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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33. We don't know





2011년 9월 23일.   


Pedronzo    >   Santiago de Compostella   |   20 Km  





여느때보다 개운한 아침이다. 

내 몸은 오늘이 산티아고를 향한 마지막 걸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마지막 여정을 위한 최상의 컨디션,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레이는 듯한 아침이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 어쩐지 묘한 기분으로 숙소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바에서 모닝 커피를 마신다. 

마지막 샌드위치도 만들었다. 투나와 토마토, 그리고 핫소스를 넣은 우리만의 샌드위치. 

날씨가 흐리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한 것을 보니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희뿌연 안개를 뚫고 산티아고를 향한 마지막 걸음을 내딛는다. 







페드론조를 벗어나니 산길로 바로 시작된다. 축축한 숲의 내음이 내 마음을 저 아래까지 끌어내리는 듯 하다. 









내 손가락의 굳은 살들이 보인다. 내 손의 힘으로 갈라진 스틱도 보인다. 

그리고 내 발의 물집과 상처투성이가 되버버린 발톱들. 


지금껏 겪어온 수많은 고통과 기쁨, 그리고 기적같은 만남들이 머릿속에 스치운다. 


너무도 가팔랐던 피레네 산맥, 생일 축하노래, 소들과 함께 걸었던 날들, 

뜨거운 스페인의 태양, 시원한 계곡, 끝없는 포도밭, 메마른 평원. 


루이스, 까뜨린, 케샤, 굴리, 몰리, 히데오, 마르셀.. 지금껏 만나온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들의 미소가,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한장씩 스쳐지나간다. 




끝내기 싫다.


오늘이 지나면 나는 더 이상 산티아고를 꿈꿀수가 없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는 더 짙어진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에도 이렇게 안개가 자욱했었다. 

이렇게 마지막날 안개가 낀 것도 어떤 일종의 계시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축축한 안개속을 혼자 걷는다. 그 많던 순례자들이 다 어디로 가버린건지,

아니면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인지, 나는 혼자 안개속을 걷고 있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정말 나는 이 길을 끝내기 싫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슬프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알수 없는 슬픔이 마음속에 차올랐고, 끝내기 싫다는 그 마음은 늪처럼 나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13.5 km. 


넉넉히 잡아도 세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다. 

점점 줄어드는 비석속의 숫자들이 나의 걸음이 점점 더 늦어지게 만든다.  



끝내기 싫다. 이대로 끝이라니? 이건 아닌 것 같다. 

나의 산티아고는 아직 저 멀리 있어야 한다. 고작 10여키로 앞이 아닌 끝도 없이 먼 곳에 있어야 한다. 



자꾸 자꾸 우울해진다. 


친구들의 얼굴이 계속 스쳐지나간다. 그들과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쉼없이 걸었다. 

아니, 걷기를 멈출 수 없었다. 돌려야만 소리가 나는 오르골처럼, 내 발이 움직여야만 지난 추억들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일종의 무아지경 상태로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Hola." 



누군가가 나를 원래 세상으로 돌려놓았다. 미국에서 온 한 순례자였다.

나를 몇번 보았노라 말하는 그는, 피레네산맥에서부터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게 연신 대단하다 말을 해 댄다. 


고맙지만, 나는 지금 새로운 누군가를 알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저 앞 갈림길에서 짐을 내려놓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틸라가 보인다. 

부엔 카미노, 나중에 보자 인사하고 아틸라에게 다가간다. 


 







"Hey, How are you? "


"fine, and you?"


"Good."



좋은게 좋은게 아니었다. 이 미묘한 감정을 나는 아틸라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거짓말처럼 순례자들이 북적이며 나타난다. 

분명 지난 두시간 동안 나는 완전히 혼자였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갔다. 


기가막힌 타이밍에 길을 걸었거나, 누군가가 내가 나의 시간들을 회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거나 한 것이리. 



10kg짜리 배낭과 파블로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지팡이. 내게 딱 맞는, 나만을 위한 것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한 녀석들, 이 녀석들과도 정이 참 많이 들었다. 


 

 






"나 아직 이 길을 끝낼 준비가 안된 것 같아."



그와 함께 걸으며 나의 마음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 길을 끝내는 것이 싫고 두렵노라 말했다. 

어쩌면 나는 산티아고에서 다시 피레네 산맥으로 돌아서 걸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틸라는 나와 조금 달랐다. 일주일 뒤에 스페인을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쥐고 있는 그에게 산티아고는 

얼른 끝내고 싶은 과제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그는 무엇인가를 얻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일주일 이상은 머물기 힘든 이 길 위에서, 

정해지지 않은 40여일의 여정이 더 남은 나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리. 



어쩌면 이 길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나의 다음이 불안했던 것 같다. 


그와의 헤어짐이 두려웠었던 것 같다. 


아틸라 없이 혼자 남겨질 내 모습이 두려웠던 것 같다. 




다음 마을에 있는 바로 들어가 뜨거운 핫 초콜렛을 시켰다.

아침에 준비한 샌드위치와 비스킷도 함께 먹었다. 따뜻하고 달콤한 음식이 들어오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 진다.



"이 길은 크게 의미가 없어. 우리가 산티아고에 가게 되더라도 그건 끝난 것이 아니야." 



우리의 삶의 여정 역시 산티아고 가는 길과 같다. 시작과 끝, 그리고 화살표도 있다. 

하지만 그 길의 화살표는 노란색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화살표를 찾아 늘 헤메어야 한다. 


올바른 길을 갔을 때는 다음 화살표를 찾으면 되고, 잘못된 길을 갔을때는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카미노 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의 여정이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카미노를 끝냈다고 해서 우리네 삶이 끝난 것은 아니다. 

더 크고 긴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삶'이라는 카미노는 두렵기도하고 설레이기도 하다. 

아틸라와 함께 삶을 길을 이야기 하는 이 순간,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음은 정말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레온에서 친구들과 헤어질때 산티아고에서 23일 금요일에 만나자 약속했던 것이 생각났다. 

오늘 나는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친구들을 생각하니 서둘러 산티아고에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평생 다시는 못볼 친구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오늘이라면, 나는 오늘을 놓쳐서는 안된다.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로에 쳐져있는 펜스에 나무 십자가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십자가의 상징적인 의미,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기독교의 길이었음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고행을 위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그들의 카미노는 나의 것과는 다르겠지? 





안개는 하루종일 걷힐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산티아고가 얼만큼 남았는지 가늠할 수 없게 하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는 듯 보이는, 나와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Hola."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것이 이 길위의 법, 그리고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그와 대화를 나눴다. 

2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젊은 스페니쉬 순례자였다. 그는 사리아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를 3번째 왕복하는 중이라고 했다. 

터무니 없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터져나왔다. 



"What?? Why are you do that? "


"I don't know~ "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3번이나 이 길을 왕복하는 그도 참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I don't know." 라는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문현답.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미친짓을 하고 있는 듯한 그에게 보이는 나 역시 정상은 아니겠지. 

이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는 별다른 이유없이 이 길을 걷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 이유가 있었을지라도 이 길을 걸으면서 그 이유를 잊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던 것 처럼 말이다. 



"부엔 카미노."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고 우리는 반대방향으로 헤어졌다. 

나의 멍청한 질문과 그의 현명한 대답에 실소가 터져나왔다. 


때론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멍청한 짓들을 하곤 한다. 그런 행동들에 정확한 이유를 붙이긴 어렵다. 

알수 없는 것들 투성인 인생이다. 우리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알수없는것" 쯤이 되지 않을까 ?


I don't know. 


그것이 바로 인생에서 유일한 정답. 우린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저 멀리 안개속에 쌓인 도시가 산티아고라고 한다. 


산티아고까지 5km, 마지막 알베르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섰다. 


몇번 마주쳤던 로마에서 온 순례자를 만났다. 

그녀는 이 곳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오늘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고작 5km를 남겨뒀지만 모두가 이 5km를 걸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이 두려운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도 여기서 오늘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산티아고로 갈까?"


"음.. 아니. 오늘 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가자."



그리고 우리는 로마에서 온 친구와 헤어져 산티아고를 향해 마지막 걸음을 내딛었다. 








도시가 끝남을 알리는 표지판. 



Santiago. 선명하게 씌여진 그 글자가 마음에 깊이 박힌다.



산티아고는 정말 큰 도시였다. 화살표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도로를 따라 길을 걷던 우리는 얼마 들어가지 않아 나온 깨끗해 보이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기로 했다. 


새로 지어진 이 사설 알베르게는 몹시 깨끗했고, 와이파이도 사용가능했다. 

기쁜 마음으로 짐을 풀고 씻고 나와서 보니, 산티아고 중심인 대 성당까지는 이 곳에서 2km나 더 가야 했다. 


2km ! 우린 결국 내일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될 운명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웃겨 아틸라와 나는 한참을 웃었다. 


아직 오후 3시, 우리는 씻고 조금 쉬다가 오후에 천천히 산티아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대신 크레덴셜 인증이나 산티아고 대 성당은 오늘 가지 않을 예정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산티아고를 향한 1일의 여정을 더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간만에 나의 아이폰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연락을 못했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내가 잘 지내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오랫만에 로그인 한 페이스북에는 까뜨린으로 부터의 쪽지가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월요일에 산티아고에 도착해 굴리, 몰리와 함께 지금 피에네스떼레에 있으며 

내일 산티아고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며, 꼭 다시 보았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그녀의 연락처를 남겨놓았다. 


까뜨린을 다시 만날 수 있다니 !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일 만나기로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고 나니 어쩐지 기분이 들뜬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 




이층에서 쉬고 있던 아틸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간만에 듣는 벨소리에 우리는 둘 다 깜짝 놀랐다. 

이그나시오의 반가운 전화였다! 그도 산티아고에 있다니 야호 ! 


하지만 이그나시오는 지금 산티아고를 떠나는 버스를 탈 예정이었고, 

그와 함께 있던 히데오상이 우리를 꼭 만나고 싶어해서 이렇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우리 역시 산티아고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에 그 역시 몹시 기뻐했다. 

오후 5시에 산티아고 대 성당 앞에서 히데오상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이그나시오와 작별 인사를 했다. 


한시간쯤 쉬다가 우리는 히데오상을 만나러 가기위해 숙소를 나섰다. 

산티아고는 큰 도시였고, 순례자를 위한 화살표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 우리는 몇번이고 길을 잘못 들었다. 


엉뚱한 길을 헤맨데다 배까지 고픈 우리는 맛있는 씨푸드 파스타를 사먹기로 한 것을 포기하고 

길 가다 보이는 케밥집으로 들어가 케밥을 먹었다. 역시 계획대로 되는건 별로 없다. 


케밥도 맛있었다. 간만에 느끼는 강렬한 향신료의 향과 맛에 입이 조금 얼얼했지만 말이다. 



그때, 낯익은 사람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프레야 ! 


나는 가게 밖으로 뛰어가가 프레야를 불렀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정말 너무 반가웠다. 

그녀도 우리를 보고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짓는다. 포옹과 키스로 재회의 인사를 나눈다. 


어제 산티아고에 도착한 프레야는 지금 문신을 하기위해 타투샵을 찾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 이틀을 더 머무를 예정이었고, 버스로 피에네스떼레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했다. 

우리는 프레야의 안내 덕분에 쉽게 산티아고 대성당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묶고 있던 저렴하고 시내에서 가까운 호스텔도 소개받았다. Thanks !

우리는 내일 2km를 걸어 이 호스텔에 짐을 풀고 산티아고 대 성당의 오후 미사에 참석 할 것이다. 


프레야는 타투샵을 찾아 다시 떠나고, 우리는 히데오상을 만나기 위해 광장으로 나갔다.  












산티아고 대 성당 앞의 커다란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 길을 걸었던 낯익은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건강히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게 됨에 기뻐했고, 이 길을 무사히 끝마쳤음을 축하했다.


 

"We made it ;)" 


   

서로의 여정을 나누고 산티아고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그 곳에 있는 수 많은 순례자들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들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히데오상이 나타났다. 우리를 본 히데오상의 얼굴이 환해진다. 

포옹에 익숙치 않은 일본인과 한국인이었지만 우리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다고, 지난번에 약속했던 저녁을 오늘 대접하겠노라 말한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우리는 가볍게 와인을 한잔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 갔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야네스와 나다, 정말 정이 많이 들은 슬로베니아 부부.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 또한 너무 기뻤다. 









이들은 내년에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다시 올 것이라 얘기했다. 

슬로베니아에서 출발하겠다는 그들의 거창한 계획에 우리 넷은 크게 웃고 말았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길위에는 너무 많이 있었고 

이들 또한 그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길, 


조금씩 이상한 우리들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씩 이상한 우리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충분히 행복했다. 



광장 뒷편으로 있는 한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폴과 콜린을 다시 만났다. 

이들을 만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매일 마주칠 운명이었던 우리니까. 


문어요리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모두 얼굴이 밝다.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난듯한 기분이다. 

한달여를 거의 매일같이 함께 해오면서 많은 정이 든 것 같다. 









반가운 얼굴이 또 지나간다. 나의 소중한 브라질리언 친구 산드라 ! 


아.. 정말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는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다시 만나게 된 기쁜 마음은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루이스, 산드라와 함께 걸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We love you !" 


언제나 날 보며 웃어주던 그 두사람, 그들의 노래같은 대화도 떠오른다. 

이 순간을 루이스도 함께 나눈다면 정말 좋을텐데 ! 

 










케이코상 ! 조그만 케이코상도 우리 곁을 지나가다 딱 걸리고 말았다. 

나를 본 그녀는 또 눈물을 보이고 만다. 이 마음 여린 일본인 아주머니가 나도 참 좋았다. 

그녀는 나를 너무 만나고 싶어 몇번이고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명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도 안왔구나 하고 좌절하고 돌아가는 길에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진심어린 기쁨이 느껴져 나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무슨 이유로 케이코는 나를 이토록 좋아해 주는 것일까 ? 

별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저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 그 이유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는 어쩌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사귀는 것 조차 너무도 계산적이기만 한 세상에서 살아 오느라 미처 몰랐었을 뿐이다.




진심으로 대하고 아낌없는 마음을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언어가 아닐까?






히데오상, 케이코상, 아틸라 그리고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광장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사실 아틸라에게는 전혀 재미가 없었을 자리였을 것 같다. 


케이코상과 히데오상은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히데오상은 그 내용을 나에게 한국어로 전해줬다. 

나는 한국어도 대답을 하고 히데오상은 다시 케이코상에게 전해준다. 


간간히 영어를 쓰긴 했지만 대화의 흐름이라는게 있어 아틸라를 빼고 우리끼리 계속 이야기를 하는 꼴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우리의 대화를 경청하는 그가 참 고맙다. 









펠레그리노메뉴, 산티아고에서 먹는 순례자 메뉴는 훌륭했다. 


나중에는 이 순례자 메뉴가 그리워 지는 날이 오겠지 ? 





저녁을 먹고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산티아고에 있는 알베르게들은 소등시간이 없다. 걷지 않아도 되는 내일을 가진 이들에게 소등시간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누군가와 계속 문자를 주고 받던 아틸라는 친구들이 와인을 마시고 있다며 그쪽으로 가자고 얘기했다. 

우리는 낯선 골목길을 헤매어 마르셀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마르셀과 아이티, 이들은 여전히 함께였다. 아틸라와 내가 여전히 함께인 것 처럼 말이다. 

간만에 만난 얼굴들이 너무 반가웠다. 우리는 산티아고 한 골목 거리에 함께 앉아 시간을 공유했고, 


그렇게 산티아고의 밤은 깊어져 가고 있었다.  









"What is your Camino ?"



저널리스트인 아이티의 제안으로 우리는 돌아가면서 나의 카미노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의 카미노.. 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카미노가 내게 준 그 엄청난 일들을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 


답이 없는 질문이다. 답이 있을 수 없겠지. 아마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다. 



amazing, miracle, change, happen, now and people. 



기적과도 같이 놀라운 길이었다.

모든 것은 그저 일어날 뿐이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다는 것, 그 자체를 깨닫을 수 있는 시간 이었고, 

그 사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길이었다. 


인생의 갈림길, 혹은 고통 속에서 이 길을 찾은 우리들은 결국 그 모든것에는 답이 없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그 것이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 존재의 이유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누구하나 자신의 카미노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진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내면의 변화를 우리 모두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We don't know." 



로 마무리 된 우리의 심야토크는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 듯 하다. 

사랑으로 가득한 반짝이는 눈들이 밤하늘의 별빛보다 아름다웠던, 기쁨으로 충만한 산티아고의 밤이었다. 




시계가 어느덧 한시를 가르키고 있다. 이렇게 새벽까지 술을 마신 건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는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갈 길이 먼 아틸라와 나는 먼저 나서겠노라 인사하고 돌아온 길을 되짚어 간다. 

낯설고 어두운 산티아고의 밤길을 그의 손을 잡은채 걸었다. 그가 내 곁에 있음이 정말 늘 고맙다. 



역시나 우리는 길을 잘못들어 또 한참을 헤맸다. 

크레덴셜에 찍힌 도장으로 알베르게 이름을 찾고, 몇 없는 길거리의 시민들에게 묻고 물어서야 

우리는 겨우 2km 밖에 있는 우리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이 뜨거운 손, 이 손을 언제까지고 잡고 있고 싶었다. 




"Thanks for today, and I like you more than yesterday."


"Thanks for everything. and I like you more than yesterday."



주문과도 같은 저녁 인사, 우리는 하루도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그 고마운 마음과 애정을 말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보고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그 순간에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진심을, 존재 자체를 깊이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나온 한줄기 빛이 온 마음으로 번지는 따뜻한 사랑의 기운을 그도 느꼈으리라.


불꺼진 조용한 알베르게 입구에서 우리는 긴 입맞춤을 했다. 






심장끝이 찌릿하다. 지금껏 나에게 생긴 모든 일들이 모두 꿈만 같다. 

불꺼진 어두운 알베르게, 나무 판자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저 위의 아틸라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의 카미노를 한층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준 소중한 사람, 

어쩌면 나는 .. 아니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내 카미노의 일부이고, 카미노를 사랑하듯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심장끝이 찌릿하다. 우리는 일주일 뒤면 헤어지게 된다. 아마 영영 못볼수도 있겠지. 

지금을 즐기기에는 예정된 이별이 너무 두렵다. 하지만 그도 나도 덤덤히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긴 시간 동안 꿈꿔온 산티아고에서의 밤.. 


너무도 보잘것 없는 작은 존재인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지 조차도 모르겠다.  

아마 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말을 내뱉고 나면 우리의 이별이 너무 슬퍼질 것 같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너무도 불완전한 우리들의 앞에 축복이 함께하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