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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34. 산티아고의 밤



2011년 9월 24일.   


Santiago de Compostella





산티아고까지 2km, 아침부터 서둘러 숙소를 나선다. 
까뜨린과 10시에 산티아고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어제 프레야가 소개시켜준 숙소에 먼저 들러 짐을 풀고,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 나섰다. 






골목의 상점들마다 카미노 기념품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순례자들을 위한 도시, 순례자들의 종착역인 산티아고에 와 있음이 실감이 난다. 



마르셀, 아이티, 폴, 그리고 콜린을 만났다. 이미 어제 모든 과정을 끝낸 그들은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겠노라 말한다. 

까뜨린이 곧 올것이라 이야기하니 폴이 무척이나 기뻐한다. 



아틸라의 휴대폰을 이용하여 까뜨린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함께 올 것이라 생각했던 굴리와 몰리는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다고 했다. 

함께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까뜨린을 다시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녀 역시 나 뿐만아니라 아틸라, 폴, 콜린을 다시 만나게 됨을 몹시 기뻐했다. 



그들을 커피숍에 두고 아틸라와 나는 순례자 사무실로 향했다. 

순례자 사무실이 문을 열자마자 바로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다. 

때론 한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길고 짧은 각자의 여정을 다 끝마치고 마지막 인증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순례자들이 다들 설레여 보인다. 


긴 길의 끝, 매일 받아온 순례자 여권의 도장들의 종착역. 


물론 단순히 크레덴셜을 받는 것이 이 곳의 목적은 아니다. 

이 곳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떤 루트로 왔는지,  

걸어 왔는지, 혹은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그리고 국적은 어딘지를 확인한다. 


그 내용들은 12시에 있을 산티아고 대성당의 미사에서 읽혀지게 된다. 







이 카미노를 끝낸 순례자의 수를 항상 통계화 시켜놓는데,

한국인의 숫자가 10위권 안에 든다고 한다. 유럽권의 가까운 나라들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1등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일본이 1위 였는데 요즘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온 것도 모자라 


스페인이라는 큰 나라를 한달에 걸쳐 횡단하는, 정말 대단한 한국인들이 아닐 수 없다. 







내 이름이 적힌 크레덴셜이 발급 되었다. 

학창시절 개근상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쁘다. 


크레덴셜을 손에 쥐고 우리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산티아고 대 성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프레야를 만나 크레덴셜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산티아고 대 성당에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펴진다.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미사라 내용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 경건한 분위기는 온 몸으로 느껴졌다. 


미사를 들으며 중간중간 울고있는 순례자들도 보인다.


우리 친구들도 많이들 울었다고 했는데 사실 난 눈물은 안났다. 

내가 종교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무슨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눈물이 날 수 있는지.. 조금 의아하다. 


정식 미사가 끝나고 한 남성분이 나와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한 순례자들의 정보를 알려준다. 

스페인어라 잘 못알아 들었지만 생장 피드포르 - 우노 꼬레아나 - 우노 헝가리안 - 이 번뜻 내 귀에 들어왔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한 사람 중에 오늘 이곳에 도착한 사람의 국적과 숫자를 말해주는 것, 

어쩐지 감격스러운 기분이 든다. 



"Congratulation ! Uno Hungarian !"


"Congratulation Uno Coreana !"










미사는 끝이났고, 우리는 산티아고 대 성당에서 반드시 해야하는 성인 산티아고의 어깨를 끌어안은 다음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받았다고 하는 그 엄청난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성 산티아고의 어깨에 내 두 손을 올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 요청한 사람들,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기도했다. 


우리의 앞날에 평화와 사랑이 늘 함께하기를. 아멘. 

 



공식적인 절차들이 모두 끝이났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까뜨린을 찾아 다시 광장으로 돌아갔다. 

까뜨린은 오늘 4시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가야 했다. 긴 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까뜨린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맛있는 점심을 먹겠다며 우리를 내버려 놓고 떠나 준 나머지 친구들이 고마웠다. 

아틸라와 까뜨린과 함께 셋이서 조그만 커피숍을 찾아 들어갔다. 달콤한 츄러스와 핫초코를 시키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나와 떨어져 지내던 시간동안 까뜨린도 많이 변해 있었다. 살도 많이 빠졌다.

불평 많고 자주 투덜대던 깍쟁이 독일인 아가씨는 항상 미소를 짓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좋은 사람도 만났고 마음에 안맞는 사람도 만났지만, 그녀는 이 모든 길이 너무 좋았노라 얘기한다.

그리고 그녀의 크레덴셜을 피에네스테레에서 태워버렸다고 말한다. 


와우.. 그녀의 엄청난 결단력에 놀라고야 말았다. 다들 소중히 간직하는 크레덴셜을 불에 태워버리다니!


사실 그렇긴 하다. 이 크레덴셜은 그저 종이일뿐 아무것도 아니다. 

그 종이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걸어온 그 많은 여정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 종이가 그 수많은 기적같은 경험들을 이야기해주지도 못한다. 그저 한낱 종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아틸라가 잠시 혼자 좀 걷다 오겠노라며 자리를 비켜준다. 눈치가 빠른건가 ? 적절한 타이밍에 자리를 비켜준 그가 고맙다. 

그가 떠나자마자 까뜨린이 아틸라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아틸라랑 같이있는거야 ? 쭉 같이 걸었어 ?"


"레온에서 혼자 걷고 그 다음날 아침에 우연히 만났어. 그리고 쭉 같이 걸었어."


"와 진짜 ? 아틸라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리고 너와 아틸라가 함께 있을 줄이야! "



나는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아틸라를 알게 되었지만 까뜨린은 그를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까뜨린에게 나의 이 마음을, 아틸라와의 소중한 시간들을 이야기 하려 하고 있을때, 까뜨린이 얘기한다. 



"나 아틸라 좀 좋아했었는데, 그는 다시봐도 정말 멋있는 것 같아." 


"응? 너 아틸라 좋아했었어? 안토넬로는?" 


"이 길위에서 진짜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이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이 아틸라고 한명은 안토넬로야."




우스웠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아틸라와 나의 이야기를 해 주지 못했다.

사실 이 길에서는 마음만 맞으면 함께 걷는것이 당연했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와 아틸라의 로맨스를 전혀 상상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안토넬로와 어찌 되었냐고 넌지시 묻는다. 그녀는 끝까지 안토넬로와 함께 걸었고, 

안토넬로는 학교를 마치고 독일로 여행을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고서 로마로 돌아갔다 말한다. 


만나게 될 사이라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여기에선 이게 끝이지 뭐.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 길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이 길과 함께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아틸라와 안토넬로를 비교해가며, 우리는 고등학생 소녀들처럼 킥킥대고 웃었다. 

언어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노란머리와 하얀피부를 가진, 생긴건 너무나도 다르지만 우리는 친구였다. 그것도 아주 좋은 친구. 





까뜨린의 버스시간에 맞춰 아틸라가 돌아왔고, 우리는 버스 터미널까지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마지막 작별 포옹을 길게 나누고 버스가 사라질때까지 길게 손을 흔들어 준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다시 만나게 될까? 


이별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오늘 밤에도 많은 친구들을 보내야 한다. 

만남과 헤어짐은 늘 함께 오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기분이 참 이상하다. 









슈퍼마켓에 들러 내일 먹을 식량을 조금 사고, 초콜렛 샵에 들러 비싸지만 맛있는 손톱만한 초콜렛을 하나씩 사서 먹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뒷쪽 광장에 앉아 거리의 음악가가 연주해주는 음악을 듣는다. 


재즈 기타의 부드러우면서 강인한 선율이 공허한 광장에 울려퍼진다. 

비둘기 몇마리가 날아다니고,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꿈결속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이 광장에 있는 사람들, 비둘기들, 상인들, 나무와 바람들,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기처럼 

우리도 그저 그 곳에 있을 뿐이었다. 내 몸이 공기가 된 것 같다. 그저 그 곳에 두둥실 떠있는 기분이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있었다. 매 순간이 마법같이 너무도 아름답기만 하다. 





7시 30분으로 잡혀있는 마르셀과 아이티와의 저녁약속때까지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하고 호스텔로 향했다. 

호스텔에서 프레야를 만났다. 프레야의 방은 2층이었고 우리 방은 3층이었다. 

3층이 더 밝고 좋은 것 같다며, 하지만 자기네 방을 같이쓰는 사람들이 다 너무 조용해서 너무 좋다며 

프레야 특유의 감탄이 가득담긴 어투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편안한 침대와 조용한 룸메이트들, 그것 하나면 너무도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먹고, 편안하게 잠자는 것, 그것은 삶의 기쁨이자 이 곳에서 우리가 공통되게 바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기만 하고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바라는 것이 없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여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를 이곳에서야 실감하게 되다니..


아직 늦진 않았다. 이런 엄청난 삶의 진리를 이렇게 느끼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길. 

모든 것에 감사하고 조건없이 베푸는 삶을 살 수 있길.



내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수많은 삶의 진리들,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길 바래본다. 





저녁 7시, 파라도르 호텔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를 먹으러 가자는 프레야의 제안을 거절하고 

우리는 7시 30분의 마르셀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마르셀, 아이티, 폴, 콜린, 그리고 한 스페인 여성 순례자가 더 있었다. 

그녀는 곧 떠날 예정이었고, 아이티는 오늘 밤 자정이 넘어 떠날 예정이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기위해 유명한 레스토랑을 찾아 갔는데, 그 곳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씨에스타로인해 퇴근시간이 보통 저녁 8시인 스페인의 특성상, 레스토랑들은 저녁 영업을 9시쯤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 스페인의 사람들은 새벽 늦게까지 씨끌벅적한가보다. 



가볍게 맥주와 함께 칩을 먹는다. 이별을 준비하는 저녁이라 분위기가 조금 처지는 듯 하다. 

스페니쉬 순례자와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는 가려고 했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맛있는 와인과 맛있는 음식들이 나왔다. 이것 저것 따로 따로 주문했는데, 하나같이 훌륭한 맛이었다. 

와인병이 쌓여가고, 주인은 우리들에게 서비스로 엄청 독한 독주를 한잔씩 준다. 

오늘 떠날 예정인 아이티는 저녁 내내 울음을 참는 듯 눈이 촉촉했다. 

워낙 쾌활한 성격의 그녀이기에 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곤 했지만 어쩐지 슬퍼보인다. 

나만의 착각일수도 있다. 산티아고에서 맞는 수많은 이별들에 내 마음이 슬퍼서 그래 보였을지도.. 


두시간여를 천천히 저녁을 먹고, 아이티의 차시간에 맞춰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정이 너무 많이 들었었나보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보이고야 만다.

한명 한명 그녀와 긴 포옹을 나누었다. 



"Jiney, you are so special. "



내 어깨를 감싸 쥔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으며 내게 말한다. 


 

"We are special. I will miss you, buena suerte ! " 



그리고 우리는 긴 이별의 볼키스를 나누었다. 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나도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너무 고마운 사람들, 다시 못 볼수도 있는 사람들. 슬프다. 



콜린과 폴은 술이 취한다며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는 아이티를 보내고 샹그리아 한잔을 더 하기로 했다. 




"아틸라, 우리는 광장에서 마르셀 기다리자. 둘이서 가게 하는게 좋을 것 같아."


"응. 좋은 생각이네. " 



그렇게 마르셀은 아이티를 배웅하러 떠나고, 우리는 산티아고 광장으로 다시 향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는 밤이다. 광장 옆의 건물 밑에 기대 서서 안개속의 산티아고 대성당을 바라본다. 










안개속의 산티아고 대성당, 이 곳은 내가 상상해왔던 그런 곳만은 아니었다. 


카미노의 끝, 그저 단순한 목적지로 존재하는 곳이 아닌, 너무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는 곳이다. 


한 길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길의 시작점. 

카미노를 무사히 마친 순례자들은 이 곳을 떠나는 순간부터 예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 



산티아고를 떠나면 더 이상 노란 화살표는 없다. 

각자가 찾아내야 할 삶의 보이지 않는 화살표만 있을 뿐이다. 



만남과 이별, 


두려움과 설렘,


감동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산티아고. 


아니, 


우리의 인생. 




뿌연 안개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뜨거웠던 한 여름의 스페인도, 이 차갑고 비오는 안개 속에서는 그저 먼 옛날의 일만 같다. 


결국 모든것은 이렇게 희미해져 가는 거겠지. 






마르셀이 왔다. 혼자 남겨진 그의 모습이 쓸쓸해보인다. 

왼쪽으로는 마르셀, 오르쪽으로는 아틸라, 두 남자와 팔짱을 끼고 숙소로 향한다. 


너무 멋진 두 남자의 팔짱을 끼고 걸어 너무 행복하다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된 것이 정말 기쁘고 고맙다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인다. 



주방에서 배와 오렌지를 썰어 넣은 샹그리아를 마신다. 

프레야를 부를까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녀는 자고 있을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아이티가 떠나버린 마르셀은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내일 버스를 타고 피에네스테레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겠노라 말한다.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고 얘기 하지만 그는 그럴 마음이 없는 듯 하다. 


만약 나도 이 곳에서 아틸라를 먼저 보내야 했다면 피에네스떼레까지 혼자 걸어갈 힘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티를 먼저 보낸 마르셀의 마음이 남의 것만은 아닌 듯 싶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것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늘 "Yes, it is."로 대답하는 마르셀, 너무 멋진 사람이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피에네스떼레에서 꼭 만나자는 기약을 하고서 그를 배웅했다. 





마르셀과 아이티를 보면서 나와 아틸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곧 이렇게 헤어지게 되겠지. 그리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게 되겠지. 


산티아고의 아름다운 밤, 살짝 취기가 도는 까맣고 서늘한 이 밤이 꿈만 같다. 



"아틸라, 부담없이 들었으면 좋겠어. 


나는 널 사랑해, 나무와 별, 하늘과 바람을 사랑하는 것 처럼 말이야." 




I love you. 



속으로 수없이 되뇌이고 되뇌이다 결국 입밖으로 꺼냈다. 

그가 부담을 느끼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뿐, 그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가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 내 이마에 조용히 키스한다. 




"It's really beautiful word. I love you too, like trees, stars, sky and wind. " 



 


너무도 아름답고 슬픈 산티아고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