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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lete

2nd.




07.17.27. 



스물일곱이 되던 7월 17일, 지금으로 부터 2년전. 

나는 배낭하나를 둘러메고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게 느껴지기만 하는 시간이다. 그때 나는 참으로 절박했었는데. :)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떠나는 날짜를 정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스물일곱 제헌절에 여행을 떠난 건 정말 잘한 일 인듯 하다. 

매년 7월마다, 그리고 17일마다 새로운 삶으로 떠나던 그 날이 어제처럼 생생히 떠오르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온 내 짧은 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 날이 떠오르는 오늘은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다. 


2년이 흘렀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무작정 떠났던 그 날로부터의 2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많은 것이 달라진건지 대부분이 그대로인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그 짧았던 아름다운 시간들은 아련한 여운으로 남겨졌고, 대부분의 일상 속에서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모든 것을 잊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었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끝자락을 부여잡고선 놓치 않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미 난 많은 것을 잊어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의 이 바쁜 삶이 나쁘다거나 싫다는 것은 아니다. 이 삶 또한 내 삶이고 내가 원한 선택의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저 해와 달처럼, 혹은 물과 기름처럼, 함께 섞여 존재할 수 없는 두개 중 한가지를 가지고선 

내가 갖지 못한 나머지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을 뿐이다. 그저 나의 욕심일 뿐이다. 

가질 용기도 없으면서 갖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용기없는자의 이기적인 욕심.


일을 끝내고 사람들과 가볍게 맥주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부는 길 위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년 뒤 오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지금과 똑같은 삶을 살며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내년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2년 뒤도, 3년 뒤도 이럴 것이라 생각하니 어쩐지 온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지금의 내 모습이 겁쟁이라서 그런 모습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지금과 다른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지금의 난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이리라. 


난 겁쟁이다. 두려움도 많고 겁도 많다. 

너무도 심한 겁쟁이라서 그 것을 들키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모든것을 다 아는 듯 이야기하고 삶에 대해 확신이 있는 듯 허풍을 떤다. 

2년전 그런 선택을 했던 것도 어쩌면 너무 겁쟁이였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삶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어서 였을지도 모른다. 


어렵다. 무섭고 두렵다. 선택의 순간이 무섭고, 내게 펼쳐질 미래가 두렵다. 

그 무서움과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 


인생은 어차피 내 편이고 삶은 늘 내가 원하는대로 흘러간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나 자신에게 해 줄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인지도 모른다. 

나를 위로해주고 북돋아 주는 나 자신으로 부터의 위로. 


글을 현실을 반영한다. 몰라보게 어두워진 요즘 나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내 삶이 지금 문제가 있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요즘 나는 여느때보다도 바쁘고, 여느때보다도 인정받고 돋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늘 웃고있고 기운에 넘쳐 있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요즘의 나는 참 즐거워보이고 반짝반짝이고 있다 얘기해 주기도 한다.

멋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으며 그렇게 기고만장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신나게 하루를 보낸 뒤 가만히 혼자 앉아 생각하는 시간이 돌아오면

왜일까? 좋은 생각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머리는 생각하는 것을 멈췄고, 마음은 경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너무 바쁘고 계산적인 삶의 부작용인지, 사랑의 부재가 가져온 부작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또다른 내일이 찾아와 버리고 

또 습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정신없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 나를 내던지고 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다. 아직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잊고 만 것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잘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살다보면 시간은 잘만 흘러 가겠지. 내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더라도 말이다. 


과연 만족하는 삶을 살았던 적이 있는가?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다. 

여행이 즐겁고 행복했던 것은 내 삶이 아니어서이겠지. 


나 지금 잘 하고 있는게 맞을까? 하나뿐인 삶의 황금과 같은 시간들을 이렇게 흘려보내도 되는걸까?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거라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지금의 삶도 꽤나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답이고 무엇이 내 길인가? 


휴. 어렵다.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소용돌이 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창 밖으로 금새 비가 쏟아질 것 같이 어두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물음표로 가득한 어느 한 밤일 뿐이다. 


그래도 내일은 다시태어난 나의 두번째 생일을 혼자 조용히 축하해줘야지. 

그리고 잘하고 있노라 스스로를 아주 조금 다독여 줘야지. 



어라, 비가 오기 시작했나보다. 창문을 타닥 타닥 두드리는 빗소리가 그래도 큰 위로가 되는 어느 한 밤이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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