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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4. 플립플랍이 어때서?




2011년 8월 25일 

Zubiri  > Pamplona  |   21Km  



피곤한 아침이다. 코골이로 인한 난리통을 겪는 바람에 웃으며 시작했지만 내 몸은 피곤하다 외치고 있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케이코상과는 코골이로 난리를 친 하룻밤 만에 꽤나 친해져, 아침에 함께 알베르게를 나섰다.







뭉게구름이 너무나 이쁜, 너무도 청명한 아침이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How wonderful life is ~


케이코상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짧은 영어와 일본어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눠가며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아니, 이야기를 했다기 보다는 그냥 단어나열? 정도를 해 가며 길을 걸었다고 해야함이 맞지 싶다.
가령 길을 가다가 똥이 보이면, 영어로는 shit, 한국어는 똥, 일본어는 훙 이라는 식의 대화...
어쨌든 우리는 함께 걸었고 나름 즐거웠다.

아주 왜소한 체격의 케이코상은 본인의 덩치만한 가방을 메고 왔다.
배낭을 메고 있으면 그녀의 몸은 거의 온전히 가려지고 너무도 빈약한 두 다리만 보인다.
너무도 큰 등껍질을 메고 있는 한마리의 거북이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산티아고를 오면 온 집의 살림을 다 싸서 온다던데 진짜냐고 묻던 누군가의 질문이 생각났다.
정말 모든걸 싸 오신 케이코상. 하지만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언어도 생김새도 낯선 곳에 와야 하는 우리는 준비를 철저히 할 수 밖에 없다. 모든것이 완전히 다른 곳에 오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리고 나는 모든것을 싸서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온 케이코상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일본어, 영어, 스페인어로 된 단어장을 직접 만들어 와서 필요할때 마다 단어장을 뒤져 하고자 하는 말을 찾아내는 케이코상의 철저한 준비에 정말 박수라도 보내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초반에는 함께 걷다가 어느새 힘들어진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가고 있었다.

주로 내가 앞서가고, 가다가 잠깐 멈춰 쉬고 있으면 케이코상이 지나쳐 가면서 잠깐 쉬고, 또 출발하고 쉬기를 반복했다.


어제 저녁을 함께 한 까뜨린과 실까도 만났다. 
아마 가장 느린 순례자 4명이 바로 우리가 아니었을까? 

발에 물집이 아주 심각하게 잡혀있는 까뜨린과 실까는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발이 꽤나 아파오고 있었기에 빨리 갈 수가 없었고, 가방이 너무 무거운 케이코상도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느렸지만 함께였기에 즐거웠고 외롭지 않았다.

앞서가는 까뜨린을 바라보며 걷고, 뒤에서 따라오는 케이코상을 느끼며 걷는다. 

만난지 하루밖에 안된 사람들이지만 어쩐지 친근감이 느껴지고, 함께 걷고 있음에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발이 꽤나 심각하게 아파온다.

산길을 한참 지나 아스팔트로 접어들었다.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발이 더 힘든 것 같았다.
맨발로 걷기는 힘들 것 같고, 가방에 달려있는 플립플랍으로 신발을 갈아신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스팔트를 보고 플립플랍으로 갈아신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내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  






정말 살 것 같았다. 한국에서 미처 못지우고 온 하늘색 매니큐어가 챙피했다. 하지만 내 발은 정말 살 것 같았다.
아침처럼 다시 콧노래가 나왔다. 어쩐지 즐거웠다.


왜 우리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플립플랍을 신으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걸까 ?

나 역시도 그 고정관념 때문에 플립플랍을 신고 걷는 것을 결정하기까지 꽤나 망설였다. 그렇게 고통스러웠으면서도 말이다.
뒷꿈치가 다 까지고 물집이 다 터져도 등산화를 신고 고통속에서 걷는 수많은 순례자들, 나 역시 그들 중 한명이었다.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무조건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대체 어쩌다가 생긴걸까? 

그 고정관념을 깬 나 스스로의 선택이 자랑스럽고 자유를 찾은 발가락이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계속 났다.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그렇게 다시 힘차게 길을 나선다. 


길가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나의 발을 보고선 걱정어린 시선으로 괜찮냐고 묻는다. 
발이 아파 갈아 신었다고, 이게 훨씬 편하고 나는 행복하다고 대답한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고 행복했다. 


한참을 걸었다.
덥고 힘들고 배고프다. 


먹을 것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이렇게 길이 길고 지루하게 이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이코, 실까, 까뜨린은 어디갔는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뜨거운 태양속에 혼자 있었다. 

가방속에 로마에서 사 온 초콜렛이 있는 걸 생각해냈다. 
쉴 자리도 마땅치 않아 한참을 걷다가 꼬불꼬불한 산길 중간에 살짝 자리를 잡았다. 

그늘을 찾기도 힘들어 풀잎의 그늘이 살짝 드리워져 있는 돌맹이 위에 앉아 초콜렛을 꺼내본다. 다행히 녹진 않았다. 






원래 다크 초콜렛을 좋아했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특히 기운 빠진 날 당분 보충을 위해서는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 
90% 카카오 초콜렛따위... 다신 사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먹고 살아보겠다고 혼자 크레파스같은 초콜렛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도 그늘이 없는지...


긴 바지를 접어 올리고 플립플랍 신고 씩씩하게 산길을 걸었다. 
내 발걸음이 움직일 때 마다 바짝 마른 땅의 노란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길 중간에 아이스 박스에 음료수를 넣어 놓고 파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친절하게 말을 걸길래 나는 같은 순례자 인줄 알았더니, 그냥 장사꾼이었다. 
한국인이냐고, 한국인 몇명 봤다고 친한척을 하길래 그냥 못이기는 척 오렌지쥬스 하나를 사 줬다. 
사실 오렌지 쥬스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 안그랬으면 못사먹고 지나쳤을테니까. 

오렌지 쥬스를 쪽쪽 빨아가며 걷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플립플랍은 나에게 여전히 큰 행복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앞뒤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고,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혼자 노래를 불러본다.


"내 삶을 그냥 내버려~둬. 더 이상 간섭하지마 ~~~~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되야만해. "


임상아의 뮤지컬, 꽤나 오래 된 노래이다. 하지만 갑자기 생각이 났고, 부르다 보니 힘이 났다.
어쩐지 지금 나에게 딱 어울리는 듯한 노래와 가사였다.

혼자 고래고래 악을 쓰며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다. 즐거웠다.
길가에서 누워서 쉬던 한 여자 순례자가 내 노래를 듣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웃으면서 인사를 해준다.

민망하다.....

같이 웃으면서 인사를 해 주고 신나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상황도 웃기고 모든게 우스워서 혼자 낄낄대면서 웃었다.


이렇게 미쳐가는 거구나 ~

그렇게 한참을 걸어 Irre 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코 남매를 만났다. 
사실 말이 안통해서 대화는 별로 못나눠봤지만, 이름이 프란체스코, 안나마리코, 에츠코 여서 그냥 코남매라 혼자 부르고 있었다. 
특히 프란체스코 할아버지는 간달프 같은 느낌이 드는 마법사처럼 생긴 할아버지였다. 난 그들의 인자한 미소가 너무 좋았다.  

세 분은 이 마을에서 쉬어가려고 알베르게의 씨에스타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 마을인 팜플로나 까지 갈 예정이라고 말을 하고, 가려고 하는데 자꾸 세이요 세이요 라고 하신다. 

세이요가 뭐지 ?

문을 두드리고 세이요 라고 말하라고 한다. 뭔말인지 잘 못알아 들었지만 일단 문을 두드리고 세이요 라고 말했다. 
세 분이 몹시 좋아 하신다. 알베르게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리고 내 크레덴셜에 도장을 찍어준다. 

도장 - stamp - sello 

세이요가 도장이었다. 새로운 단어를 또 하나 배웠다.
이 다음부터 나는 "세이요, 뽀르빠보르 ~  Sello, Por favor " 라고 공손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친절한 코남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혼자 길을 나섰다.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지칠법도 한데 피곤하지도 않았고, 코남매를 만나고 세이요를 배운것도 너무 즐거웠다. 먼지투성이인 발가락을 보고 혼자 또 웃으며 길을 걷는다. 누가 나를 보았다면 정말 미쳤다고 생각했으리. 



 




예쁜 마을이었다. 마을도 꽤나 컸다. 두리번 거리며 마을을 걷다가 마주쳐 오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홀라 ~ 인사를 하고나니 할아버지가 영어로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을 하고 왠지 멋쩍어 팜플로나 이쪽으로 가냐고 물어봤다. 
이쪽 맞다며 자기가 함께 가 주겠다고 하신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 

이런 저런 산티아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도착하거들랑 자신을 위해 꼭 기도를 해 달라 하신다. 
그리고 친절하게 길을 알려 주신다. 

만나서 반가웠다고, 그리고 행운을 빈다고 얘기를 해 주시길래 답례로 나도 스페인어로 인사를 드린다. 

"무초 구스또, 부에나 수에르떼 ~ " (만나서 무척 반갑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 
"부엔 카미노"



처음 본 사람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주는,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호의가 적어도 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눈을 마주치고 한번 웃어 주는 것, 아무것도 아닌 그 것이 예전에는 왜 그렇게 하기 힘들었을까?

작은 만남에 감사해하며 또 다시 길을 재촉한다.

신발끈이 풀려 가는 길에 있던 버스정류장에 앉아 신발끈을 묶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순례자가 버스탈거냐고, 치팅 하지 마라고 하고 웃으면서 지나간다.
그냥 신발끈만 묶고 갈 것이라고, 나중에 보자고 나도 웃어줬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빵집과 슈퍼마켓이 보여 들어가서 뭘 좀 살까 고민하다가 어쩐지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냥 계속 걸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계속 내 몸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마을 끄트머리를 지날 때 쯤, 갑자기 누군가 나를 부른다.

'응? 여기서 날 부를 사람이 없는데 ?'

고개를 돌려 두리번 거리고 찾아보니, 루이스가 근처 바에 앉아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살짝 뒤돌아 갔다. 루이스는 한 예쁜 순례자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잔하고 가라는 걸 지금은 걷는걸 멈추고 싶지 않다며, 팜플로나에서 보자고 얘기하고 먼저 길을 나섰다.

루이스는 반짝이는 예쁜 눈을 가졌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도 눈이 참 예뻤다.
이래서 한국인들이 다들 쌍커플 수술을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냥 걸었다.


이상한 일이다.

그 둘을 만나는 바람에 무엇인가의 흐름이 끊겨버린건지 갑자기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다리도 아프고 쉬고 싶었다. 쉴 때가 한참 지나긴 했지만, 기분이 갑자기 아까와 좀 달라졌다.

거절은 했지만 내 몸은 시원한 맥주 한잔을 원하고 있었나보다. 


길 가에 있는 벤치에 잠깐 앉았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도로길래 그냥 드러 누워버렸다.



누워서 올려다 본 하늘이 너무 예뻤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그늘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대로 한 숨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베낭은 참 좋은 베게였고, 바람은 참 좋은 이불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어쩐지 루이스와 그 여자애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내 뒤에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자꾸 뒤따라 올 것 같아 조바심이 느껴졌다. 편안하게 누워 쉬다가도 그들이 나를 지나갈까봐 계속 의식하느라 신경이 쓰여 마음이 불편했다.

뭐하자는 건지...

그냥 길이나 다시 걸어야지.




그렇게 또 한참을 다시 걸었다. 그리고 아무리 뒤를 돌아봐도 그들은 따라 오지 않았다.
괜한 걱정. 그리고 또한 그들이 따라온들 어떠하리. 정말 바보같기 그지없다.


깨끗한 도로를 따라 한참 걷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화살표는 두군데로 다 나 있었다.
팜플로나 성당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이고 있었기에 왠지 가까워 보이는 오른쪽 길로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의 중간에는 서민들이 사는 듯 한 낡고 허름한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꾀죄죄한 꼬마들이 길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꽤나 사납다.  
이런 눈빛을 만난 건 예전 필리핀 여행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아파트 난간에서는 몇명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집중이다.

나는 혼자였고, 괜히 두려웠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당당한척, 무섭지 않은 척 길을 지나갔고, 오토바이를 정비하고 있던 한 스페니쉬에게 팜플로나가 이쪽 맞냐 물어봤다.
이쪽으로 쭉 5분만 더 가면 팜플로나가 나온다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그 얘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그 아파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 내가 순례자이고 저 사람에게 말도 걸었으니 해코지는 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났다. 뒷통수가 계속 따갑다.



어차피 사람 사는 동네고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무엇이 그리 두려웠단 말인가.
한국에서는 밤에 길을 혼자 걷다 누가 나타나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여행 중에는 집시들, 흑인들만 보면 혹시 내 가방 가져갈까 가방을 움켜쥐고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하고, 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되는 그 사람들, 다만 그들은 없이 살 뿐이고, 허름해 보일 뿐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 


그들을 두려워 한 내가, 너무 가난한 그들이,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 세상이 안타깝다.







커다란 돌다리를 건너니 팜플로나다.
왼편에 있는 작은 알베르게에 들렀는데, 이미 그곳은 다 찼다고 한다.
친절하게 시립 알베르게의 위치를 알려줬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독일인 라라와 함께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 나섰다.

라라, 금발의 예쁜 미녀다. 친언니와 둘이서 왔는데, 언니는 영어를 못한다. 그래서 둘은 항상 함께 다니고 라라가 주로 말을 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친해지고 싶은 너무 예쁜 자매였는데 아쉽다.


시립 알베르게는 엄청 컸다. 그리고 새로 리모델링이 되어 시설이 굉장히 깨끗했다.
침대 번호를 받고 침대를 찾아 올라가다가 한국인 락 오빠도 만나고 까뜨린도 만났다. 반가웠다.

그리고 한국인 여학생 세명도 만났다. 말라가에서 유학중인 그녀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순례길에 올랐으며 팜플로나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이십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 기특해서 다음에 밥 한번 사 주겠노라 얘기하고 헤어졌다. 

같은 동양인인데 외국인 일행이 있어 늘 말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했던 일행도 내 침대 근처에 있었다.
알베르게가 크니, 왠만한 사람들은 다 만나게 되는구나.. 싶다.

씻고, 빨래를 하고, 커다란 공동숙소를 돌고 돌아 내 침대를 찾아 가는 길에 한 여성 순례자가 날 불렀다. 

"꼬모 에스따르?" (괜찮아요? )
"무이비엔"  (아주 좋아요.)

내가 아는 몇 안되는 단어중에 하나, 오며가며 자주 마주쳤던 중년의 순례자였다. 
그녀는 한결같이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해 대며 나에게 하트가 예쁘게 박혀있는 플립플랍을 주었다. 
웃으면서 뭐라 말하는데 사실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플립플랍을 신고 걷는 나에게 필요할 것 이라 생각해서 자신의 플립플랍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받았다. 

"무챠스 그라시아스 ~" 

거절이 미덕이라 배운 우리는 이런 이유없는 선물에 당황하기도 하지만, 
이유없는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이 곳에서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몇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에 고맙게 받아들였다. 

호의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고마워 해 주는 것, 그 이상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은, 아니 적어도 이 곳에 있는 이 사람들은 너무도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허기진 배를 잡고 락과 함께 슈퍼마켓에 갔다. 락이 특별히 한국식 저녁밥을 해 주기로 했다.
나보다는 나이가 많을 것이 확실한 락 오빠가 알아서 이것저것 다 샀다. 

한국 남자의 강인함 이랄까, 간만에 뭔가 의지해도 될 듯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라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제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한게 미안해 오늘 저녁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 락오빠는 신기한 사람이다.

처음 본 것은 론세스바이어스 였다. 나는 히데오상을 찾아 여기저기 헤메고 있었고, 이마에 두건과 헤드램프를 감은채 2층에 않아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동양인을 발견했었다. 워낙 스타일이 특이해 일본 사람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먼저 출발한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급해 얼른 씻으러 가던 나에게 락 오빠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었다. 간만에 듣는 한국어...는 아니었지만, 한국인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너무 반가웠었다. 

그리고 우연히 주비리에서도 만났지만 서로 얘기를 하거나 한 적은 없었기에 아직은 조금 낯설었다. 




그는 요가를 하고, 요리도 한다. 신기했다.

하지만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비밀이었다.신비주의 전략인가 ?
본인이 밝히길 원치 않아서 묻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 내용으로 짐작해보건데 뭔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 듯 했다.
하긴, 이 곳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평범과는 먼 사람이다.


두번째 카미노 중인 락은 카미노에 대한 깨알같은 팁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의 지도에 어디가 좋고 어디가 별로인지 표시를 해 줬고, 이런 저런 유용한 팁들을 많이 알려주었다.
왠지 이 사진을 올린것을 알면 초상권 침해로 고소를 할 것만 같다.

뭔가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듯한 사람이니까 이런걸 보진 않겠지.



락 오빠와 한참 요리를 하고 주방에서 떠들고 있는데, 켄따루와 후미야가 올라왔다.

그리고 나를 보고 여기서 뭐 하냐고 버럭 화를 낸다. 나를 기다렸는데, 내가 안와서 걱정을 했다는 그들은,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 아니 기다린다고 말을 해 주던가..? 나를 챙겨주는 그들의 호의가 고마웠지만,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무튼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한 그들은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고, 우리는 요리를 마저 했다.
간만에 맡는 밥 냄새에 콧구멍이 벌렁벌렁 거린다.

슈퍼마켓에서 그들이 돌아왔을 때 우리의 저녁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었다. 일단 이걸 함께 먹고 요리를 해서 2차 저녁을 먹기로 하고 다같이 둘러 앉았다. 원래 주식이 밥인 사람들이라 모두 따끈한 밥에 행복해했다.





그리고 너무도 맛있는 고기 야채볶음, 어쩐지 고기도 야채도 오랫만이었다. 그리고 와인 한 병 !
스페인 와인은 싸고 너무 맛있다. 1~3유로 정도만 해도 꽤나 맛있는 와인을 살 수가 있다. 행복한 저녁이다. 


1차 저녁을 다 먹고, 켄이 2차 저녁을 준비했다. 콩과 토마토 소스를 이용한 스튜다.
바게뜨와 함께 스튜를 먹는데 까뜨린이 합류했다. 이미 배가 부른 우리는 그녀에게 함께 먹자고 얘기를 했고 그녀는 기꺼이 응했다. 폴란드에서 온 케샤와 뉴질랜드에서 온 몰리도 함께 와인과 디저트를 즐겼다.


밥을 먹고 나니 너무 배가 불러 마을을 한바퀴 하기로 했다.

팜플로나는 관광지로도 꽤나 유명한 큰 마을이었다. 나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유명한 광장과 교회가 있다고 한다.
까뜨린이 공짜 저녁에 대한 답례로 콜라를 샀고, 우리는 콜라를 한통씩 손에 쥔 채 관광에 나섰다.

하지만 순례자인 우리는 관광객이 될 수 없었다. 곧장 발의 통증과 피곤에 지쳐버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버렸다.

우린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니까, 어쩔수 없지 뭐. 



숙소에 돌아와서 루이스를 만났다.

카미노가 끝 나고 포루투갈을 여행할 예정인 나에게 그는 아주 상세하게 이런 저런 정보를 알려준다. 친절하다.
그리고 포르투-리스본-세비야로 갈 나의 일정을, 포르투-리스본-에보라-세비야 로 변경해준다.  
자기를 방문 했으면 좋겠다며 그의 집에 나를 초청해준다. 
넘치는 친절에 익숙치 않은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루이스는 예전에 카메라 디렉터 였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일을 접고 자연 속에서 쉬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영화를 좋아해 영화와 관련된 회사에서 일을 했던 나와 뭔가 동질감이 느껴져 왠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사람, 뭔가 특이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의 삶이 궁금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걸 물어보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 묻지 않았다.
아, 그리고 낮에 함께 있던 여자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 갔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이상하게 이 사람한테는 질문을 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말 이상하다.


루이스는 친구들과 술을 먹는다고 주방으로 올라가고 나는 내 침대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켄과 후미야가 내일 아침에 함께 걷고 싶다고, 기다리겠노라고 말을 했다. 굳이 왜 같이 가자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대충 그러라고 대답하고 침대에 누웠다.

발이 불난 듯이 뜨겁다. 아무래도 이렇게 혹사당한 적이 없었기에, 애들이 놀란 것 같다. 고작 나흘을 걸었을 뿐인데 말이다. 
좁은 침대에 누워 한참을 스트레칭을 하고 발 맛사지를 했다. 위에서 자고 있는 사람이 놀라지 않게 조심 조심 하면서 말이다.

걷는것은 괴롭고 힘들지만, 그래도 하고 말고 고민할 것도 없이 무조건 걸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이렇게 고통스럽지만 내일도 나는 걸을 것이다. 




케이코, 켄, 후미야, 루이스, 까뜨린, 실까, 락, 케샤, 몰리. 이렇게 나는 점점 사람들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도 깨달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