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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2011

산티아고 D+40. 데자부






2011년 9월 30일.   






포르투로 가는 버스는 오전 9시에 한 대가 있었다.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조금 서둘러본다. 

산티아고 성당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 남겨진 산티아고는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버스 터미널로 찾아가 포르투행 버스를 타는 플랫폼에 서서 기다린다. 

어디론가 떠다는 사람들 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날 지켜주는 가방의 조가비는 떼어 내지 않았다. 그냥 쭉 달고 다닐 예정이다. 









포르투행 버스가 도착했고 다들 부산스럽게 버스에 오른다. 들떠보이는 사람도 있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난 잘 모르겠다. 다시 관광객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 순례자인 것 같다.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을 바라본다. 



안녕 산티아고. 언젠가는 다시 올게. 또만나자. 




버스는 도시를 돌아 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내를 한번 더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둥근 커브길을 돌았다. 오른편 창밖으로 산티아고 집들의 붉은 지붕이 보인다. 

그때 정말 너무도 강렬한 데자부의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분명히 어디서 본 장면이다 ! 


올해 초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어딘가를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떠나는 버스에서 정말 극도의 슬픔을 느끼며 엉엉 울고 있었고, 꿈에서 깨어서도 한참을 울었었다. 


그 꿈의 마지막 장면과 똑같았다. 이런일이 있을 수 있는가 ?


그 꿈처럼 강렬한 슬픔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몹시 슬퍼했던 그 기억은 너무도 생생히 떠올라 마치 슬퍼해야만 할 것 같았다. 




데자부, 살면서 무수히 많은 데자부를 겪긴 했지만 이처럼 강렬하고 생생한 적은 처음이다.

그것도 내 생전 한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에서 겪는 낯선 데자부는 날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슬픔은 무엇일까 ? 왜 나는 떠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가 ?




세상은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하지만 확실한건, 나는 이 길을 왔었어야만 했었구나 하는 사실이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이 길이 나를 부른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시기에 이 길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이었으리라 생각했다.  




베토벤 심포니 7번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베토벤을 가져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음악은 슬픈 내 마음에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특히 2악장, 이미 충분히 유명한 그 곡은 들을수록 슬펐고 따뜻했다. 


음악은 계속 반복되고, 창밖의 풍경들도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지나간다. 


시간이 멈춘것이 아닐까 ? 그저 흐르는 것은 음악과 창밖의 풍경 뿐이다. 



그렇게 나는 버스 안에서 가만히,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다. 





안녕. 산티아고. 






beethoven sympony 7. allegret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