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친구들과 함께 통영 고성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놀러 갔다.
늦은 시간까지 신나게 놀고, 아침에 또 일찍 눈이 떠져 혼자 동네 한바퀴를 돌러 나가 보았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거의 못자는 습성이 조금 걱정이다. 앞으로 그럴 일이 많을텐데..
시골이라 아침 공기가 상쾌하고 개운하다.
기지개를 시원하게 한번 켜고 스트레칭 가볍게 해 준다.
온 몸의 신경 하나 하나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아침 꽃들이 화사하다.
텃밭에서는 양파며 대파며 이런저런 채소들이 자라고 있고,
동네 구석구석에는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낮은 집들 한쪽에는 외양간이 있고, 소가 그 큰 두 눈을 껌벅이고 있다.
새들은 지저귀고 햇살은 따사롭다.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잠깐 자랐었는데 그때가 떠오른다.
이런 기분, 이런 공간 정말 오랫만인것 같다.
8시,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은 밭에 나와 일을 하고 계셨다.
평생을 그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농사를 지으셨을 그 분들께 왠지 먼저 반갑게 인사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용기가 부족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저 멀리 동네를 한바퀴 돌고, 조그마한 교회도 지나고, 다시 내가 나온 곳을 찾아 가는데
맞은편 길에서 한 꼬마아이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 마주쳐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안녕하세요."
어라, 그 꼬마가 고개를 꾸벅 하며 인사를 한다. 왠지 반갑고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해주고, 아침부터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어보았다.
친구와 함께 학교를 가려고 이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걸 보니, 학교가 이쪽 방향이 아닌가 보다.
놀토가 아니라서 학교를 가야한다는 꼬맹이의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잘 다녀 오라는 훈훈한 인사로 마무리를 하고 돌아서서 가던길을 가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아까 용기가 없어 어르신들께 인사를 못드린 내 자신이 못내 아쉬웠다.
조금 더 길을 가다가 또 학교를 가는 아이 두명과 마주쳤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에게 인사를 한다.
이미 한번의 학습이 되어 있던 터라 반갑고 여유있게 인사를 해 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걸까, 시골의 인심이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신선한 충격이었고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인사를 하는 시골 꼬마였었다.
새로운 사람이 한명만 나타나도 동네가 들썩이는 아주 작은 마을의 시골꼬마.
논이고 밭이고 계곡이고 들이고 뛰어다니며 산딸기 따먹고 물고기 잡던 예전 기억들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한 큰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 가 유일한 고민이었던 그 시절.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해지기 전 까지 정말 아무 걱정없이 뛰어놀던 그 시절이 있었고 기억 한다는 것,
그리고 아직도 그 생각에 살짝이나마 미소지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
10분 더 잤으면 몰랐을 소중한 경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