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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6. 에스텔라의 아름다운 밤




2011년 8월 27일.   



Purnte la Reina  >  Estella    |   22.4Km  




락 오빠와 함께 느지막히 숙소를 나섰다. 

느지막히라고 해 봐야 8시지만, 다른 순례자들은 보통 7시 전에 다 떠나가기 때문에 8시는 늦은 편이다. 






부실하지 그지 없어보이는 2층 짜리 철제 침대,
어제 내 위에서 자던 외국인 할아버지가 꽤나 뒤척이는 바람에 오늘도 잠을 설쳤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도 꽤나 익숙해 졌는지 피곤하지는 않다.
자주 깨긴 하지만 잠을 못자지는 않고, 그런 모든 상황을 계산하여 내 몸은 스스로 체력을 비축해두는 것 같다.

 

 


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지 이렇게 집집마다 꽃을 내놓고 키우고 있다.
키우는 사람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거운 일석이조의 행복.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 바에 들러 빵과 오렌지쥬스를 마셨다.
어제 더치페이로 계산하게 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락 오빠가 계산해준다.

이곳에서 오렌지 주스는 수모 데 나랑하 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 오렌지를 직접 짜서 얼음에 넣어주는 생 오렌지 쥬스다.
바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3개 이상의 오렌지가 들어가고, 더운나라 스페인에서 직접 재배한 오렌지의 맛은 최상이다!
오렌지를 자동으로 까서 음료수로 만들어 주는 기계가 있는 바에서는 나는 무조건 수모데나랑하를 마셨다.
가격은 커피나 물에비해 두배이상 비싸지만, 그래도 뭔가 신선한 음료를 먹는 기분이 들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든다. 


락 오빠와 어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아침을 즐겼다.
락은 돌아갈 비행기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꽤나 빨리 걸어야 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나서 우리는 바로 헤어졌다.

그는 훨씬 빨리 걸을 것이다. 지금껏 나, 그리고 초반에 알게된 몇몇 친구들 때문에 일정을 많이 지체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고, 또 다시 만나게 되기를 희망하며, 그리고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며 작별했다. 부엔 카미노 !



간만에 혼자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발목이 꽤나 아프다. 10kg에 육박하는 베낭과 내 몸무게 까지 지탱해야 하는 발목에 무리가 안갔다고 하면 이상하리.
나는 시간도 많았고 서두를 필요도 없었기에 느지막히 걷는다. 

초반의 짧지만 꽤나 가파른 경사진 오른막길에서는 평소의 반도 안되는 속도로 걸었다.
나와 함께 후발대를 이루고 있는 유쾌한 순례자들의 웃음소리가 내 마음도 즐겁게 만들어 준다.



한참을 혼자 걸었다.

그러다 스페인에서 온 아빠와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12살 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는데, 한국을 모른다... 아..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가 지나고 있던 포도밭과 올리브트리에 대해 얘기를 조금 하다가 헤어졌다. 
멀어져가는 부자의 뒷 모습이 왠지 훈훈했다. 나도 다음에 내 아이들을 데리고, 또 내 부모님을 모시고 꼭 오리라. 




 

처음으로 본 포도밭만큼, 처음으로 본 올리브 나무도 신기했다.
정말 나는 올리브나무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던 지라, 나무의 색깔과 그 열매가 너무도 낯설고 신기했다.
뾰족뾰족한 잎과 땅달막한 그 길이가 그저 새롭기만 했다. 열매를 하나 따서 먹어봤다. 떫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올리브는 다 익어 까만색이 되어도 날 것으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물에 일주일씩 담궈 두는 것을 네번인가 ? 아무튼 그렇게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상태에 올리브가 된다고 한다. 
올리브를 별로 안좋아했었는데, 이곳에 온 뒤로는 올리브가 좋아졌다. 
그리고 올리브 만드는 것에 그런 엄청난 수고가 들어 간다고 하니 새삼 더 고맙고 반갑게 느껴진다. 



 


포도밭을 지나고, 올리브 밭을 지나고, 자그만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언덕위에 있는 마을이었다. 어쩐지 출출해 마을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민트초콜렛을 샀다. 맛있다.

마을을 지나 내리막을 걷고 있다. 꽤나 가파르다. 
그런데 그 곳에서 거꾸로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왠 순례자 한명을 만났다. 
행색이 무척이나 남루하다. 수십년째 순례중인 것 처럼 보이는, 어떻게 보면 히피처럼 보이는 순례자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너무 강렬해 어쩐지 무서운 기분이 든다. 
보통 순례자들은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그런데 이 순례자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를 한번 돌아보게 됐고, 그리고 그를 기억하게 됐다. 신기한일이다. 


오늘은 어쩐일인지 아는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너무 늦게 출발한건지, 대부분의 순례자는 이미 이 길을 지나고 없는 듯 하다. 

혼자 걷는 길이 이곳이고, 혼자 걷기 위해 이 곳에 왔다. 혼자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왠지 외로움이 느껴졌다. 발이 여느때보다 더 아픈 듯 하고, 배낭도 내 어깨를 짓누르는 듯 하다. 외롭고 괴롭다. 
 

하지만 나는 걸어야했다. 

터덜터덜 걷다보니, 아래에 마른 포도를 물고가는 개미가 있다. 





자기보다 훨씬 더 큰 포도를 물고 낑낑대는 모습이 어쩐지 애처롭다. 그래도 먹고 살려고 그 노력을 하고 있는 거니까.
들어다가 집 앞에 놓아주고 싶지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 같아 가던길을 그냥 걸었다.

조금 길을 더 가다보니 딱정벌레 두마리가 겹쳐져서 길을 가고 있다.
짝짓기를 하는건지, 한 녀석이 다쳐서 업어주는 건지(물론 짝짓기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걷는 이 길 위에는 사람만 있는게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고, 그 길을 걷고 있다.

부디 그 조그마한 녀석들이 삶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한평생을 영위하길 빌어본다.


또 그렇게 한참을 혼자 걸었다.
외로웠지만 걸을만했다. 낯설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그 길을 걷는 것을 나는 나름 즐기고 있었다.

걷던 중, 한 알베르게를 만났다. 1층은 레스토랑 및 바로 운영하고 있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알베르게 앞에 옹기종기 앉아 쉬고 있었고, 나도 커피한잔을 마시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에서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아이스는 슬러쉬처럼 만드는 종류의 커피만 있고 우리가 늘 즐겨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아이스 카페라떼 같은 메뉴는 없다.
그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고 싶은 마음이 늘 굴뚝 같지만,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열치열이라 그랬던가, 아무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열망이 커져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가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레로다. 동그란 눈과 선한 인상의 그는 한국어를 꽤나 잘 했다.
한국을 좋아해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나에게 한국어 학습용 책을 꺼내 펼쳐보인다.


이때다 싶어 나는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어떻게 주문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카페 콘 옐로스" 라고 하면 된다고 하면서 에스프레소 한잔과 얼음 3개가 든 잔을 꺼내준다.

늘 먹던 맛은 아니지만 이정도도 정말 너무 행복하다 ! 아 감동 !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만난 와이파이가 되는 레스토랑에서, 나는 한시간을 커피를 홀짝이며 앉아 있었다.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말이다.

간만에 집에 연락도 하고 페이스북도 했다. 
아직도 이런 것들에 얽메이고 있다는 한심한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내가 버려두고 온 세상에 대한 갈증이 오아시스를 그냥 지나치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시차로 인해 한국은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는 것, 


와이파이의 유혹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섰다. 
알베르게 앞 그늘에서 몇몇 순례자들이 햇볕을 피해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몰랐던 굴리와 주니어가 이 사진에 있다. :) ) 


자주 마주치던 세명의 순례자가 레스토랑의 점심메뉴가 괜찮냐고 물어왔다. 
커피만 마셔서 모르겠노라고, 커피는 맛있더라 얘기를 해 주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비어있는 내 물통을 보더니 조금만 돌아가면 우물이 있다고 말을 해 줬다. 
고맙다고 얘기하고 물을 뜨러 가는 데,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로가 나와 물을 주겠다고 한다. 정말 친절하다. :) 

물론 물은 그냥 수돗물을 떠서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정수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물이 썩 깨끗한것 같진 않지만, 그 엄청난 갈증을 비싼 미네랄워터로 매번 해소할 수가 없어 수돗물을 그냥 마셨다.
그리고 뭐 딱히 몸에 이상이 없는 걸 보니 수돗물 마신다고 죽는 건 아닌가보다. 


물을 받아들고 호스피탈레로와 사진 한방 찍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나에게 우물을 알려줬던 세명의 순례자와 함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그룹에 대해서는 늘 호기심이 있었다.
백인 남녀와 아시아 남자 한명으로 구성된 그룹이었는데, 아시안에 대한 알수없는 동질감으로 그에게 늘 관심이 갔었다. 
하지만 인사를 몇번 나눴고,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만 알게 됐을 뿐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대충 외국에서 유학하는 일본인이고, 친구들과 함께 왔으리라는 추측만 했었다. 

알고보니 일본인 카주와 프랑스인 셀린느는 부부였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온 잘생긴 톰은 카주가 유학시절 만난 친구였다. 
여행과 하이킹을 좋아하는 셋은 자주 휴가를 맞추어 이렇게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멋진 사람들이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사랑에는 국경이 없으며 꿈꾸는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사랑하고 꿈을 꾸고 사는 이들이라 젊어보였나보다. 40에 가까운 그들을 나는 20대로 봤으니 말이다.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을 했으나 아쉽게도 그들은 내일 이 여행을 끝마친다고 했다. 
길지 않은 휴가로 온 것이라 모든 코스를 다 걸을 수 없다고, 그리고 내년에는 다시 에스텔라에서 시작하는것이 계획이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온 탐은 정말 잘생겼었다. 키도 크고 남자답고 듬직했다.
카미노에서 처음으로 남자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는데, 왠지 쑥스러워 사진 한번 같이 찍자고 못했다. 못내 아쉽다. 
이런저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탐은, 두려워 말라며, 세계 어디를 가든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있고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그리고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오게되면,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

셀린느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어떻게 카주를 만나게 되어는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아시아 남자들이 얼마나 친절한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늘 "Brilliant !" 라고 습관적으로 얘기하던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와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카주는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했다. 자주 같이 다니던 켄따루와 후미야 때문이리라. 
그는 그 어린 일본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왜 일본인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좋아하지 않을까 ? 
한국인을 거의 못만난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 그 마음이 이해는 갔다. 나도 오히려 한국인 없는게 편할때가 많으니 말이다. 

셀린느의 발목에 문제가 생겨서 그들은 빨리 걷지 못했다. 
오늘부터는 나도 발목에 문제가 생겨 속도를 내지 못했고, 함께 걷고 따로 걷고를 반복하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우리는 함께 그리고 또 따로 걸었다. 









에스텔라로 가는 길은 멀고 단조로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걸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저런 길을 걷다보면, 그냥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저 걸을 뿐.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할걸 그랬다는 생각을 잠깐 하고, 그저 걸었던 것 같다. 

다리가 아프면 쉬고, 어깨가 아프며 쉬고, 목이 마르면 쉬고, 
그저 걷는게 일인 순례자들에게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몸이 원하는 그 때가 그저 휴식 할 시간이었다.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길은 에스텔라로 들어가는 입구 였고, 왼쪽길은 그 끝에 허름한 예매당이 하나 있는 끝이 보이는 길이었다. 
예배당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고민했다.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그리도 멀지 않은 길을 두고 
내 다리의 고통과 육체적 피곤함, 예매당을 보고싶은 호기심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 때, 예매당에서 걸어 나오는 한 순례자를 만났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돌아 나오고 있는 그에게 저기에 무엇이 있냐고 물어봤다. 

몹시 감명을 받은 듯한 그는, 저 곳은 아주 신비로운 곳이라고, 걷은 허름한데 돌아 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다른 무엇이 느껴진다며 제발 가보라고 진심어린 말투로 얘기를 해 줬다. 아직도 그의 "Please, go. " 가 기억에 남는다.

예배당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벽돌 예매당,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지만, 꿋꿋히 걸어갔다. 누가 한명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봤지만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나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

예매당을 끼고 한바퀴를 돌았다. 반대쪽에는 야생 올리브 나무들이 있었고, 예매당으로 들어가는 검은 철문이 있었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어두웠고, 아..정말.. 달랐다. 
공기가 달랐다고 해야할까 ? 알수없는 무엇인가가 예매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 했다. 
뭔가 따뜻하고 뭔가가 가득 차 있는 알수 없는 기분. 알수 없는 에너지. 
누군가가 그 곳에서 잠을 잤는지 뒷편에는 건초가 흩어져 있었고, 앞쪽은 무엇인가 써 놓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있었다. 











뭔가 이 곳에서, 저기 깔려있는 건초 위에서 한숨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하지만 혼자서 보내기엔 너무 두려운 곳이었다. 나는 아직 두려움이 많았다.

예배당문을 살짝 닫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한줄기 불어왔다.
내 마음도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뭔지 알 수 없는 그 것, 알수 없는 어떤 것, 그게 뭘까 아직도 모르겠다.

예매당을 돌아 나오면서 아쉬움에 몇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만나 저 곳을 꼭 들르라고 얘기를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움직이는 순례자였던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드디어 에스텔라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햇볕아래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내가 묵을 곳은 창고를 개조해 방으로 만든 아주 허름한 곳이었다.
여기밖에 없다는데 어쩌리.. 커다란 방에는 대충 70여개의 2층침대가 놓여있는 듯 했다.
청결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마굿간 같은 건물에 침대를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다닥다닥 붙여놓은..
아 정말..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자기 싫다는 생각을 했지만, 모두들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묵기로 했다.


씻고, 까뜨린과 몰리, 굴리 등등과 함께 수퍼마켓에 갔다.
저녁거리와 내일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거리를 사 들고, 친절한 스페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발목에 뿌릴 파스도 사 들고 돌아왔다.
토요일이라 약국은 거의 문을 열지 않았고, 문을 연 한 약국을 찾느라 꽤나 헤맷다.

까뜨린이 있어서 다행이다.
각각 혼자 이곳에 온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혼자 걷는 것은 상관없다. 괜찮다. 하지만 숙소에서 저녁을 혼자 먹어야 하고, 수퍼마켓을 혼자 가는 것은 상상하기 싫었다.
이미 친해져서 소규모 그룹을 만든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 속에 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까뜨린이 있고, 까뜨린은 내가 있어서, 우리는 둘이서 함께할 수 있었다. 다행이고 고마웠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니 하나 둘씩 주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일찍 도착한 케샤와 후미야, 켄따루는 마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파스타를 해 먹었고, 
요리할 힘이 없었던 나와 까뜨린은 냉동피자를 사 와서 팬에 구워 먹었다.  





전자렌지가 없었던 주방에서 당황한 우리에게 누군가가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된다고 얘기를 해 줬다.
냉동피자에 익숙치 않은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까뜨린에게는 기겁할만한 일이었나보다. 
피자를 팬에 굽는것, 그것으로 많은 유럽피안들이 웃겨서 뒤집어 지려고 했다. 난 이해할수 없었다. 이런것이 바로 문화차이리라.


그리고 아까 나에게 예배당에 꼭 들어가보라고 했던 안토넬로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요리를 잘못해 흑색이 되버린 닭가슴살과 양배추를 먹고 있는 그는, 꽤나 괴짜같아 보였다. 그리고 실로 그러했다. 
까뜨린이 안토넬로에게 꽤나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안토넬로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저녁시간은 언제나 길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얘기를 나누며 와인과 함께 저녁을 먹다보면 한두시간은 그냥 흘러간다.
보통 저녁시간은 소등시간인 10시경 끝이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보니 할말도 그만큼 많은 것이다. 


사람들과 끝도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내 두 눈을 가렸다. 
한국으로 치면 "누구게 ~" 를 나에게 하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

순간적으로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그것은 루이스였다. :) 
이틀만에 다시 만난 그가, 그리고 나를 보고 그렇게 반가워해주는 그가 나도 너무 반가웠다.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하고, 그는 친구들이 저녁을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며 조금 있다 보자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보게 되서 반갑고 고마웠다. 

이 길이 그런 곳이다. 자주 마주치다가도 갑자기 그냥 그렇게 끝이 나버리는, 그냥 사라져버리는 그런 곳. 
모두가 걷는 속도가 다르고 사정이 다르기에 오늘 만난 사람을 내일도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약없던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나게 되는 것은 기적이었고, 그렇기에 엄청난 반가움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을 알아감에 고맙고, 모두가 모두에게 오픈되어 있는 이 놀라운 곳에 고맙다. 

소등시간이 되어간다. 우리는 저녁을 먹은 곳을 함께 정리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정리를 하다가, 케샤의 전공이 성악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겠노라 말한다. 
나와 케샤, 켄따루, 그리고 친절하고 매너좋은 스페니쉬 에릭과 함께 우리는 알베르게를 뛰어 나갔다. 
우리에겐 10분밖에 시간이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찾아야했다. 

마을 공터에서 약간 올라가면 있는 교회 앞 광장에서, 우리는 무대를 발견했다. 
그리고 케샤는 노래를 했다. 나도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에스텔라의 밤을 아름답게 장식했고, 
밤하늘의 별들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더욱 반짝였다. 

실로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밤이 아닐 수 없었다. 
세명밖에 없는 관람객은 모두 감동을 받았고, 평생 잊지못할 아름다운 밤을 선물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함께 웃으며 신나게 뛰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아름답고 고마운 밤, 나는 케샤에게 굿나잇 인사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에겐 낯설기만 했던 스페인식 인사, 하지만 나도 그들을 포옹해주고 싶었고, 키스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에게 스페인식 인사와 폴란드식 인사를 알려줬고, 우리는 몇번이고 서로의 볼에 뽀뽀를 해 주며 인사를 연습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부에나스 노체스"를 말해주며 인사를 했다. 

스페인식 인사는 볼키스를 두번, 폴란드식은 세 번을 했다. 폴란드식 인사가 더 좋다는 에릭에게 폴란드식 인사를 해 주고,
케샤와 나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침대로 돌아갔다.


내 침대의 위는 일본인 카주였다. 그리고 그 옆은 와이프 셀린느,
늦게 들어온 내게 살짝 눈인사를 보냈다. 톰은 저쪽 멀리 이층에 있었다. 어쩐지 그에게 눈길이 갔다. 우습고 아쉽다. ㅎ

너무 친절한 일본인 카주는 왠 나이많은 아주머니에게 일본식 맛사지를 해 주고 있었다.
모두가 힘들고 괴로웠기에 마사지가 필요했고, 카주는 지나치게 친절했다.
그도 분명 원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셀린느도 딱히 기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얼른 건너오라고, 얼른 와서 너의 와이프 옆에 누워서 푹 쉬라고 얘기를 해 주고 싶었지만, 할 순 없었다. 

셀린느에게 나에게 발목에 뿌리는 스프레이가 있으니, 아침에 잊지말고 뿌리고 나가라고 말해주고 나도 침대에 누웠다. 
옆 침대와 딱 붙어있어 옆자리에서 자고 있는 순례자가 신경 쓰여 침낭안에 들어가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마치 원래 이렇게 잤던 것 처럼, 나는 그렇게 침낭속에서도 잘 자고 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운 별들의 마을 에스텔라,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운 에스텔라의 밤. 



나는 이 도시를 오래도록 좋아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