를 묻고 있었지만 마음이 어쩐지 쿵쾅거렸다. 

그는 잘 도착했고, 모든 것이 다시 안정되고 있다고 했다. 나를 걱정해주고 힘나게 해 주는 그의 짧은 메일,

그리고 그는 여전히 작은 새를 날려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일곱여줄의 메일, 나에게 그 메일은 작은 행복이었다. 

나를 아직 잊지 않아 준 것이 고마웠고, 그 역시 나를 꽤나 자주 생각했음을 알게 되어 기뻤다. 

여전히 나의 카미노를 걱정해 주고 행운을 빌어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메일과 함께 전달 된 느낌이었다. 

그에게 짧은 답장을 썼다. 

간만에 사용한 컴퓨터라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도 메일을 썼다. 

아마 오늘부터 나는 꽤나 자주 메일함을 확인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방으로 돌아가 침대로 올라가 쉬었다. 내 아래 침대에는 굴리가, 그리고 반대쪽은 히데오상이 쓰기로 했다.

까뜨린과 굴리는 없었고, 히데오상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다. 그는 정말 성실하고 꼼꼼한 일본인이다.

매일매일 모든것을 정리하고 또 쓴다. 나도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 

나의 노트. 안토넬로의 생일 

참 우습게도 어느덧 이 생활에 적응해버렸다. 배드버그가 물어 간지러워도 상황이 그리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 작은, 보잘 것 없는 커뮤니티 속에서 갈 곳을 잃어 방황한다. 차라리 혼자임이 나으리. 

머릿속은 점점 비어져 간다. 데일듯이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 아래에서 그저 뇌가 사고를 멈췄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모두다 너무나 다르고, 또 비슷하다.

우리는 왜 이토록 뜨겁고 낯선 스페인 땅에 와서 정처없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고 있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길을 시작하였고 또 무엇을 얻고 있는가. 

사실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아름답고 넓은 세상에 대한 신비로움. 그것이 전부이다. 

내가 몰랐던 넓고 평평한 세상, 매일매일 하늘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햇살이 다르고, 

그것을 느끼고 그저 경탄할 뿐이다. 

- 일본인 아저씨, 히데오상과의 대화로 중단- 

# 

"히데오상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나요? "

시작은 그러했다. 그냥, 나는 왜 여기에 있는걸까를 생각하다 보니 그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속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는 일본인, 매일 봐 오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그는 잠시 당황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더듬 더듬 한국말로 단어를 찾아가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카미노를 위해 3년간의 준비를 했다. 

모든 구간의 지도를 찾아서 뽑고, 일본어-한국어-영어-스페인어로 된 단어집을 준비해서 그렇게 이곳으로 왔다.

첫 날의 알베르게 오리즌에서 그는 한 프랑스인 순례자로부터 이런 것들은 다 필요없고 무겁기만 하니 버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정성스레 준비하고 젖어서 망가질까 코팅까지 해 온 그의 엄청난 자료들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그의 말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꼭꼭 챙겨오다가,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없다고 했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가 살아 온 곳과 다른 세상이었고, 

느긋하고 태평스럽게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았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이 너무 느려 불평하는 그에게 "여긴 스페인이니까요~ " 라고 말해준 한 호스피탈레로의 말, 

그는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도 너무 욕심을 냈던 자신이 스스로 챙피했고, 모든 사람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마음속에 감동으로 다가와 이 곳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걸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아무 욕심없이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로 인해 지금의 자신이 여기까지 걸어 온 거이라며.. 그렇게 감격에 겨워 말하는 그의 모습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저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만,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느껴졌다. 그의 진심이, 그의 마음이 참 따뜻하다. 

우리의 대화는 저녁시간이라며 우리를 데리러 온 까뜨린에 의해 중단됐다. 

그리고 우리는 알베르게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대화는 중단되었지만, 히데오상이 한결 가깝게 느껴진다. 

생일 축하합니다 ! 

우리는 생일 축하 노래를 안토넬로와 히데오상을 위해 불러주었다. 

이 특별한 이벤트를 알아 챈 알베르게 주인이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선사했다.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별 것 아닌 작은 캔디였지만, 모두들 너무 기뻐했고 감사해했다. 

마흔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두 남자의 생일, 같은날 태어난 그들은 아마 서로에게 더 큰 친근감을 느꼈으리 ! 적어도 오늘은 말이다.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비싼 샴페인 두병을 주문한 오토상 덕에 우리는 너무도 맛있는 스페인의 샴페인을 맛볼 수 있었다. 

모두가 모두에게 고맙고 축하한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히데오상이 생일을 맞이하여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영어가 서툴렀기에 한국말로 말을 했고, 나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대화하는 히데오상을 보고, 나를 일본인으로 착각하곤 했다. 

그들에겐 일본어인지 한국어인지 구분 할 작은 실마리도 없으니 그럴수밖에 ! ) 

 

왜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인 친구들에게 통역을 부탁하지 않았을까? 

아마 좀 전까지 나에게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탓이리. 

그는 아까 나와 나누던 대화와 같은 내용들을 이야기 했다. 

그가 이 곳에 와서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는지를 이야기 했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자고 이야기했다. 

이 곳에서 우리를 만나 생일을 함께 보내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고, 우리 모두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야기했다. 

감동받은 케샤는 살짝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포옹을 했다. 

레스토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축하하고, 멋있었다고 말을 했다. 

24번째 생일을 맞은 안토넬로와, 62번째 생일을 맞은 히데오. 

살아온 날은 달랐지만, 그들은 오늘 다시 태어났기에 예전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생일을 맞이 한 그들 뿐만이 아니다. 이 곳에서 우리는 모두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이 끝나고, 알베르게 앞의 테라스로 나가 와인을 한잔 더 즐겼다. 

밤하늘의 별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 머리위로 쏟아지고 있는 은하수, 그 수많은 별들 ! 

아 !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까맣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사진을 찍었다. 전혀 찍히지 않는다. 

아마 나는 이 사진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혼자 정원 한가운데로 걸어나왔다. 그리고 그 곳에 조용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본다. 

맑고 까만 하늘. 반짝이는 별빛들. 

나의 오늘을, 나의 카미노를, 이 고마운 친구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반짝이는 별빛같은 눈을 가진 루이스도 생각해본다. 그가 나에게 준 작은 행복들,

어느덧 많은 기억들이 잊혀져버리고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더 잊혀져 가겠지. 

잊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