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나에게는 너무도 특별한, 결코 잊지못할 2011년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올해를 시작할 때의 나와, 올해를 끝내는 내가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다들 일을 그만두고 싶은 슬럼프가 찾아 온다고 한다.
3개월 3년 6년, 뭐 이런식으로 진행이 된다고 하는데, 올해로 3년을 조금 넘긴 나의 직장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왔었다.
일이야 늘 하기 싫었다.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도 늘 생각했다.
하지만 감히, 일을 그만 둘 생각을 못했었다.
어쩐지 올해 초에는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단, 아니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될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또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폭풍이 몰아치던 그 4월에, 나는 일주일간 외부 교육을 가게 되었다.
그 시간동안, 나의 똑같은 일상에서 한발자국 벗어나 나에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 두어야 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던 날 저녁, 친구를 만나 즐겁게 저녁을 먹었고,
알수없는 이유로 나는 강남역 한 가운데서 정신을 잃었다.
뒷통수에는 큰 혹이 두개가 났고, 정신을 차린 나는 그 순간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나에겐 정말 큰 충격이었다. 순간적으로 혈압이 떨어져 두어번 쓰러져 봤지만 이번같은 강렬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 바닥에 돌이나 유리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
이렇게 인생이 끝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일은 정말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 다음주에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그냥 사직서만 제출해서는 안될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 줄, 다시 흔들리지 않게 해 줄 강렬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6년간 꿈꿔온 산티아고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100일간의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 뒤에 회사를 그만두겠노라 팀장님께 말씀드리고, 친한 내부 지원들에게 말을 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연이은 상담과 궁색한 변명, 불확실한 나의 미래에 대한 염려들이 쏟아졌다.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첫 직장, 정든 사람들을 떠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난 흔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지금이 아니면 안될것만 같은 강렬한 무언가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난 사실 귀가 얇다. 그리고 마음이 그렇게 독하지도 않다.
하지만 저 때 만큼은 독했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2011년 5월 31일을 마지막으로 나는 백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20대 여자가 되었다.
6월 한달은 집에서 먹고, 쉬고, 책보고, 영화보며 그렇게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떠났고, 길을 걸었고, 많은걸 얻어서 돌아왔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된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느끼게 된 것을 믿게 되었다.
길에서 얻은 그 수많은 것들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으리.
어쩌면 무엇인가가 나를 그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설명할 수 없는 기절, 굳은 마음, 그리고 번뜩하고 떠오른 산티아고.
모든게 그저 우연이라고 하기엔 충분치 않은 느낌이다.
이 모든것은 내 인생에 일어나야 할 일들, 그렇게 되야만 했던 일들인 것 같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각오하고 준비해서 돌아왔다.
예전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조금 더 나 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 오자마자 부던히 노력했다.
잘 살고 싶던 마음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오래된 나의 소중한 인연을 보내고, 나만의 생활 공간을 만들었다.
잘한 선택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쩐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지는 못했다. 지금 나는 예전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일을 하는 내 마음이 예전과 다름을 느낀다. 더 침착해졌고, 더 행복해졌다.
그리고 이것 또한 내 인생의 길이리.
여행에서 돌아온지 두어달, 나는 아직 그 모든것을, 아니 대부분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고맙고 다행이다.
후회없는 선택은 없다라고 한다.
나의 2011년에는 내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칠 큰 선택들이 유독 많았고, 아직 큰 후회는 없다.
물론 알 수 없다. 1년, 2년뒤의 내가 2011년을 돌아봤을때 큰 후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1년을 보내는 지금의 나는, 지나온 1년이 참으로 뜻깊고 보람차다.
2012년이 기다려진다.
선택의 순간에서 늘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배려, 나눔, 이해, 믿음, 감사, 그리고 사랑.
늘 따뜻한 마음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길.
2012년의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그리고 아마 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리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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