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3. 코골이의 최후




2011년 8월 24일 

Roncesvalles  > Zubiri  |  21Km  



새벽부터 부스럭 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오늘도 잠에서 깬다. 알람이 따로 필요 없다.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은 몹시 부지런 하구나, 싶은 아침이었다.


일본에서 온 62살 히데오상은 한국에서 14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한국어에 꽤나 능통하다.
약간은 어리숙한 한국말로 한국 친구에게서 받은 군용 비빔밥이 있으니,
다음 마을에서 함께 먹자며 아침 식사 초대를 했다.

먼저가서 기다리겠노라며, 히데오상은 침대에 누워 스트레칭 하고 있던 나를 뒤로 하고 다른 일본인 두명과 함께 출발을 했다. 
 


뭐? 먼저가서 기다린다고 ????? ...


마음이 급해졌다.

후다닥 씻고 짐을 꾸려 나도 서둘러 나서려고 하는데, 어제 숙소에서 만난 미국인 아주머니를 알베르게 입구에서 만났다.
왠 남자 순례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해 주신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아주머니 가방에 달려있는 거북이 인형(이름은 스피디 이다)에게 인사를 하고,
멀뚱히 서 있는 남자 순례자와 인사를 한다.

눈이 몹시 반짝이는 그는 한국에서 왔냐며, 한국인 친구 몇명을 알고 있다고 이름들 들먹여 준다.

내가 알 리가 없잖아 ?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불안함에 인사만 대충 나눈채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비가 곧 쏟아질 것 처럼 흐린 아침이다.  하지만 아침공기는 상쾌하다. 


꽤나 많은 순례자들이 비슷한 시간에 출발을 해서 길을 찾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비록 앞서가던 미국인 순례자 두명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그들만 보고 따라걷던 나 또한 그 길로 갔다가 돌아오긴 했지만 말이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다음 마을은 가까웠다. 






마을에 하나 있는 바는 아침을 먹으려는 많은 순례자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나는 쉽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일본인 켄따루와 후미야를 만났다. 그런데 정작 아침식사에 초대를 한 히데오상이 보이질 않는다.
아침에 같이 나간 줄 알았더니 따로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도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일회용 비빔밥은 후미야가 가지고 있었지만, 히데오상이 없이 우리끼리 먹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일단 다음마을까지 걸어 가면서 그를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아침 거르는걸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참고 걸었다.


가는 길에 비를 만났다. 

아침도 못먹어 기운도 없는데 비까지 오고, 앞서가는 일본인은 걸음이 너무 빨라 기분이 뭔가 나빠졌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왠 스페인 아저씨를 만났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을 해 주려 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길은 틀린 길이고 저~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쩐지 그 많던 순례자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앞서가던 후미야와 켄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간다. 
별수 없이 뒤따라 갔다. 다시는 누군가와 함께 걷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빨리 다시 혼자 걷는 시간이 오기를 빌었다.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도로위의 표지판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다음 마을이 표시되어 있었기에
그냥 조금 둘러가는 길이구나 ~ 라고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순례자들도 있었기에, 다행히 금방 마음을 비울 수 있었다. 

비는 잠시 오다가 말았다. 꺼내입은 비옷이 무색해졌다. 




다음 마을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히데오상을 만나지 못했고, 결국 마을에 하나있는 빵집에서 갓 구운 바게뜨와 햄, 치즈를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작은 빵집에서 산 바게뜨는 정말 맛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빵이 안질리는 걸 보면 난 정말 빵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란히 앉아 켄따루와 후미야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나는 아직 이들이 낯설기만 하다. 


무엇인가 마음이 불편한건 나 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샌드위치를 먹고 난 뒤, 후미야가 따로 걷자고 얘기를 한다. 보아하니 둘은 이미 이야기가 된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걸 보니, 내 걱정을 꽤나 했나보다. 전혀 그럴필요 없는데 말이다.
어차피 자기 페이스대로 가면 따로 가게 될 걸 뭐 그리 따로 가자고 얘기까지 하고 먼저 출발하고 뒤따라 출발하나 싶었다. 



21살의 휴학생 켄따루는 세계일주 중이다.

24살의 후미야는 런던에 있는 일본 식료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여행을 하러 이 곳에 왔다고 한다.


그들이 무엇을 얻고자 이 길에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해 이곳에 왔다라고만 말을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나름의 깨달음이 있겠지만, 자기 나라를 싫어하고 무엇인가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여행을 다니는 그들이 너무 어리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매 한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뭔가 마음이 씁쓸해졌다.

물론 나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하나 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너는 여기에 왜 왔니? "


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거의 다 서로에게 저 질문을 한다.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는데, 그가 이 길을 걷고나서 인생 전체를 바꿨다는 글을 보고 산티아고를 꿈꿨고 여기에 왔노라, 
그리고 나도 내 인생을 바꾸려고 그러노라.. 라고 대답을 하고나면, 
어떻게 인생을 바꾸고 싶냐는 질문이 늘 따라온다. 


그것을 찾기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고 대충 대답하고나면,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는 대체 이 곳에 왜 와있는가 ? 

내 인생을, 대체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


사실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는 있었지만 그 대답에 대한 확인이 없었기에, 뭔가 찜찜한 마음이 늘 들었던 것 같다. 
나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어떻게 대답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일본인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길을 걸었다. 
대체 무엇을 해야하나, 나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나, 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

그저 새롭고 아름다운 자연에 경탄하며,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을 조금씩 느껴가며 그렇게 길을 걸었다. 



고통이 고민을 이겼다. 

3일만에, 발의 통증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신발이 작은 것 같다. 발이 너무 괴로워 한다. 

참고 걷고 걷고 또 걷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훨씬 살만하다. 






지나가던 사람들 몇몇이 괜찮냐고 묻는다. 괜찮다고 대답한다. 

맨발로 걷는게 훨신 편한데, 자꾸만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이 신경쓰이고 뭔가 신발을 신어야만 할 것 같아서 
다시 신발을 신고 고통속에 내 발을 떠밀어 버렸다. 



괴로웠다..

주비리는 가도가도 나오질 않고, 내리막에서 끝날 것 같던 산이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기를 여러번..
나중에는 결국 오기로 참고 걸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발이 아픈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 신발을 길 위에 벗어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나도 정말 신발을 벗어 던져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진작에 신발을 많이 신고 걸어보지 않았던 걸 후회하며, 
그리고 저렇게 신발을 벗어 놓고 간 사람의 재치에 혼자 미소지으며, 그렇게 또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비리를 만났다. 







조그만 개울을 하나 건너면 이름도 낯설은 주비리가 나온다.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예쁜 마을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시립 알베르게를 찾아 가려 했는데, 잘못 알아서 입구에서 가까운 사설 알베르게에 숙소를 정했다. 
워낙 초반이라 알베르게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고, 사설 알베르게라고 그렇게 비싼것도 아니었기에 잘못 갔다고 해서 속이 상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가격을 더 주고 훨신 나은 퀄리티의 숙소에서 지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마을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켄따루가 아침에 못 먹은 비빔밥을 저녁에 함께 먹자고 했다. 
그리고 어제 함께 먹은 라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저녁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야호. Why not ? 



씻고 짐을 풀고 마을을 한바퀴 돈다. 
같은 방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일본인 아주머니 케이코상과 함께 콜라를 찾아 헤메었다. 씨에스타 시간이라 문을 연 상점이 없다. 
자판기에서 콜라 하나를 빼서 먹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트름을 한번 하고 나니, 그렇게 행복할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의 달콤함. 


여행자센터 앞에서 아침에 우연히 만난 루이스를 다시 만났다. 나를 몹시나 반가워 해 준다.
한국인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는건지, 아니면 그의 한국인 친구를 아주 좋아하는 건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몹시 친절하다. 참 고맙다. 






상점이 문이 연 시간을 기다려 와인 한 병을 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 가는 시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켄따루는 이미 무엇인가 신기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요리를 좋아해 자주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히데오상이 전해준 한국의 군용식량.
어쩐지 간만에 보는 한글이 반가웠고, 일본인이 이 것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김병장 전투식량의 주인인 히데오상은 저녁 약속이 예정되어 있어 함께하진 못했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건강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참 좋았고 다행스러웠다. 



켄따루, 후미야 그리고 독일에서온 까뜨린과 벨기에에서 온 실까, 그리고 한국인 락과 독일인 모녀 바바라와 헬레나가 동석했다. 
넉넉치 않은 와인을 나눠먹고, 넉넉치 않은 음식을 나눠먹고나니 아 이게 순례자들의 저녁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까뜨린은 첫날부터 발에 심각하게 물집이 생겼다. 뒷꿈치가 거의 다 벗겨져 피까지 나고 있었고,
저 발 상태로 신발을 다시 신고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휴가로 산티아고 걷는 것을 결정한 까뜨린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와 불만이 가득해 저녁내내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실까는 행복한 순례자였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그녀 역시 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이 아파 12시간을 길에서 보냈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너무도 즐겁게 얘기했다. 

발에 물집이 잡힌 두 여성 순례자는 길에서 만나 함께 걸어 왔다고 한다. 고통스러워 하면서 말이다. 


마음의 차이일까 ? 목적의 차이일까 ? 성격의 차이일까 ? 


둘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고, 어쩐지 불평 불만만 쏟아내는 까뜨린이 못마땅해보였다.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까뜨린은 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역시 사람일은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구나 싶다. 


저녁을 꽤나 오랫동안 먹었다. 해가 떠 있을 때 시작한 자리가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오고 나서 끝이 났으니 말이다.




한참을 웃고 떠들고선 조용한 숙소로 돌아왔다. 같은 방을 쓰는 몇몇 사람들은 이미 잠자리에 든 후였다. 
저녁 열시, 너무 왁자지껄한 곳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마음이 붕 떠 있는 기분이다. 

일기나 쓰고 자야겠다는 생각에 아랫층으로 내려가본다. 





테이블에 앉아서 혼자 이것저것 쓰고 내일 가야할 길을 체크하며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덩치가 커다란 남자 두명이 내려오더니 당구를 치기 시작한다. 
혼자 있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같이 당구를 치겠냐고 물어본다. 

잘못친다고 했더니 괜찮다며 같이 당구를 치자며 큣대를 나에게 준다... 아...-_- .
나도 당구는 거의 잘 못치지만 저 둘도 정말 못친다. 나와 비슷 비슷한 실력. 한국 남자들이 당구를 참 잘치구나 싶었다. 

스페니쉬 콴은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카미노 중이었다. 그들은 내가 걷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내일 론세스바이어스에서 여행을 끝낼 예정이라고 했다. 
나의 여행 얘기를 듣고는 내 일기장 뒷편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발렌시아 근처의 자기네 동네를 지나게 되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한다. 곰같이 무섭게 생겨서는 몹시 친절하다. 


콴의 나머지 일행 두명이 음식을 사 들고 들어왔다. 
같이 먹자고 하는 걸 정중히 거절하고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누웠다. 몸이 피곤하니 순식간에 곯아 떨어져 버렸다. 




"드르렁 ~ .. 드르렁 ~ " 


내 침대 위에서 심각하게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정말 큰 소리에는 귀마개도 소용이 없었다. 
열 두명이 자는 그렇게 크지 않은 방의 여기저기서 한숨쉬는 소리와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잠을 못이루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몸을 움직여본다. 내 움직임이 그의 코골이를 잠시나마 멈추게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전혀 소용이 없다...


에휴. 이게 카미노니까...

다시 잠이 들려 노력해보지만, 정신이 점점 또랑또랑해 지기만 한다. 



그렇게 한시간쯤 흘렀을까 ?
정적과 코골이, 한숨소리가 반복되던 어느 깊은 새벽...
갑자기 코골이남의 옆 , 그러니까 내 침대 옆의 이층을 쓰고 있던 여자가 베게를 코골이남에게 집어 던졌다. 


" Shut up ! "


당황한 남자가 잠에서 깬다. 
여자는 이 방에서 너만 코를 골고 있고 너무 씨끄러워 잠을 잘수가 없다고 제발 코좀 골지 마라고 한다.


코고는게 마음대로 되는것도 아닌데,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고 어쩐지 상황이 우스워 나는 혼자 킥킥대고 있었다. 


그러고 다시 침묵..... 그리고 잠시후 또다시 시작된 코골이...



그리고 이번에는 베게 폭격이 코골이 남에게로 날아간다. 


 "Shut up ! please get out ! "


예민할대로 예민해진 여자가 베게를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당황하고 화난 남자는 일어나서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소리를 지른다. 
남자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니 여자는 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침대 아래로 내려가 밑에 있던 아빠에게 안겨 서럽게 울었다.


아, 그 여자는 호주에서 온 20대로, 온 가족이 함께 카미노를 걷는 중이었다. 20대 두 딸과 엄마 아빠,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나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가족과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성격좋아 보이던 금발의 미녀 였는데... 아무튼 가족이 함께 있어 그나마 덜 무서웠으리라..



결국 어느 누구도 잠을 푹 자지 못한채 아침이 밝아왔고, 동이 트기도 전에 호주인 가족은 방문을 쾅 닫으며 나가버렸다. 

방문이 쾅 하고 닫힌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누군가가 울면서 snoring 이라고 소리 치던 그 여자를 흉내내기 시작한다....

콴과 그의 일행이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누군가에게는 몹시 언짢았을 그 날 어둠속의 일이 한낱 우스갯거리가 되어 방에 웃음을 선사한다. 
익살스러운 그들의 흉내에 나와 케이코상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본 콴이 다시 만나 반갑다고, 잠을 잘 못잔거 아니냐고 안부를 묻는다. 
물론 못잤지만 모두가 함께 공유한 잠 못드는 밤이었기에 괜찮다고 얘기한다.  


가벼운말로 코골이 남을 비난하고, 그래도 웃으면서 남은 6명이 아침을 맞이했다. 



snoring , 카미노에서 첫번째 배운 영어단어였다. 그리고 이 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중에 하나이다.  


정말 코골이가 없는 밤이 손에 꼽힐 정도이다. 매일 우리는 해비 스노어를 피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또 모두가 지칠대로 지쳐있기 때문에 코골이를 만나는 것은 피하기가 어려웠다. 



호주에서 온 그녀도 아마 너무 초반의 카미노라 예민하게 나왔지만, 
나중에는 적응해서 그저 무덤덤하게 코골이를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해본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말이다. 



코골이는 어디가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밤의 불청객 이지만, 
본인이 원해서 그런것도 아니고 제어가 가능한 것도 아니니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저 코골이를 안만나기를 비는 수 밖에....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발의 고통, 잠 못이루는 고통,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야 하는 고통도 알아가기 시작한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이 고통을 감수하고 이 길을 얻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