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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traveling

익숙한 바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것들은 희미해지거나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정같은 것들은 존재했었는지 조차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 때의 대화, 그 때의 분위기, 그 때의 감정은 아무리 따올리려 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고, 
'아 그땐 바람이 참 쌀쌀했지' 같은 배경만 선명히 남기 일쑤다.
비가왔던, 바람이 불던, 벚꽃이 흩날리던 배경만 눈 감으면 생생히 떠오른다.  

가만 생각해보면 결국 기억속에 남는 것은 그 배경 뿐인 듯 하다. 
추억 속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그 장소는 여전하기에 그 속에서나마 잠시 추억에 빠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내가 이 바람과 이 내음, 이 눈부심을 예전과 같이 느낄 수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나의 가장 반짝이던 20대를 함께한 바다이다. 이 곳에서 나는 참 많이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앉아 놀기도 했고, 바다에 선을 긋고 세상에 맞서 싸우는 의인이 된 양 굴기도 했다. 
미친척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고, 모래사장을 한없이 뒹굴기도 했다. 
술에 취해 토하기도 했고, 살짝 어깨에 기대고, 설레이는 키스를 하기도 했다.
원치않던 만남에 괜시리 화를 내기도 했고, 눈물을 들키기 싫어 한없이 바다를 보고 앉아있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나의 시간을 모두 품고있는 이 바다가 문득 그리워졌다. 
늘 새로운 곳, 낯설음만 찾아 헤매이던 내게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 감정이다. 

가방하나 둘러메고 나의 그 바다를 만나러 내려오는 기차에서 난 어쩐지 설레이고 있었다. 
처음 느끼는 조금은 낯선 설레임 앞에서 나는 문득 내가 조금 달라진건가 싶은 마음이 든다. 






낯설음을 쫒아 살아온 긴 시간의 끝에서 결국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이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어떤 낯설음이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함으로 변하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내가 10년전의 내가 아니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어떤 익숙함도 이와 같은 위안을 주지는 못하리. 
 
이 바다는 그렇게 여전히 또 나의 지금을 가만히 품어준다. 
무엇인가에 지쳐 홀로 이 곳을 찾은 지금의 순간 또한 하나의 기억으로 나의 바다에 오래 남겠지. 







아. 나의 바다. 



그 시절에도 눈부시게 반짝였던 그 바다는 오늘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나의 지나갔던 시간들만 눈부셨던 것은 아니라는 듯이,
너의 지금 또한 여전히 눈부시게 반짝인다 말해주는 듯이, 
그리고 앞으로도 우린 변함없이 반짝일거라는 듯이.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 또 많은 것이 잊혀지더라도 
내겐 이 바람, 이 내음, 이 눈부심은 선명히 남겠지. 

그렇게 이 바다는 평생 나의 배경으로 선명히 남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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