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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가는 길 D+39. Adios




2011년 9월 29일.   


Fisterra    >   Santiago





마지막으로 다시 베낭을 둘러매고, 산티아고 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랬다. 우리는 오늘 산티아고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아틸라는 오늘 헝가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탈 것이다.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는 구불 구불한 길을 오래오래 달렸고, 이리들썩 저리들썩 하는 와중에도 나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인 아직은 그를 다신 볼 수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간만에 탄 장거리 버스여행으로 속과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5분만 더 탔다간 진짜 멀미를 할 것만 같았던 순간, 우리는 다시 산티아고에 도착해 있었다. 



익숙해진 길을 따라 시내로 향했다. 오늘 하루 산티아고에 더 머물러야 했던 나를 위해 조용한 방을 찾았다. 
오늘만큼은 씨끌벅적한 알베르게에서 혼자 남겨져 있고 싶진 않았다. 방에 짐을 풀고, 아래에서 기다리던 그에게 내려갔다. 

한시간여가 지나고 나면 그는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아틸라, 그리고 아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나를 그는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낯익은 얼굴이 간간히 나타났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했고 잠시후 떠난다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돌아서서 각자 갈 길을 간다. 
다시는 못볼 확률이 만날 확률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인연. 우리의 인연도 그러하리라. 

함께 앉아 음악을 듣던 산티아고 대성당 뒷 광장으로 향했다. 거리의 악사는 오늘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마이콜 같이 생긴 마스크를 쓴 익살스러운 그의 모습도, 오늘은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둘다 별 말이 없었다. 그저 간간히 시계만 바라 볼 뿐이다. 


그가 돌아가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부다페스트에 있는 친구집에서 몇일 묵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잠시 친구들과의 회포를 풀고 그가 사는 마을로 돌아간 다음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넌 어떻게 할거야? "


글쎄.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는 정말로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막연히 포르투갈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글쎄, 여기에 몇일 더 머무를 수도 있고, 내일 포르투로 떠날수도 있고. 아직 잘 모르겠어." 


지금은 그런 것들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그저 생각 할 뿐이었다. 
한달이나 남은 나의 계획없는 시간도 불안 했지만, 그 불안을 걱정하느라 지금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있는 큰 슈퍼마켓에서 공항에서 대기하는 동안 그가 먹을 간단한 음식을 샀다. 
"우리"를 위한 음식이 아니고 "그"만을 위한 음식이었다. 늘 함께 나누던 것들의 반만 사서 들고 나오는 마음이 어쩐지 공허하다. 


버스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 우리는 교차로 끄트머리에 있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까맣게 먼지가 낀 삼층짜리 건물과 커다란 타워크레인이 우리가 함께 본 마지막 광경이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모습.


흔해빠진 만남과 이별.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 가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정류장으로 모이고 있다.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여 본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이를 악 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버스가 도착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타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를 악 물고 참았건만,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바보같이 울고야 만다. 

아직 출발할 시간이 남았다며 아틸라는 계속 내 곁에 있었다. 


"울지마. 니가 울면 내가 갈 수가 없잖아."

"미안, 나도 안울려고 했는데.. " 


그에게 웃어주려 했다. 울다가 웃는 내 꼴이 우스웠을 것 같다. 
어제 그에게 써 둔 엽서를 건넸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보라고 얘기하며 그를 버스로 떠밀었다. 


"얼른 타. 나 너 떠나는거 못보겠어,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 나 돌아갈래." 

"응. 그래. 갈게. 안녕. 잘지내."

"안녕."


.. Adios ..
 


그는 버스에 올라탔고, 버스에 탄 그가 자리에 앉기 전에 나는 돌아 나왔다. 
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일텐데 돌아봐서 뭐하겠는가. 

사실 바보처럼 펑펑 흐르는 내 눈물을 들킬까봐 돌아볼 수 없었다. 
그가 날 볼 수 없게 길을 꺾었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만큼 걷고 나서야 나는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버스도, 그도 거기엔 없었다. 바보같았다. 또 다시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닦아내고 다시 길을 걷는다. 


한참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버스에 앉아 엽서를 읽고 그도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약이 없었다. 
우리는 그런 불확실한 기약이 서로를 더 괴롭게 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떠나가는 인연을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달콤했던 한여름 밤의 꿈이고, 
카미노의 여정에 포함되어 있는 한 장의 아름다운 추억일 뿐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가슴에 묻어둔채 우린 각각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싫어 그토록 조심했거늘, 결국 운명은 우릴 만나게 했고 사랑하게 했으며 이별하게 했다. 
내가 선택한 고통이기에 불만은 없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그래도 더 많은 것에 감사하고 있음이 다행이다. 


혼자 산티아고 거리를 헤매인다. 그와 함께 걷던 길을 혼자 걷는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두려웠다. 
혼자 남겨진 나를, 울어서 토끼처럼 눈이 빨개진 나를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건물 사이로 해가 지고 있다. 나의 한여름 밤의 꿈도 함께 지고 있다. 







낯선 길을 한참을 혼자 걸었다. 혼자 떠나고 있을 아틸라 생각도 나고, 앞으로 남겨진 나의 시간들도 생각난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 여기에 하루 더 머물면서 생각을 해볼까 했지만 그가 없는 산티아고는 빨리 떠나고 싶었다. 

혼자 그를 생각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싫고, 누군가 우리를 아는 사람을 만나 그의 얘기를 해주기도 싫었다. 


그런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기분이 계속 울적했다. 한숨만 나온다. 나는 이제 어떻하지 ? 




그 때, 부드러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내가 걷고 있던 그 길의 중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들려오고 있었다. 


부드러운 현악기의 노래가 내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내 마음에 한줄기 기쁨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울해 하는 나에게 누군가가 준 선물이라 생각했다. 어찌 이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숙소로 돌아가 메일함을 확인했다. 루이스로부터 온 메일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메일은 언제나 내 마음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 날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해 주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 



이 길위에서 찾은 가장 소중한 두가지가 바로 평화와 사랑이라 생각했다. 

길 위의 십자가에 쓰여진 PEACE&LOVE, 루이스는 내게 평화였고 아틸라는 사랑이었다. 


평화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다. 


지금 내게는 평화와 사랑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평화와 사랑을 나는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평화와 사랑이 내 삶의 큰 이유가 되리라.  





내일 나는 포르투로 가게 될 것 같다. 그 이상의 여정은 아직 알 수가 없다. 

그저 내일 해야 할 일만 오늘 결정하는 것, 이 길에서 배운 첫번째 규칙이니까.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고, 내일도 그러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