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행 버스가 도착했고 다들 부산스럽게 버스에 오른다. 들떠보이는 사람도 있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난 잘 모르겠다. 다시 관광객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순례자인 것 같다.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안녕 산티아고. 언젠가는 다시 올게. 또만나자.
버스는 도시를 돌아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내를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둥근 커브길을 돌았다. 오른편 창밖으로 산티아고 집들의 붉은 지붕이 보인다.
그때 정말 너무도 강렬한 데자부의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분명히 어디서 본 장면이다 !
올해 초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어딘가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떠나는 버스에서 정말 극도의 슬픔을 느끼며 엉엉 울고 있었고, 꿈에서 깨어서도 한참을 울었었다.
그 꿈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았다.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는가 ?
그 꿈처럼 강렬한 슬픔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몹시 슬퍼했던 그 기억은 너무도 생생히 떠올라 마치 슬퍼해야만 할 것 같았다.
데자부, 살면서 무수히 많은 데자부를 겪긴 했지만 이처럼 강렬하고 생생한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내 생전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에서 겪는 낯선 데자부는 날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슬픔은 무엇일까 ? 왜 나는 떠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가 ?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확실한건, 나는 이 길을 왔었어야만 했었구나 하는 사실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이 길이 나를 부른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에 이 길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베토벤 심포니 7번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베토벤을 가져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음악은 슬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특히 2악장, 이미 충분히 유명한 그 곡은 들을수록 슬펐고 따뜻했다.
음악은 계속 반복되고, 창밖의 풍경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지나간다.
시간이 멈춘것이 아닐까 ? 그저 흐르는 것은 음악과 창밖의 풍경 뿐이다.
그렇게 나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다.
안녕. 산티아고.
[ beethoven sympony 7. allegret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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