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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절대'와 '완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 동료(동반자)의 과정이 있는 것이고
완성은 또 다른 목적지와 목표를 부여하기 위해 잠시 확인하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구요.
자꾸 결론을 내려다 보니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싶구요.
내 여정과 남의 여정의 속도를 비교하다 보니,
각 여정마다의 가치와 소중함이 묻혀지지 않나 싶습니다.
201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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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 곱씹어서 또 읽어 봅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해석을 위해 이렇게 고민을 한다는 것, 굉장히 오랫만에 느껴보는 일입니다.
끝을 보여주지 않은 영화를 보고 난 것 같습니다.
결론은 관객의 머릿속에서 모두 다르게 존재하며, 관객은 자신의 상상 속에서 영화를 이어 나갑니다.
글도 영화도, 결국은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혹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나
그에 대한 해석은 그 것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몫으로 오롯이 남겨지게 됩니다.
누군가에는 훌륭했던 영화가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영화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게 해 준 책이, 누군가에게는 의미없는 글귀의 나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모두 그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며
각각의 방식으로 나름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한 이 세상에는 '절대'와 '완성'은 없습니다.
우리네 삶을 표현하기에 가장 부족한 두 단어가 바로 그들이 아닐까요?
저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주의 해야 할 것들이 바로 타인의 삶에 대한 나의 오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미의 일생은 존중하면서 나와 더불어 사는 타인에 삶에 대해서는 과연 그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친하지 않은 동료의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과 기꺼운 위로를 나눌 수 있지만,
가깝고 친한 친구나 가족의 선택에 대해서는 그러함이 쉽지 않습니다.
나의 조언이 그들의 선택과 삶을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 주리라는,
나의 판단과 나의 선택이 너의 것보다는 현명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자기 오만에서 나오는 행동이겠지요.
타인의 삶의 속도를 배려하지 않은 지극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나는 애써 타인의 삶을 존중해보려 하지만 결국은 또 이렇게 나에서 맺음짓게 됩니다. 지금 이 글이 그러한 것 처럼요.
세상이 결론지어질 수 있을까요?
내가 죽어 나의 육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한 들 나의 삶을 결론지을 수 있을까요?
한 줄의 묘비명이 과연 나를, 나의 삶을 결론지어줄 수 있는 걸까요?
진실로 그러합니다. 이렇게 삶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보니 모든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만 합니다.
어쩌면 아주 가까운데 있을, 너무도 사소한 작은 행복의 연속이 가장 큰 행복일 이 삶에서
나는 너무 거창한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되짚어 고민해봅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 모든 것을, 그 많은 욕심을 다 내려놓고 살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결론지을 수 없는 질문이겠지요.
저의 여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것은 비단 삶의 한 쪽 부분에 국한된 것은 아니겠지요.
직장이든 가정이든, 일이든 꿈이든 그 모든것들이 포함되어져 있는 이 여정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물음표입니다.
삶의 여정을 안내해줄 노란 화살표를 찾아 하루하루 헤매이는,
어쩌면 단순하고 또 어쩌면 풀 수 없는 문제에 매달린 듯 허무한 그런 시간들이겠지요.
몇 줄의 문장에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였지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나에대한 생각들을 말입니다.
소중한 마음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지내 보렵니다. :)