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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7. Give Give Give.





2011년 8월 28일.   

Estella  >  Los Acros  |   21Km   





부스럭거리는 사람들의 소리에 오늘도 잠에서 깬다. 다들 어쩜 이렇게 일찍들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물론 누워있는 나도 잠을 자고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새벽녘부터 일어나 어둠속을 걷고 싶지 않다. 
빛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 단지 그 이유로 나는 늘 일곱시가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지런한 나의 친구들은 이미 출발하고 없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덩치큰 굴리가 아침부터 발목 통증을 호소하고 있길래 그에게 어제 산 스프레이 파스를 권했다. 
덩치와 안어울리게 아주 유쾌하고 활달한 굴리는 너무 고맙다며 우렁찬 소리로 인사를 한다. 

오늘이 마지막 걷기라 느지막히 움직이는 셀린느에게도 파스를 뿌려주고, 준비한 샌드위치를 챙겨 길을 나섰다. 


알베르게 앞에는 루이스와 몇몇 순례자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에노스 디아스 ~ "

습관이 되어버린 아침인사를 하고, 나는 내 갈길을 가려 하는데 루이스가 나를 따라 나선다. 나를 기다린걸까 ? 



루이스가 저 마을 끝에 있는 바에서 커피한잔을 마시자고 말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흔쾌히 그의 요청에 응한다. 
잘잤냐는 둥, 날씨는 어떻다는 둥, 다리는 괜찮냐는 둥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주유소에 있는 편의점 안 카페로 갔다. 






편의점 안 카페에는 몇번 마주친 적이 있는 한 여자 순례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브라질에서 온 산드라, 그녀는 골반쪽에 통증이 너무 심해 오늘 이 곳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알베르게는 오후가 되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포르투갈인인 루이스와 산드라는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의 대화 내용은 루이스의 통역으로 나에게도 전해졌다. 
루이스는 포르투갈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그리고 약간의 이탈리아어도 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둘, 혹은 셋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굴리와 안토넬로, 몰리와 알렉산더가 들어왔다. 
나를 본 굴리가 다짜고짜 "Oh my angel !" 라고 외치며 다가와 머리통에 뽀뽀를 퍼붓는다. 
아침에 내가 뿌려 준 파스 덕분에 다리가 걷기가 훨신 수월하다며, 내가 그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얘기한다. 

별말씀을요 ^^; 

그리고 굴리와 뉴질랜드에서온 18살 몰리와 안토넬로는 필요한 것을 사 들고 먼저 길을 나선다. 

이탈리아에서온 24살 안토넬로는 이탈리아노 답게 아침 커피를 선택했다.
루이스와 아는 사이인지 옆에 와서 이야기를 한다. 이탈리아어로 말이다. 

이젠 둘, 혹은 넷이 대화를 하고 있는 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루이스는 분위기를 조화롭게 만들고 사람을 이끄는 어떤 힘을 가진 듯한 사람이다. 


걷지 않겠다는 산드라를 다음 마을까지만 함께 가자고 루이스가 설득했다. 
이미 2년전에 카미노를 한번 끝마친 루이스는 다음 마을이 몹시 아름답고 조용하고 유명한 곳이라 말했다. 
그리고 산드라는 다음 마을인 7km 까지만 걸어 보겠노라 하고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섰다. 



에스텔라에서 조금만 지나가면 와인과 물이 나오는 분수가 있는 이라체에 닿게 된다. 
모든 순례자가 와인이 나오는 분수를 고대하고 아침에 길을 나섰다. 
우리도 아침부터 와인을 흠뻑 마실 생각에 행복해 하며 길을 걸었고, 그 곳에 도달했다. 






이 곳은 이 마을에 있는 와인회사에서 지나가는 순례자들과 마을 주민에게 기부한 뜻깊은 장소였다. 

기부,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다.
상징적인 기부가 아닌, 이렇게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기부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런 방식의 기부를 점차 하게 되리라 희망해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와인이 모두 말라 있었다.
수돗꼭지 끝에 와인이 한방울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침 일찍 너무 많은 순례자들이 이 곳을 지나친 듯 했다. 

아쉬웠다. 나도 수돗꼭지에서 나오는 와인을 꼭 맛보고 싶었는데... 
그 곳에서 다시 만난 굴리, 몰리, 알렉산더도 모두 아쉬워 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사진만을 남긴채 그 곳을 떠나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순례자들과,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순례자들은 모두 그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하필 딱 다 떨어졌을 그 시간에 우리가 그 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말짱한 정신으로 걸으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다........ 아마 그럴 것이다.








산드라와 루이스, 그리고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골반이 아픈 산드라와 발목이 아픈 나, 그리고 정체를 알수 없는 루이스는 전혀 빨리 걷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루이스의 통역으로 셋이서 함께 대화를 하다가 나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걸어 가면서 영어로 대화까지 하려니 너무 힘들어 혼자 조용히 걷고 싶었고, 그걸 눈치챘는지 루이스는 말을 걸지 않았다. 

두사람의 대화를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포르투갈어, 참으로 듣기가 좋은 언어라고 생각했다. 산드라의 목소리는 어떤 일정한 리듬을 타며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고, 그 억양과 리듬이 마치 노래와 같이 부드럽게 흐르는 듯 했다. 
대화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노래라 생각하고 나의 길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양들이 모여있는 들판을 만났다. 양치기 개 한마리가 수십마리의 양들을 몰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광경이었다. 
저 개는 어떻게 양치는 법을 배운 걸까 ? 둥글게 양들을 몰아 한 곳으로 가게 만드는 양치기 개의 기술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다음 마을인 AZQUETA 의 벤치에 앉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산드라는 그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함께라는 것이 그녀에게 큰 힘이 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때, 마을 저쪽에서 세명의 순례자가 손에 막대기를 쥔 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루이스에서 무어라 말을 했다. 스페인어라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 

루이스는 어떤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곳은 스페인 할아버지 파블로티의 집이었다. 
파블로티는 젊었을 시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수십년간 그 곳에서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지팡이와 조롱박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정말 스페인 사람처럼 생긴 파블로티 할아버지는 어쩐지 자꾸만 은근슬쩍 스킨쉽을 했다. 아 역시 스페니쉬다.


파블로티의 앞마당에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가 자랑하는 코끼리 모양의 나무, 그리고 쌓여있는 조롱박과 지팡이들.

시골 할아버지 집에 온 것같은 푸근함과 인정이 느껴졌다.
자식들에게 무한정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내리사랑, 그런 것과 같은 종류의 사랑일까 ?

한번 지나가면 다시 만나기도 힘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않고 나눠주는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한걸까 ?

참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 너무 삭막하고 각박한 시대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한게 아닐까 싶다.

















그가 자랑하던 코끼리 모양의 나무가 나도 마음에 든다. 저 코끼리는 어쩌다가 다시 나무로 태어나게 된 걸까 ?  


 
파블로티에게 받은 지팡이를 하나씩 손에 들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산드라는 루이스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힘을 내서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조용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것, 어쩐지 스페인어를 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이 꽤나 든든하게 느껴졌다.
혼자 걸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행운,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이 막대기가 이 행운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루이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반가워 해 주는 것도, 만날때마다 챙겨주는 것도,  그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선심이 느껴진다. 고맙다. 


그 다음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커피와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루이스는 나에게 나는 자신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데 나는 내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다.
안그래도 알려 줄 생각이었노라고, 다시 만나게 되면 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노라 말하고 내 여행자 명함을 건네줬다.
산드라에게도 줬다. 굿 아이디어라며 내 명함을 마음에 들어한다. 뿌듯하다.




 


먹다남은 쿠키와 초코머핀, 그리고 샌드위치와 바나나.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조금씩 나눠 먹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그래도 나눠 먹을 수 있음이 감사하다. 

이번 마을에서 묵기로 했었던 산드라는 결국 우리와 함께 로스 아크로스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멀고 고독한 길을 나섰다. 길은 단조롭고 편편하고 뜨거웠다. 




 

로스 아크로스를 앞둔 마지막 코스가 가장 힘들었다.
가장 뜨거운 3시경 그 곳을 걷고 있었고, 그늘하나 없는 뜨거운 길 위에서 우리는 점점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유일한 그늘인 쌓여있는 짚더미 아래에서 잠깐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늘속에 있으면 금방 시원해 지는 스페인의 뜨거운 여름이 나는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짚더미에 기대 누워 우리는 아까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먹고, 통조림으로 된 버섯을 먹고, 오렌지를 먹었다.
그리고 혼자 터덜터덜 길을 걷던 체코에서 온 20살 마이클을 만났다.




 


웃통을 벗은채 가방을 메고 걷는 그는 알베르게에서 자지 않고 그냥 아무곳에서나 잔다고 했다.
학생이라 돈이 없기도 하거니와, 자연속에서 자는 것이 더 좋다는 그의 어눌한 영어가 어쩐지 귀여웠다.

남자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상 웃통을 벗고 걷는 안토넬로, 그리고 마이클. 그리고 아무데서나 그냥 자도 되는 .. 뭐랄까? 그건 용기는 아니고.. 아무튼 어쩐지 남자들만 할 수 있을것 같은 그런 일들이 조금 부러웠다. 

그랬다... 사실 여자가 걷기는, 그것도 덩치 조그마한 여자가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걷기에 쉬운 곳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걷고 있었고, 걸을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늘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우리는 다시 걸어야 했다.
가는 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포도밭에서 포도를 따 먹어 가면서 우리는 길을 걸었다.
포도가 처음 먹었을때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 포도가 익어가고 있나보다. 



 




길에 남겨져 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일행을 잃어버리면, 찾을 길이 막막하기에 이렇게 쪽지를 남겨두고 길을 걸어야 했다.
그들이 꼭 다시 만나게 되길 빌며, 다시 길을 걸었다. 


로스 아크로스까지 가는 길은 정말 너무도 멀고 멀었다. 너무 덥고 너무 지쳤고, 길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이 곳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레온에 가기 전에 나오는 카스티야의 평원은 이보다 더 삭막하고 뜨겁다고 했다.
상상할수도 없다. 그리고 이 뜨거운 햇볕 아래서 내 머릿속은 하얗게 하얗게 비워져 갔다.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던 로스 아크로스에 도착했다.
루이스가 우리가 가야 할 숙소로 우리를 안내해줬다. 교회옆에 있는 시립 알베르게, 이미 모든 친구들이 그곳에 있었다. 
늦게 도착한 우리들 몫 까지의 거대한 스파게티를 케샤와 몰리가 만들고 있었고, 우리는 운 좋게 마지막 남은 3개의 침대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두개 남은 아랫층을 나와 산드라가 쓰고, 내 침대 위를 루이스가 쓰기로 했다.  마이클은 숙소 밖에 있는 캠핑장에서 묵기로 했다. 침대가 7유로, 캠핑장은 3유로 였다.  


씻고, 빨래를 하고, 숙소 옆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한다. 천국이 따로 없다.  


빨래를 하다 만난 스페니쉬 호세가 "이구왈멘데" 라는 단어를 알려줬다. "I hope to see you again ! " 의 뜻이라고 한다.

그는 의사였다. 그리고 그의 와이프도 의사였다. 그의 아내는 지금 비영리단체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하러 갈 계획이라고 했다. 

멋진 부부고, 멋진 인생이라 생각했다. 단지 그런 그들의 삶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그들이 서로를, 인생을, 지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구왈멘데."

아름다운 단어였다. 나는 그 뒤로 그와 마주칠때마다 그 인사를 했다. :)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마이클과 함께 숙소 맞은편에 있는 새로 오픈한 순례자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켄따루, 후미야, 루이스, 마이클과 함께 수퍼마켓에 들러 저녁에 마실 와인을 샀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에 있는 교회를 구경하고, 잔디밭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그냥 그렇게 시간속에 녹아 있었다. 


첫날부터 만났던 히데오상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미 다른 순례자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그는 발뒷꿈치가 모두 벗겨져 내일은 걷지 못하겠노라고 얘기를 했다. 
우리는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기약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것이 카미노였다. 
언제 작별이 찾아올 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지금에,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네 인생도 매한가지.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거대한 저녁이 완성됐다. 체코에서온 마이클은 이런 웅성거림이 익숙치 않은지 주변을 서성거리고만 있다. 
함께 먹어도 된다고, 모두가 너와 같은 사람들이니 부담가질 필요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부담스러운지 자리에 앉지 못하고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 아직 어려서 숫기가 없나보다. 

마이클을 내 옆에 앉히고 스파게티를 떠서 줬다. 고맙다고 얘기하는 그가 우리의 마음을 받아들인 듯 해 기뻤다. 

 





사실 스파게티는 그닥 맛있진 않았다. 일단 너무 많은 면에 비해 소스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냥 와인과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정도의 스파게티랄까... 

그래도 함께 먹었기에 우리는 즐거웠고 배불렀다. 








내 왼쪽에 앉아있던 독일에서 온 20살짜리 영어교육학을 전공하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위 사진의 왼쪽) 

"Why are you here? "

여기에 왜 왔냐는, 수도 없이 들었던 질문.

어찌어찌 하다가 이 길을 알게 됐고 이 길에서 인생을 바꾼 사람을 알게 됐고 그를 따라 나도 인생을 바꾸러 왔노라,
라고 늘상 얘기를 했었는데, 어쩐지 그렇게 말하기가 귀찮았다.  그래서 저 무렵 나는 그저 혼자이고 싶어 왔노라고 대답했었다. 

혼자 이고 싶어서 왔노라는 내 대답에, 그녀는 다시 묻는다.

"So, did you do that? " 


....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정녕 혼자였던가 ? .. 그렇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이고 싶다 스스로에게 되뇌였지만 정작 나는 혼자였던적이 한번도 없었다.
혼자일때는 늘 누군가를 찾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길 빌었다.
내 마음은 혼자가 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는데, 나는 계속 혼자라 믿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 머릿속에 거대한 폭풍우를 만들어 놓고 말이다. 
 

나는 결심했다. 지금 새롭게 알게된 이 사람들이 너무 좋지만, 늘 챙겨주고 반겨줘서 고맙긴 하지만, 
조만간 이들을 떠나겠노라고, 그리고 다시 혼자 이 길을 걷겠노라고. 


그날 밤,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맥주를 하나씩 사 오는 덕에 술이 넘쳐났고,
그 술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같이 술먹기 대결을 했다. 




 

국가별 대결, 한명뿐인 한국인이라 불리한 나는 같이 놀다가 슬쩍 빠졌다.
무리중에 나는 꽤나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고,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놀이에서 빠져주는게 예의라 생각했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 앉아 호세와 마이클과 와인을 마셨다.

마이클이 진심으로 나에게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영어를 잘 하지도 못했기에 한단어 한단어 천천히 끊어서 얘기를 해 준다. 그렇게 말해주니 내가 더 고마웠다.


그렇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너무 많은것을 바라고 살아온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바라지 않고 준다는 것,
이라체의 와인분수가 그랬고, 파블로티 할아버지가 그랬고, 이 길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랬다.

Give와 Share,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고맙게 받아들이고 그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이 길이고 우리의 삶이다.  


오늘도 역시 너무도 아름다운, 너무나 완벽한 날이고 완벽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