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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19. 불편함.





2011년 9월 9일.   


El burgo Ranero   >  Leon   |   41 Km  






과연 41km를 걸을 수 있을까 ? 





레온에 도착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새벽부터 요란하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다. 밖은 여전히 깜깜하다. 

이미 출발한 순례자도 꽤 있는 듯 하다. 보통 10시에 잠이 드니 5시에 일어나도 7시간은 잔 셈이지만,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것은 왠지 엄청 힘들게만 느껴진다. 


자리에 누워 스트레칭을 한다. 41km를 걸어야 한다는 압박이 상당하다. 

까뜨린이 짐을 거의 다 싼 것 같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짐을 싼다. 


밖으로 나가보니 우리 친구들은 벌써 아침을 먹고 있다. 그리고 밤 하늘에는 새벽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아 !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양의 밤하늘, 그리고 은하수. 



나는 또 그렇게 밤 하늘, 아니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이 까반밤과 반짝이는 별은 언제봐도 경이롭다. 





커피와 사과, 그리고 약간의 쿠키를 먹고 마을을 출발했다. 

여섯시쯤 된 시간이었지만 주변은 여전히 한밤중이었다. 처음으로 손전등을 켰다.  

너무 깜깜해 앞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손전등 불빛 의지한채 그렇게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제 물집치료가 제대로 안됐나보다. 새끼발가락부터 전해져오는 지릿한 고통이 꽤나 신경쓰인다. 

그래도 어둠속에서 걷는 긴장감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도로가로 좁에 그려져 있는 인도를 따라 걷느라 무척 신경을 써야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차들이 제법 다니고 있었기에 그들에게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수시로 알려야 했다. 


내 머리위로 펼쳐진 은하수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땅을 바라보며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왜 사람들은 이렇게 어두운 밤에 출발을 하는 걸까 ?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새벽 걷기가 썩 맘에 들지 않는다. 다음에는 결코 그러지 않으리.





한시간쯤 걸었을까? 서서히 동이 터 오는 듯 했다. 


시야가 조금씩 밝아짐이 느껴졌다. 끝없이 이어진 편편한 아스팔트 길의 오른쪽으로 해가 고개를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끝없이 평평한 지평선 위로 붉은 줄이 그려져있다. 




아 ! 









몇번이고 길을 멈추고 돌아서 해가 떠오르길 기다렸다. 


하지만 너무 일찍부터 기다린 탓일까, 해가 떠 오르는 시간은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아마 걷다가 계속 돌아봐야 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해는 떠오르지 않을 것 처럼 감질맛 나게 하다가

나 몰래 어느새 번쩍 올라와 버렸다. 




에잇. 





길은 주욱 아스팔트로 연결되어 있었다. 간지러움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젠 발가락의 물집이 나를 너무 괴롭게 했다. 

하나의 고통이 사라지면 또 다른 고통이 생긴다. 우리의 삶과 같다. 정말 신기하다. 



중간중간 나온 레스토랑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발목에는 파스를 꽤나 여러번 뿌렸고, 배드버그 물린 곳에 여러번 버물리를 발랐다. 



아침 일찍 출발한 친구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고, 우리는 거리의 압박에 그저 걷기만 했다. 


사진도 찍지 않았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 



아스팔트는 너무 지루하고 단조로웠고, 지나가는 마을마다 우리를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스페인 사람들을 만났다. 

눈이 마주쳐도 웃어주지 않고, 인사를 건네도 대답하지 않는다. 


대도시가 가까워 지고 있다는 흔적. 차가운 사람들. 




정말 최악의 코스였다. 


이미 악명높은 길이라 몇몇 사람은 차편을 선택하기도 했다. 

나는 젊은 혈기와 꼭 걷고야 말겠다는 고집으로 걷기를 선택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 코스는 비추다. 




한 바에서는 배드버그에 물린 우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아 불쾌함을 줬고, 

한 레스토랑에서는 우리가 들어가도 인사는 커녕 주문조차 똑바로 받아주지 않아 짜증을 일으켰다. 



세상에. 



길만 최악인게 아닌 모든 것이 최악인 날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고, 뜨거운 태양과 아스팔트의 열기로 온 세상이 뜨겁기만 했다. 

우리는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내 머릿속은 '이건 미친짓이야.' 라는 생각만 반복됐다. 



어떻게든 레온을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걷고 있을 뿐. 


뜨거운 스페인의 세시, 이미 9시간째 걷고 있었고 지칠만큼 지쳐 있었지만 레온은 아직 멀기만 했다. 

두번 다시는 40km 따위는 걷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태양의 위세에 고개를 떨군채 길을 걸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씨에스타를 갖는 그 뜨거운 시간, 

그 시간에 길 위를 걷는 건 우리 순례자들 밖에 없었다. 심지어 개들도 그 시간에는 돌아다니지 않았다. 


우리가 걷는 길 가에서는 소들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파리떼가 달라붙어 엉망이었지만 소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파리떼를 쫒을 기력조차 생기지 않는 뜨거움이었을 것이다. 



풀밭에서 낮잠자는 소를 부러워 하며, 나는 지금 왜 이 길을 걷고 있나에 대해 자문해가며, 그렇게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다음 휴식처에서 까뜨린에게 얘기를 했다. 




"아까 낮잠자고 있던 소들 봤어?" 


"응? 소가 있었어 "


"우리가 걷던 길 오른편에 소떼가 낮잠자고 있었는데 못봤어 ? "


"응. 전혀 못봤어." 




소 팔자가 우리보다 낫다라고 말하려던 나는 할말을 잃고야 말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정말 이런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나름의 생각이 있었고 거기에 집중하다보니 주변을 못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아마 그녀는 내가 걷다 쓰러졌어도 눈치채지 못하고 걸었을 것이다. 

그녀와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은 계속 했지만 이렇게 강한 확신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이제 정말 더이상은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레온에서는 정말 혼자가 되리라 다시 다짐했다. 










저 멀리 레온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지금까지 봐 온 도시들 중 가장 큰 규모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기에는 가깝지만 아무리 걸어도 계속 멀리 있는 도시, 그곳이 바로 레온이었다. 


물집이 계속 커지고 있는게 느껴졌다. 발은 고통스러웠고 다리는 감각을 잃은 듯 했으며 머리조차 괴로웠다. 



아.. 레온. 



정말 너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 




레온에 진입해서 알베르게를 찾아 가다가 나는 결국 주저앉고야 말았다. 

발가락의 고통이 너무 심해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신발을 플립플랍으로 다시 갈아신었다. 발가락의 물집이 제 혼자 터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의 약국에서 밴드를 사서 붙이고, 그래도 빨리 숙소를 찾아가 가방을 벗어던지고픈 마음에 쩔뚝이며 길을 걸었다. 



새끼발가락의 물집 하나가 내 다리를 쩔뚝이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는 내 몸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이다. 





정말 더 이상은 걷지 못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간신히 숙소에 들어섰다. 


성당 근처에 있는 커다란 알베르게였다. 대도시답게 알베르게는 엄청난 규모였고, 한 방에 낡은 침대가 수백개씩 들어 있었다. 

이 곳에서 잘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끔찍했지만, 일단 짐부터 풀었다. 


산드라를 다시 만났고, 히데오를 다시 만났다. 굴리와 케샤, 몰리는 다른 숙소에 있는 듯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토넬로와 샤샤와 시몬, 그리고 켄따루와 후미야도 만났다. 

반가웠지만 그들을 다시 만난 것 조차 불편했다. 그 때의 나는 그저 혼자이고 싶었다. 



씻고 나와서 나는 까드린에게 내일은 걸을 수 없을 듯 하니 여기서 하루를 더 머물겠노라 말했다. 


까뜨린은 아쉬워하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의 굳은 의지를 꺾진 못했다. 

까뜨린과 안토네로가 나와의 마지막 저녁을 함께 하고 싶노라고, 함께 나가 맥주한잔을 하고 저녁을 먹자고 청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따라 나섰고, 레온 대성당 앞에 있는 바에 가서 클라라를 시켰다. 



맥주값에 대한 안토넬로와 까뜨린의 작은 말장난이 이어졌고, 독일에서 온 세명의 순례자가 합석했다. 

그 중 한명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서 안토넬로와 스페인어로 얘기를 했고, 두명은 까뜨린과 독일어로 얘기를 했다. 

그들이 나에게 양해를 구했고, 나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얘기하고 혼자 맥주를 마셨다. 


안주로 나온 올리브가 맛있었다. 


한국에서 나는 올리브를 싫어했다. 하지만 올리브의 고장에 오니 너무 맛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게 위안이 됐던 건 집에서 만든 듯한 못생긴 올리브 뿐이었다. 




맥주를 마시고 저녁을 먹기위해 레스토랑 물색에 나섰다. 

그리고는 몇군데를 들어가서 가격을 묻고, 비싸다며 돌아 나왔다. 


나와의 마지막 저녁을 먹겠다고 하며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았고, 그저 싼 집을 찾는 그들이 심지어 미워지기까지 했었다. 

내 발은 정말 걸을만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말도 못하고 정말 .. 울고싶은 기분이었다. 



결국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물어 그들이 찾고자 했던 저렴한 따파스 가게를 찾았다. 


4유로에 와인 한잔을 시키면 따파스를 무료로 주는 가게로, 스페니쉬 피플들로 가득했고 

자리도 없어 길 가에 서서 음식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따빠스로는 치즈, 하몽, 초리소......가 수북히 한접시 나왔다. 

내가 잘 못먹는 음식 3종 세트. 




이게뭐야 !!!ㄲ@#$%#@$%!@%%ㅛ^&*&(*@#%@$





울고 싶다..


울고 싶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나는 내일 혼자가 될 것이다. 

정말로 혼자가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할 것이다.


어디서 부터 꼬였는지 알 수 없는 나의 까미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