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큰 도시인 사리아의 아침은 온통 잿빛이었다.
유럽에서는 간혹가다 마을의 지붕색을 통일시켜 놓은 도시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피렌체의 붉은 지붕과 같은..)
사리아는 회색으로 지붕을 칠하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날씨까지 흐려 정말 온통 우울한 회색빛이었다. 아틸라와 둘이서 특이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사람이 걸어왔다. 이그나시오 였다.
아침 일찍 출발하더니 왜 여깄냐는 물음에, 와이프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좀 길어져서 이제서야 올라 간다 대답했다.
간만에 와이프와 긴 통화를 했다고 하는 그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셋이서 걷기 시작했다.
순례자들이 몰라보게 늘었다. 지팡이와 조개껍질, 각종 기념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들도 많이 보인다.
카미노가 스페인에서 얼마나 큰 관광상품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단지 증명서를 받기 위해 이 구간을 걷기로 결정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결코 우리와 같은 순례자가 아니었다. 소리지르고 크게 떠들며 길을 걷는 그들은 관광객에 가까워 보였다.
"난 저 사람들이 저러고 카미노를 걷고서 카미노를 해냈노라 얘기한다 생각하면 너무 기분나빠."
아르헨티나 국기를 몸에 두르고 노래를 부르며 걷는 순례자들을 몇번이나 마주치고서
아틸라가 참지 못하고 불평을 했다.
"저건 정말 비호감이야. 그래도 저 사람들도 나름 느끼고 얻어가는 바가 있겠지 뭐. 우리와는 다르겠지만."
"그래 물론 그렇겠지만, 저런 엉터리 순례자들을 우리와 같은 순례자라 부르는 것 조차 너무 싫어."
"그러게. 그래도 어쩌겠어, 우린 그냥 우리의 길을 가는거지 뭐. "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적하게 길을 걸을 수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의 사람을 볼 수 없었는데, 완전히 달라진 이 상황이 조금 낯설다.
이 엄청난 순례자의 무리를 피해가고자
각종 소품들로 즐비한 다음 마을의 바에서 커피와 빠따따 또띠야를 나눠 먹었다.
우리는 조금 한산해진 길을 원했지만, 형형 색색의 옷들과 반짝이는 신발로 무장한 순례자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어쩔수 없어. 그냥 가자."
눈을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고, 좁은 길에서도 다른 사람을 제치고 걸어가기 바쁜 사람들이 많았다.
저들은 대체 왜 이 길을 걷는 것일까?
아틸라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앞서갔다. 그리고 나는 이그나시오와 함께 천천히 사람들을 피해 걸어갔다.
이그나시오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 와이프와의 통화로 정말 자신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를 느끼게 되었고,
너무도 달라지고 관대해진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간만에 전화를 건 와이프가 울먹이는 소리로 그가 아끼던 그의 벤츠를 누가 긁고 갔다고 했다고 한다.
예전의 그 였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텐데, 어쩐지 그는 울먹이는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깟 차가 뭐라고..
괜찮다고, 우리 형편에는 너무 좋은 차이니 이 참에 팔아버리고 조금 작은 차를 다시 사자고 말하는 그에게
와이프는 감동을 받았고, 그렇게 둘은 서로 전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한시간이나 와이프와 통화를 하게 되었고 우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그나시오는 원래 잘나가던 조선소의 팀장이었다고 했다.
그는 매사에 철두철미했고 인정머리 없는 차가운 상사였단다. 그의 부하 직원들이 모두 그를 피할 정도의 워커홀릭 이었다.
그러다 그는 우연히 요가를 접하게 되었고, 그가 살아온 지난 날들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고 했다.
돈도 어느정도 모였고, 피곤한 조선소의 삶에 지쳐버린 그는 일을 관두고 요가 인스트럭처로의 새 삶을 시작했다.
그의 새 삶도 잘 풀렸고, 지금은 기업과 부유한 개인고객의 사설 요가 인스트럭처로 활동하고 있었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지금의 삶도 만족스러웠지만, 가정에는 여전히 소홀한 자신을 이제서야 발견했다고 했다.
사랑을 잊고 살아왔노라고, 이제 다시 돌아가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겠노라 말했다.
인생의 두번째 변화, 반짝이는 그의 눈이 그가 반드시 그 일을 해내고 말리라는 것을 알려줬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부와 권력을 얻은 자가 그 모든것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선택과 결단력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끊임없이 자기반성을 하고 스스로를 되돌아 볼줄 아는 것에 더해 더 나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끄는 힘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이그나시오 였고, 그런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서 이야기 함은 내겐 정말 큰 행운이었다.
이그나시오는 20대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며,
어느 길도 옳거나 그르진 않으니 부담없이 원하는 것만 좇으라 이야기 해 준다.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면 또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 말한다.
조급해 할 것도 없고 걱정할 것도 없었다. 가보고 아니면 또 다른 길로 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다. 길을 가 보지 않고서는 잘못된 길인지 아닌지를 결코 알 수가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어떤 삶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일을 하던간에 두려워 하지 않고, 내가 원했던 길이 아니라고 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 자신이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버릴 수 없다.
틀린 길이면, 다른 길로 다시 가면 되는 것이다.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조금 뒤쳐졌다. 아틸라와 이그나시오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겠지.
혼자 천천히 걷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Hola, where are you from ? Japan? "
처음 보는 할아버지 였다. 역시 그는 사리아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생장에서부터 걸어왔다는 내 얘기를 듣고서는 깜짝 놀라신다. 700km나 걸어온 셈이다. 벌써 그만큼이나 걸었단 말인가?
시간은 손쌀같이 지나간 것 같은데, 벌써 700km를 걸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루이스였다.
루이스 ! 나는 그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물론 아틸라가 더 자주 내 뇌리에 있긴 했지만 매 순간마다 루이스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가 루이스라는 것을 안 순간 그 할아버지 역시 나와 어떤 인연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 반가워요. 내가 좋아하는 이름이에요. 루이스."
브라질에서 온 루이스는 올해 60살이 되는 할아버지였다.
지금은 그의 생일을 맞이하여 혼자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산티아고는 이미 두번째 오는 것이라 익숙했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생일에 혼자 카미노를 가겠다는 자신을 온 가족이 비난하고 있다고 했다.
"생일인데 왜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않고 이 고생스러운 길을 오셨어요 ?"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 있고 싶다던 루이스는 7년을 함께 산 두번째 부인과 갓 이혼을 하고 떠나온 길이라고 했다.
..
무어라 해 줘야 할까 ? 내가 답을 찾기도 전에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의 첫번째 부인은 55살이고 두번째 부인은 30살이었다.
그의 첫번째 부인은 발레학원 강사였고, 두번째 부인은 그 학원의 수강생이었는데 자신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웃긴건 그 첫번째 부인과 두번째 부인이 너무 사이가 좋아 늘 자신을 험담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
루이스는 정부 공무원이었고, 그의 가족은 꽤나 부유한 듯 했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 여러명의 처를 거느리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 말 할 정도로 말이다.
오른쪽으로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아틸라와 이그나시오가 보였다.
하지만 루이스가 말을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아 그들에게 눈으로 인사를 하고 그와 계속 함께 걸었다.
한참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루이스에게 나는 뭐라 해줄말이 없었다.
내가 말을 해 주기에는 너무 어렵고 곤란한 주제들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같이 찍었고, 자리에 앉아 같이 포도를 먹었다.
다짜고짜 그가 나에게
"You look so healthy."
라고 얘기했다..... 이건 뭐지.....
"Yes. I am. That's why I can walk here ."
뭔가 기분이 별로였다. 그를 피해야 할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조금 더 걷다가 다리가 아파 쉬어가겠노라 말을 했다.
그는 다음 마을에서 만나게 되면 밥을 함께 먹자고 말하고 길을 나섰다. 부엔 카미노 !
근데 미안하지만 별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할아버지.. ㅜㅜ
아마 그는 세번째 와이프를 찾으러 이 길을 온게 아닐까?
길 가에 있는 낮은 담벼락에 가방을 풀고 드러누웠다.
아틸라와 이그나시오가 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렇게 혼자 꽤나 오래 앉아 있었다. 왜 안오지 ? 라는 생각이 들때 즈음,
"Hola."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틸라다. 그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이 길 위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리고 기다릴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산의 정상 즈음에서 나온 작은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샌드위치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은 점심을 시켰다.
오징어 튀김과 샐러드, 샌드위치, 파스타까지.. 우리는 정말 엄청난 점심을 먹었다.
우리 주변 곳곳에 앉아있던 관광객 순례자들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라고 하기엔 조금 그랬다. 아틸라와 나는 가볍게 먹고 나서려고 했는데,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시킨 이그나시오덕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한시간 반쯤 앉아있으니 막 마음이 불안해지기까지 했었다. 언제 다 걸어가지 ? 싶은 생각에 조바심도 들었다.
아틸라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자주 쉬고, 천천히 걷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한마디씩 하는건 좋은데 12시간 이상을 길 위에 있는 것이
몹시 불안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젠 이렇게 걷는 것을 자신도 즐기고 있다 말한다.
비록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두배로 늘었지만 말이다.
동행이 한 명 늘어나면 쉬는 시간은 배로 늘어나는 카미노의 법칙이라 얘기하며 우리는 웃었다.
앞서가는 아틸라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 걷는 것이 좋다.
그는 금새 사라졌지만 또 분명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을 안다.
그를 찾는 것이 내 눈이 하는 첫번째 일이었다.
좁은 오르막길을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
이젠 하두 걸어서 별 생각도 안든다. 그냥 하늘, 땅, 뜨거움 따위를 생각할 뿐이다.
자전거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좁은 길이라 걸음을 멈추고 잠깐 옆으로 비켜섰다.
자전거도 멈춰서서 자전거를 끌고 내 옆을 지나간다. 어랏, 태극기다 !
"한국인이세요 ? "
간만에 만난 한국인이 너무 반가워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인사를 해버렸다.
한국인 아저씨와 아줌마, 그리고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어이쿠, 이런 곳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정말 반가워요! "
우리는 길가에 서서 가벼운 인삿말을 나눴다. 얼마만에 쓰는 한국말인지 !
"와 ~ 가족이 다같이 자전거로 오시다니, 대단해요. 자전거로 카미노를 하는 한국인은 처음봐요 ! "
"아휴 ~ 가족이라뇨, 저 두 분은 가족인데 저는 가족 아니에요 . "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아.. 가족이 아니었구나. 잠깐 당황스러웠다.
"그래 이 길은 얼마 동안 걷고있나? "
아저씨가 묻는다.
"음.. 생장에서부터 걸어서 지금 거의 한달쯤 된 것 같아요. "
"거길 다 걸었다고 ? 허허 이 아가씨 보게. 그래서 살은 좀 뺐나 ?"
...
...
당황했다. 너무도 한국스러운 질문이었다.
"아.. 저녁마다 친구들이랑 잔뜩먹어서 그런지 살은 안빠진 것 같네요. "
"그래. 이 길 걷는다고 살 빠지는건 아니라더라. 그래, 어디사나 ? "
"아.. 네 저는 경기도 살아요. "
"음.. 그렇구만. "
갑자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끼어든다.
"사장님은 좋은데 사시잖아요 ~ "
"허허 강남이 뭐 좋은덴가 ? "
"어머, 당연하죠. 8학군인데요 ~ 호호호호"
...
...
"자 . 이렇게 만난것도 기념인데 사진 하나 찍어야지. 사진 좀 찍어주게."
아주머니가 아저씨의 휴대폰을 들고 저만치 선다. 때마침 나타난 이그나시오에게 나 역시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그리고는 건강을 잘 챙기기를 빌고선, 아저씨와 여자애는 먼저 떠나갔다.
혼자 남은 아주머니가 내게 말한다.
"대단하신 분을 만나셨어요. 저분은 Lx ooo 사장님이세요. 한국 자전거 협회 회장님이기도 하구요.
자전거 협회 사람 열댓명이 함께 이 길을 왔어요. xx 작가 아시죠 ? 그분도 함께 왔어요.
그들이 아마 뒤에 따라 올거에요. 그 사람들 만나게 되면 우리를 만났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그녀도 홀연히 떠나갔다.
그랬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한국에선 이름만 대면 다들 알아주는 대기업의 사장님.
그리고 내 머릿속은 무방비 상태로 폭격을 맞은 듯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대단한 사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이그나시오가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다.
자신을 알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고 자연앞에 한없이 겸손한 수많은 사람들, 그 대단한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리라 생각하며 지내온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이 짧은 만남이 나를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직장도 없고, 집도 잘살지 못하고, 살도 빼지 못한 방황하는 청춘으로.
그랬다. 내가 사는 나라의 기준에서는 나는 보잘것 없고 낙오된 한 젊은이 일뿐이었다.
대단한 사람들은 돈이 엄청나게 많고, 잡지나 신문에도 자주 나오며, 이름에 ~회장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오늘 와이프를 사랑하겠노라 다짐한 사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며 눈물 흘리는 사람,
새로운 길을 찾고자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들은 절대 대단한 사람일 수 없었다.
내가 내려놓고 온 삶의 모습. 내가 살아왔고 아마 살아가게 될 삶의 모습이었다.
너무도 다르고 낯선 곳에서 잠깐 잊고 있었지만 결국 나는 그 곳에서 다시 치열하게 싸우며 대단한 사람을 꿈꾸며 살게 되겠지.
슬펐다. 그리고 왠지 비참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나를 지나쳐가지 않았다.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더 슬퍼질 것 같았는데 다행이었다.
우울해진 기분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대단한 사람' 이라는 단어만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먼지가 뽀얗게 피어오르는 내리막길의 끝에 아틸라가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 나도 앉았다. 아틸라를 만나도 우울한건 마찬가지다.
"나 한국인들 만났어! 자전거 타고 지나가길래 내가 반갑게 인사해줬어. "
"아 그래 ? 나도 만났어. 그리고 나 그 사람들 때문에 지금 기분이 좀 안좋아."
아틸라에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알려줬다.
대기업 사장님과 유명한 작가, 그리고 그들은 아마 이 길을 다녀왔노라 한국에서 떠들썩하게 이야기하겠지.
어쩌면 소설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행인 작가는 정말 유명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 저 사람들이 왔다 간 길이 나의 카미노와 같은 길로 취급받는다 생각하니 너무 화가나.
어차피 세상은 저 사람들의 말만 들을거니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 "
"음.. 아마 그렇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저들도 저들 나름의 느낀바가 있을거야.
우리 모두에게 이 길의 의미가 다른 것 처럼, 그냥 그렇게 받아 들여야지 뭐."
우습다. 아침에 내가 그에게 해 주던 말을 이젠 내가 듣고 있다.
"그래. 그렇겠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사실 이 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길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전거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걸으면서 겪을 수 있는 엄청난 일들에 비할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카미노를 자신들이 겪은 기억으로 세상에 알리는 것,
그 것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싫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은 이 길을 걸어야 했다. 모두가 걷는 이 길을 함께 말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는 사람들,
몇번 마주쳐서 알게 된 사람들을 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의 반가움,
길에서의 대화와 나눔,
씨끄럽고 불편한 숙소에서 함께 숨쉬는 경험,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는 나날,
길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
해와 달과 별,
땅과 나무 그리고 바람,
사람과 자연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기적들.
그것이 나의 카미노였다.
엄청난 육체의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만큼 좋은 것이 많은 길.
나는 정말로 이 길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함께 걷는 친구.
아틸라가 손을 내게 내민다. 그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길을 걷는 것에는 익숙치 않았다. 어쩐지 불편한 마음이 들어 금새 손을 놓았지만
말보다 더 큰 위로를 주려 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마워 아틸라. 정말 많이. "
까만 아스팔트 위로 찍혀있는 우리 둘의 그림자를 서로 찍고서는 누가 먼저 낸 아이디어인가를 놓고 다툰다.
유치하지만 이 소소한 다툼을 우리 둘 다 즐기고 있었다.
포르토마린이 나타났다. 마을 이름이 알려주듯이 포르토마린의 입구에는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은 메말라서 거의 바닥을 드러냈지만, 엄청난 규모의 다리가 이 강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케했다.
참 예쁘게 생긴 마을이다.
'buen Camino, 201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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