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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31. God speed is your speed





2011년 9월 21일.   


San Xulian    >   Castaneda   |   24 Km  







춥다. 코끝이 시려와 잠에서 깼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혼자 가만히 몸을 뒤척여 본다. 


"지니."


내 움직임을 느꼈는지 아틸라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무슨일이지 ? 그를 보기위해 침대 밖으로 나갔다. 


"컴온. "


그가 그의 침낭속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한다. 

춥기도 추웠고, 어제의 거절도 떠오르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에 그의 곁으로 올라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2층 침대는 내가 올라감에도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좋은 침대를 가져다 놓은 알베르게 주인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의 온기가 확 나를 감싼다. 따뜻하다. 
그의 오리털 침낭은 가벼운 것에만 신경 쓴 나의 폴리 침낭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포근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나오는 따뜻한 온기는 차가운 나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커다란 그의 품에 나는 쏙 들어가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는 침낭으로 날 머리끝까지 감싸주었다. 
편안하고 포근했다. 그의 부드러운 호흡이 느껴진다. 어느새 잠이 든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프레야가 나가는 듯한 움직임이다. 
그녀는 아마 비어있는 내 침대와 아틸라의 침대를 보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프레야가 나가고도 우리는 한참을 더 그냥 누워있었다. 아마 아틸라도 깨어 있었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다는 것이 이렇게 편할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어 가만히 숨만 쉬는 무엇인가가 된 듯했다. 


이대로 굳어버리진 않겠지? 




나머지 두 순례자들이 일어나 나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다. 

 








참 예쁜 알베르게였다. 작은 마을의 너무 예쁜 알베르게와 친절한 호스피탈레로. 

 


느지막히 짐을 챙기는 우리를 직전 마을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지나쳐간다. 

오늘도 우리는 늦었다. 하지만 괜찮다. 이건 경쟁이 아니니까. 



God speed is your speed. 



파라다이스를 지나오는 길에 우연히 찾은 문구. 정말 완벽하게 우리를 위한 문구였다. 



걷는 것도, 쉬는 것도, 그리고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나의 속도가 바로 신의 속도이리.




그랬다. 나는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그를 만난지 10일째, 우리는 정말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랑이 아닐것이라 애써 부인을 했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나와 너무 닮은, 함께 있는 것이 너무도 편한 이 신비로운 존재 앞에서 

나는 스스로 쌓아둔 담을 허물기로 마음먹었다. 그랬다. 그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내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애써 부인하고 아닌 척 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알고 있다. 우리는 둘 다 그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중에 더 큰 슬픔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가 알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나에게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을, 함께 걷는 오늘을 그저 기쁜 마음으로 걸을 뿐이다. 









노란 꽃이 피어있는 작은 마을을 함께 지나고 있었다. 

아틸라는 잠시 마을에 있는 교회에 들르겠다고 했고, 나는 길을 계속 가겠다고 했다. 



혼자 길을 걸었다. 


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루이스가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의문이 드는 모든 순간에 루이스를 떠올렸다. 

그는 모든 답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루이스가 만약 먼저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쭉 길을 걸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



생각을 하려 했지만 이내 멈췄다. 아마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임을 아니까.  

루이스와 나, 그리고 아틸라와 나는 그런 운명으로 이 길을 오게 되었을 것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우리 인생의 길, 

모든 만남과 이별은 이유가 있는 것이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길 위에서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던 내 모습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은빛 나뭇잎들이 늘어서 있다. 신기해서 다가가서 은빛 잎을 만져보았다. 

세상에. 은빛 잎이 아닌 두껍게 씌워진 먼지였다. 



회색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나무들이 길을 따라 이어져있다. 

바람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잎들이 안쓰러웠다. 


그래도 저네들은 살아가고 있다. 

회색빛 먼지 속에 푸르른 잎을 묻어둔 채 꿋꿋히 살아가고 있다.



한겹 한겹 씌워졌을 먼지는 어느새 두껍게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어느 것이 본래의 모습인지를 알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직업, 지위, 체면 이라는 옷들로 무장한 채 세상을 살고있는 사람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껍질을 벗겨냈을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


이 곳에서의 내가 아마 그런 본연의 나의 모습에 가까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왔던 나와 몹시 다른 요즘의 나, 어쩌면 이 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 아닐까 ? 







다음 마을 입구에 앉아 아틸라를 기다린다. 

꽤나 뒤쳐지는 것을 보니 교회에서 뭔가를 하고 오나보다. 


배낭을 뒤로 배고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어젯 밤에 흥얼거리던 노래가 생각나 조용히 혼자 불러본다. 




*


어느새 길어 진 그림자를 따라서 땅거미진 어둠속을 그대와 걷고 있네요. 

손을 마주 잡고 그 언제까지라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는 걸요.

바람이 차가워지는 만큼 이별은 가까워 오네요. 

조금씩 이 거리 그 위로 그대를 보내야 했던 계절이 오네요. 


지금 올해의 첫 눈꽃을 바라보며 함께있는 이 순간에 내 모든걸 당신께 주고싶어 

이런 맘으로 그댈 안아요. 약하기만한 내가 아니에요. 이렇게 그댈 사랑하는데 그저 내 맘이 이럴 뿐 인거죠. 


혹시 그대있는 곳 어딘지 알았다면, 어둠 속 별이 되 그대를 비췄을텐데 

웃던 날도 눈물에 젖었던 슬픈 밤에도 언제나 그 언제나 함께 있을 텐데..




아... 묘하게 가슴을 울리는 노래다. 가사를 되뇌여 보니 몹시 슬픈 노래였다. 

그리고 어쩜 지금 내게 딱 맞는 노래. 


혼자 슬픈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때 아틸라가 와서 내 앞에 앉는다. 


부르던 노래를 멈추지 않고 계속 불렀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내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다. 

누군가를 위해 이런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아틸라도 날 바라보며 가만히 노래를 듣는다. 



함께있는 이 순간에 내 모든걸 당신께 주고싶어 이런 맘으로 그댈 안아요. 

약하기만한 내가 아니에요. 이렇게 그댈 사랑하는데 그저 내 맘이 이럴 뿐 인거죠. 



아마 내 마음이 그의 마음에 닿았으리 ..





우리는 마을에 있는 바로 갔다. 바 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콜린과 폴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서 합석했다. 매일 만나게 되는 그들이 반갑다. 


호박 파운드 케이크 한조각과 커피를 주문했는데, 세상에 .. 이렇게 맛 없는 커피는 정말 처음이었다. 

한 세번쯤 드립해 먹고 남은 원두로 드립을 한 듯한 맛이랄까.. 맹물에 가까운 어이없는 커피였다. 

순례자들이 많아진 만큼 레스토랑이나 바의 퀄리티도 떨어지는 것 같다. 


배신감에 옆 플루테리아(과일가게)에서 바나나와 복숭아를 사서 먹었다. 

과일은 그래도 솔직하다. 맛으로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폴은 다음 마을인 '멜리데'에서 직장 상사를 만나기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멜리데에서 하루를 머무른 다음 다시 걸을 예정이라고 했다. 


문어요리로 유명한 멜리데에서 하루를 보내고 맛있는 것을 잔뜩 먹을 생각에 폴은 들떠있었다. 


역시 언제 만나도 말이 많은 아메리칸이다. 





나 역시 멜리데마을에서 문어요리를 먹을 생각에 조금 들떠있었다.

멜리데에서는 반드시 문어와 화이트 와인을 먹어야 한다는 포스팅을 보고 체크까지 해 둔 터였다. 


멜리데까지 6km정도 밖에 안남았었기에 아틸라를 먼저 보내지 않고 함께 걸었다.

문어를 한번도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아틸라는 그 정체 불명의 요리에 대해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다.


완전한 내륙지방인 헝가리에서 살면 문어를 모를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멜리데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기 전 모퉁이에 있는 문어 가게 점원이

갓 삶아진 문어를 시식용으로 썰어주고 있었다. 한국말로 "맛있어요 ~ " 라고 내게 말한다. 

시식용으로 내민 문어의 맛이 훌륭하다.



"안에서 파는 것도 이것과 같은 문어에요 ?"


"그럼요 ~ 당연하죠."



그리고 우리는 첫번째 집으로 고민도 하지 않고 들어갔다. 

문어는 스페인어로 뽈뽀 Polpo 였다. 발음이 귀엽다. 뽈뽀. 


우리는 뽈뽀 한접시와 할라피뇨 튀김 한접시, 그리고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문어는 빵과 함께 금새 나왔다. 







한국 문어와 다를바가 없는 맛이다. 한가지 다른 점은 올리브유를 묻혔고 위에 고추가루를 뿌렸다는 것 정도 ?

이 낯선 요리를 처음 접한 아틸라는 뽈뽀의 생김에서 거의 경악하고 있었다. 



"에이 ~ 소의 혀 요리도 먹었으면서 왜그래!" 



그리고 사나이답게 한입 입에 넣더니, 나쁘지 않다며 곧잘 먹는다. 

내 입에는 완전 딱 맞았다. 간만에 먹는 신선한 해산물에 나는 금새 행복해졌다. 







작은 고추를 기름에 튀겨 소금을 뿌린 요리다. 

할라피뇨 자체를 좋아하는 아틸라와 나는 이 요리에도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둘이서 와인 한병과 문어, 할라피뇨를 먹어 치웠다. 


알딸딸한게 기분좋다. =_=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길을 걸어야 하는 순례자였다. 

알딸딸한 기분으로 둘이서 함께 길을 나섰다. 



"아~ 기분좋다~ 근데 못걷겠어 @_@"


"후~ 정말 힘들다 어쩌지."



우리는 적당한 곳이 나타나면 씨에스타를 갖기로 얘기하고 비틀대며 걷기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은 우리의 취기를 더 오르게 하는 듯 했다.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이어진 뜨거운 아스팔트 길의 열기도 한 몫 거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간다.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지만 우습기도 했다. 



"hey, it's so funny. I like you , more than yesterday ! "


"Yehh. but it's so hard. and I like you more than yours !"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저 우리의 몸을 뉘일 작은 풀밭 하나였고, 

그 풀밭을 찾아 한마음으로 길을 걷는 그 순간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을을 벗어난 길은 숲으로 이어졌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씨에스타를 위한 공간을 찾았고, 이윽고 개울가의 조그만 땅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이미 콜린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와인 한병을 마셨더니 더이상 걸을수가 없다고 너스레를 떨며 우리는 둘다 가방을 풀어 던지고 드러눕고야 말았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기분좋다. 

짹짹짹,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기분좋다. 


나란히 누워서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두둥실 몸이 떠오르는 기분이다. 



우당타탕. !@#$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콜린이 저 길가에 넘어져 있다. 



"Are you okey?"



우리가 쫒아 올까 무서웠는지 콜린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길을 떠난다. 



"콜린이 이상한것 같아. "


"응 그러게. 우리 그만 쉬고 콜린에게 가 보는게 어떨까 ?"


"응 그래야 할 것 같아."



재빨리 콜린을 쫒아 갔다. 하지만 그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었다. 

콜린이 왜 넘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이미 오십대가 넘은 콜린이라 몹시 걱정스러웠다. 



다음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갔을 때 그는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애써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그가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을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이 조그만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등에 대한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콜린은 괜찮아보였다. 순간적으로 발을 헛디뎠나보다. 

폴의 부재가 크게 다가온다. 









예배당의 의자에 앉아 우리가 무사히 이 길을 끝마칠 수 있길 기도했다. 



콜린은 우리를 피하려고 마음 먹었는지 서둘러 교회를 나섰다. 

교회 내부를 다 둘러보고 밖으로 나갔을 때, 이미 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행동이 몹시 이상했다. 그가 걱정스러웠다. 

오늘은 폴이 없으니 콜린을 보게 된다면 우리가 챙겨주자 얘기하며 길을 걸었다. 



길은 뜨거웠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낮의 와인 한병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지나가던 조그만 바에서 쥬스 한잔을 사 마시며, 우리는 어디가 됐든 첫번째로 나오는 숙소에서 쉬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아주 조그만 마을과 알베르게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환호하며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네? 자리가 없다구요? "



아... 그 좌절감이란... 

다음 마을은 3km 밖에 있었지만 우리는 조금도 더 걸을 힘이 없었다. 


몹시 상심한 우리에게 카운터 근처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한 여자가 말을 건다. 



"혹시 괜찮다면 우리집에 자리가 2개 있는데 거기서 묵을래요?"


"아, 좋죠 ! 아.. 그런데 혹시 3명은 안되나요? "


"음 3명은 안되요. 자리가 2개밖에 안남았어요." 


"아... 어쩔수 없죠. 그렇게 할게요."



콜린을 생각해서 혹시 3자리가 가능하냐 물었지만 두자리 밖에 없었다. 콜린이 걱정스럽다. 


여자는 우리를 알베르게로부터 조금 떨어져 이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인당 15유로, 조금 비쌌지만 우리에게 제안한 여자의 집인 듯한 숙소는 아주 훌륭했다.


우리는 2층 방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그 곳에는 이미 두 명의 여성 순례자가 케노피가 쳐진 아름다운 침대에서 

자리를 잡고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2층 침대가 아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다. 


주방은 1층에 있었고 우리는 내 집인 것 처럼 차, 커피, 쿠키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아침도 원할 때 일어나서 먹고싶은 것을 먹고 나가면 된다고 한다. 훌륭한 조건이었다. 


짐을 풀고 씻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빨래를 해서 널고는 정원에 있는 썬배드에 누워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방에서 잡지와 라디오를 가져와 음악을 들으며 잡지를 보았다. 

오로지 네 명의 순례자를 위한 멋진 집이었다. 정말 행운이었다. 


 



잔디밭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배가 고파 저녁을 먹으러 알베르게로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정말 거짓말처럼 콜린을 만났다. 




"콜린!! 다시 봐서 정말 반가워!! 여기서 묵는거야 ?"


"오 너희들을 다시 만났구나. 응 난 여기서 묵어. "


"여기 자리가 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저 쪽에 있는 집에 있어. 언제 온거야?"


"아.. 난 늦게왔는데 폴이 여길 예약해뒀어. "



정말 고마운 폴이었다. 고작 스무명 남짓이 자고갈 수 있는 조그만 알베르게를 예약을 해 두다니! 

콜린이 자꾸 걱정되었는데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 주는 저녁으로는 엄청난 사이즈의 립과 싸구려 와인이 나왔다. 

빵과 샐러드, 립은 괜찮았다. 와인은 너무 맛이 없어서 스프라이트와 섞어 먹었지만 말이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립을 뜯고 있는 우리들에게 고양이가 한마리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멀리서 눈치만 보더니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뒷쪽으로는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스페인 아저씨 두 명이 담배를 피며 고양이에게 저리 가라는 듯 소리를 치고 있었고, 

알베르게 입구에서는 레스토랑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서 고양이를 쫒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마리의 고양이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다가왔고, 

스페니쉬들의 눈빛도 고양이와 우리에게서 벗어나질 않는 아주 기묘한 저녁이 되어버렸다. 



빵이 너무 맛있어서 내일 아침을 위해 조금 챙겨가려고 했는데, 

엄청난 감시의 눈망울들이 너무 무서워 차마 챙기지를 못하고 있었다. 


아틸라에게 나의 첫날 알베르게에서 있었던 빵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다. 

콜린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콜린과 첫 날 오리즌의 알베르게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들켜서 그 미국인 아주머니처럼 챙피함을 당할까 하는 마음에, 

우리는 정말 조심스럽게 휴지로 빵을 싸서 숨겼다. 



빵을 훔쳤다고 감옥에 잡혀간 장발장도 있는데, 어찌 빵을 당당히 가져갈 수 있겠는가 ? 









빵을 싸느라 한바탕 난리를 친 우리들 어깨 너머로 해가 아름답게 지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소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밤은 살아있다. 모든 생명들이 저녁이 되어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도 뜨거운 낮, 그렇기에 그들의 밤은 그토록 길고 아름다운 것이리.




콜린과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정원에 있는 썬배드에 잠시 누워 소화를 시키며 해가 저물어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는 가능한한 모든 밤의 반짝이는 별들을 눈으로 보려 했다. 




"저기 저 유독 반짝이는 별 있지 ? 저 별이 헝가리안 별이야. "


"왜 ?"


"자세히 보면 빨강, 하양, 초록으로 빛나고 있거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불러."




정말 그랬다. 별들은 그저 노란빛이 아니고 제각각 자신의 색을 갖고 있었다. 

빨강, 하양, 초록으로 반짝이는 신비한 별, 그네들도 생명을 갖고 있는 한 존재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 까맣고 반짝이는 밤하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이 까만 밤하늘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도 많이 그리울 것이다. 




정말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