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할까? 모르겠다. 무작정 베낭을 둘러매고 터미널로 향했다.
삶이 바빠지고 복잡해지고 머리가 아파올 땐, 그냥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떠나려고 해 보면 생각하고 준비해야할 것이 새로운 짐이 되어 내 어깨에 놓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떠나는 건, 낯설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공간,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에서 혼자 내버려진 나는 늘 두렵고 불안하다.
하지만 온통 낯선 그 곳에서도 나는 존재하며, 낯설음과 무관하게 나의 시간은 그 곳에서도 흐른다.
낯설음에 대한 불안감은 내게 새로운 긴장감을 가져다 주고, 그 긴장감은 나를 어떤 새로운 상태로 이끄는 듯 하다.
그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함, 낯설음에 대한 그리움의 병을 앓다보면 나도 모르게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가 또 다시 길을 떠나고 또 떠남을 꿈꾸는 이유이리라.
사실 크게 낯설지는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단일언어권의 조그마한 나라는 내게 너무도 익숙하다.
어딜가든 눈에 익은 브랜드의 가게들이 즐비하고,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에 불쑥 찾아가 슬쩍 들여다보는 것,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어주는 그 기분은 언제나 익숙치 않다.
계획할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쉬고 싶으면 쉰다.
바람처럼.
조그맣게, 하지만 활짝 피어오른 구월의 장미가 화사하다.
"장미야, 그렇게 활짝 피어 있으려면 힘들지 않니? 벌이 금새 올 것 같지도 않은데 잠깐 쉬지 그래."
"힘들어. 그렇지만 내가 잠깐 쉰다고 꽃봉오리를 닫으면 난 시들어 죽고 말거야."
자연의 모든것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내적 아름다움이든 외적 아름다움이든 모두 중요하다 얘기하던 책이 있었다.
아름다움에는 이유가 없다. 모든 존재는 자신의 최상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보여지게끔 만들어져 있다.
사람이 사랑을 찾아 헤매이는 것도, 사랑을 하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헤매는 것임을 안다.
사랑이 있는 아름다운 세상과 사랑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이 바로 내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임을 안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 이웃, 친구, 직장동료, 연인 등으로 구분되어져 불려지는 관계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관계들로.
관계를 맺기 위한 과정은 때론 쉽고, 때론 말도 안되게 어렵다.
그 터무니 없는 과정들을 거치며 관계는 끊어져 버리기도 하고,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 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삶을 만들어가고 있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후회, 미련, 아쉬움 따위의 감정들도 녹아들어 있다.
만약 그 때 그 손을 내가 잡았더라면,
만약 그 때 내가 그렇게 모질게 돌아서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지금의 나는 지금껏 내가 살아온 경험들로 인해 만들어져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겪어야 했던 일들, 나의 의지로 혹은 나의 의지와 무관했던 결정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내 선택에 깊이 관여하곤 한다.
그 모든 것들을 다 무시한 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누구도 내일은 알 수 없다.
미래는 준비되어 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그 미래를 미리 아는것은 불가능하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미래, 지금 나의 선택이 내 삶의 많은 것을 바꾸게 됨을 알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미래를 가늠하고 예측해야만 한다.
나의 지나온 삶을 이루고 있는 경험과,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생각하고
더 나은 미래를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 매번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나만을 생각하고, 그저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꿈꾸다가도
그럴수 없는 이유, 그래선 안되는 이유를 수십개쯤 떠올리고서는 단념한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
오늘 점심 메뉴를 결정하고 내일 입을 옷을 결정하는 정도의 선에서만 가능한 그 것.
하늘은 오늘도 푸르다.
구름은 내 마음같이 희뿌옇게 하늘을 덮고있다.
한적한 시골도로, 신호등 없는 자그마한 도로를 건넌다.
정처없이 옮겨보는 발걸음에 새롭게 나타나는 광경들이 조그마한 위안이 된다.
괜찮아. 세상은 아직 이렇게 그대로 있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단다.
말이 되어 꺼내지지 못한 마음이 있다.
때론 꺼내지지 않음이 더 나을지도 모를 마음도 있다.
너무도 미숙한 우리는 마음과 말을 제대로 다룰줄 모른다. 그래서 자주 마음이 아프다.
내뱉지 말았어야 할 말 때문에,
꺼내놓지 못한 마음 때문에.
까맣게 반짝이는 밤이다. 내가 좋아하는 밤. 그리고 밤의 한강은 언제봐도 아름답다.
한강을 달리다 한강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 먹는다. 바람처럼 떠난 여행이니까. 안될 이유도 없지.
나만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선택. 그래도 이런 순간들이 있음이 참 감사하다.
물결은 넘실대고 내 마음은 조금 괜찮아졌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반짝이고, 또 아름답다. 빛나는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엄청나게 큰 세상 속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인 나. 그리고 나의 마음.
모른척 애써 외면하려 하는 마음도 있고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있다.
무작정 떠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을 정리해보려 떠났지만, 나의 공간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모든것은 다시 나타난다.
모든 것은 제 자리에, 그저 그렇게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다시 사라지게 되겠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오늘 낮에 만난, 가을 한 철 잠깐 피었다 사라질 한 줄기 코스모스 처럼.
포천시외버스터미널 > 어떤 조그마한 교회와 요양원 > 작은 공원의 벤치 > 시장 > 포천시외버스터미널
그리고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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