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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lete

수긍.







꿈꿔보기도 쉽지 않은 완전히 다른 삶을 꿈꾸는 것은 위험하고 또 무모하다.

삶에는 여러가지 선택이 있고 그 결과는 번복되지 않는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우리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선택은 그 사람이 책임질 수 있을만한 범위에 속하는 것이며 나의 것이 아닌 그 책임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때론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하는 나의 선택과 나의 책임을 타인의 것인양 미루기도 한다.
책임에 대한 회피 혹은 그에 대한 두려움이리라. 나의 두려움은 선택을 미루고, 한번 미뤄진 선택은 달라진 결과를 가져온다.
모든것은 되돌릴 수 없다. 물은 아래로만 흐르고 죽은것은 다시 되살릴 수 없듯이 미뤄진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난 여전히 선택하지 못했고, 그렇게 두려움에 내 몫의 선택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 두려움 또한 나의 일부이며, 금새 더이상 두렵지 않은 현실이 되고 만다. 두려움이 나의 일상이 되고 만다.

거센 파도가 치고있는 드넓은 바다도 저 멀리서 바라볼땐 호수처럼 잔잔한 그저 아름다운 푸른 바다일 뿐이고,
어렵기만하던 모든 선택의 순간들도 하나의 인생을 놓고 봤을 땐 그저 잘라내야하는 곁가지 일 뿐이다.
잘라내버린 곁가지에서 어떤 꽃이 자랄지, 어떤 열매가 맺힐지 아무도 알 수가 없듯이 선택되지 못 모든것들에 대한 결과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나는 선택을 보류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두려움일 뿐이기에 선택하지 못한다.


선택에 관계가 더해지면 또다른 어려움이 된다.
때론 일련의 관계들이 선택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책임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긴 하나 나의 것이 아닌 선택들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만다.

치즈버거와 빅맥이 있을 때 누군가가 빅맥을 먼저 선택해서 내가 치즈버거를 먹어야 할 때, 나는 치즈버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빅맥에 대한 강한 아쉬움을 갖게 된다. 어쩌면 빅맥을 선택한 상대방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질지도 모른다.
내게 조금의 양해라도 구해주었더라면 난 그냥 치즈버거를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인데도 말이다.

그런것이다. 나의 것이 아닌 선택으로 내 삶의 길이 정해진다는 것. 이해는 하지만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 선택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내게 주어지는 또다른 옵션이 있는 것일까?

내가 만약 치즈버거를 먹지않겠다고, 나도 빅맥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 상대방은 또 하나의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은 또 나의 것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것이다. 삶에서 이런 류의 상황들은 끝도 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상황은 그저 그럴 뿐이다. 선택은 달라지지 않으며 또 다른 선택을 만들어 낼 뿐이다.
한번 두려워 시작하지 못한 선택은 두번도 시작하기 어렵다.

그게 나의 단념의 이유이다. 아니, 수긍의 이유이다. 그렇게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럴 것이다.


스물아홉 끝자락에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수긍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수긍이 선택되지 않은 순간들에 대한 미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책임의 크기에 맞게 선택된 최선의 미래라 생각한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저 어떤 선택을 하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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